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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use와 Play, 그리고 체홉연극 <세 자매>

<워킹데드> “무슨 말도 안 되는 좀비 얘기를 가지고 시즌10이 뭐야?” 보지도 않고 투덜대며 눈길도 안주던 미드를 어젯밤에도 늦게까지 정주행 했다. 신종 바이러스로 인해 갑자기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는 바람에 “이거나 한 번 볼까...?”하고 시작한 넷플릭스 시청이 어느덧 여러 날 째다. TV화면 속의 인물들은 오늘도 여전히 무참한 죽음을 뚫고 앞으로 가고 있다. 목표는 하나. 그저 살기 위하여, 살아남기 위하여.

 

포즈(pause. 멈춤). 신종 바이러스는 많은 것을 멈추었다. 무섭고 불안하기도 하지만 의도치 않게 주어진 일시정지의 시간 사이에 우리는 햇볕을 쬐고, 가족을 만지고, 과거를 돌아보고 오늘을 생각한다. 이맘때면 어김없이 하던 익숙한 일상의 패턴에 변화가 왔다. 갈 데가 마땅찮으니 산을 걷기도 하고, 유튜브를 보며 오피스 프로그램 사용법도 배우고, 사서 그냥 꽂아두었던 책장의 책을 뽑아 들기도 한다. 살아 있는 멈춤은 그 자체로 느낌을 강화하고 힘을 키우는 행동이 아닐까. 변화와 밀도, 집중과 강조를 만들어 내던 연극 속의 어느 장면처럼.

 

전염병과 죽음, 공포, 삶, 일... 요사이 멈추어 생각하게 되는 몇몇 단어들이 <아웃브레이크>나 <컨테이젼>같은 영화와 까뮈의 <페스트>를 거쳐 체홉의 단편소설과 4대 장막의 마지막 장면들로 생각을 이어주었다.

안똔 파블로비치 체홉은 기 드 모파상, 오 헨리와 함께 세계 3대 단편 작가로 손꼽히는 소설가이다. 하지만 모파상이나 오 헨리와는 달리 극작가로 유명한 체홉 선생이 세계 3대 단편문학 작가에 꼽힌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체홉의 할아버지는 해방된 농노였고, 그의 아버지는 소상인이었으나 사업에 실패했다. 소년가장이었던 체홉은 의대생이 된 후에도 가족의 생계를 돕기 위해 신문이나 잡지에 우스꽝스런 짧은 이야기들을 기고했다. 의사가 된 그는 이웃 사람들의 병을 치료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재료로 인간의 불행과 절망을 글로 써내려갔다. 그러나 그는 절망적인 염세주의자는 아니었다. 그는 죽음과 가까운 곳에서 사람을 살리는 일을 했다.

그는 죽음을 썼고, 삶의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언제나 웃음을 잃지 않았다. 체홉은 삶이 고통스러운 거라고 말한다. 우스꽝스럽다고도 이야기한다. 그러다 덜컥 “죽었다.”로 이야기를 끝내기도 했다.

Anton-Chekov

하지만 죽음은 언제나 삶을 더 뚜렷하게 부각시킨다.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떠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홉의 인물들은 살아간다. 옐레츠로 떠나는 니나의 뒷모습에도, 절망한 삼촌의 곁에선 쏘냐의 눈동자에도, 덩그러니 남겨진 세자매의 어깨동무 속에도 삶의 박동이 들어있다. 체홉의 마지막 장면들, 삶이라는 것이 살아내는 그 자체만으로도 가치 있다는 체홉의 이야기가 우리로 하여금 연민과 위로라는 이중의 감정을 느끼게 한다. 얼마 전 오랜만에 출연했던 안똔체홉학회와 애플시어터가 제작한 연극 <세자매>가 ‘아쉬움을 가득 안은 채’ 한 주 일찍 공연을 멈추어야 했다.

어디 멈춘 것이 그 작품뿐이랴. 수많은 공연과 축제들이 멈추었다. 하지만 멈춤이 끝은 아닌 것. 우리는 살아갈 것이고, 멈추어도 꿈틀 댈 것이고, 일시정지가 끝나고 Play 버튼을 누르는 날,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또 힘 있게 요동칠 것 아닌가. 생각해보니, 옛날 카세트라디오에 달려 있던 Play 버튼 아래에는 친절하게도 재생이라고 적혀 있었다. 상처의 회복도 재생이요, 다시 사는 부활도 재생, 문예부흥기의 상징처럼 쓰이는 르네상스의 본 뜻도 재생이라니 아! 거 참 절묘하지 않은가.

 

진남수 (호원대 교수 · 극작가 · 배우)

이수민 기자  Press@ithemov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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