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칼럼 진남수의 무빙액트
아직, 살만한 세상 _연극 <오아시스세탁소습격사건>

삼청동 국립현대미술관 뒤쪽, 선재아트센터 사이로 난 골목을 따라 삼십미터쯤 걸어 들어가면 아주 조그맣고 오랜 된 세탁소가 하나 있습니다. 좁은 길하나 건너에 있는 이층집 소격동37번지에서 초등학교때부터 살아온 제 아내가 하루는 그 집 앞을 지나다가 혼자말로 중얼거렸습니다.

 

“아저씨가 아주 아이구...”

“왜? 아이구 뭐?”

“너무 많이 늙으셨어. 저 아저씨.. 옛날엔 정말 청년 아저씨였거든..”

“지금은 아저씨 아저씨고?”

 

아내의 애잔한 표정위로 시덥잖은 농담을 툭 얹었습니다.

 

“이도 많이 상하시고, 이젠..”

“할아버지 되셨어?”

 

느닷없는 눈물까지 살짝 비치며 아내가 물었습니다.

 

“저 집이 어떤 집인지 알아?”

“알지!”

“모를걸! 저 아저씨 나 어릴 땐 정말 청년 같았거든. 원래는 세탁소에서 일 배우던 총각이었는데, 옆집 가정부 언니랑 결혼을 해서 그때부터 저 세탁소를 두 분이 하고 있는 거라구!”

“우와! 정말 오래도 됐네.”

“근데 여보.. 그거 알아요? 원래 세탁소집 주인아저씨가 저 세탁소를 저 아저씨부부한테 그냥 주고 떠나셨대요. 그 후로 두 분이 저 집에서 자식들 다 키우고 결혼 시키고... 그래서 삼청동 집값이 아무리 올라도 저 집은 절대 안 파신다잖아.. “

“진짜? 와... 정말 그런 일이 있구나...”

“또 있어. 이 동네 철물점도 그랬고, 삼청파출소 옆 미용실 건물도 원래 주인아주머니가 돌아가시면서 그 집에서 일하던 아주머니한테 건물째로 주고 가셨잖아!”

“우와...정말...”

 

정말 있었습니다.

피한방울 안섞여도, 성심껏 일하고 또 그들을 자식처럼 돌보고 아낌없이 주는 그런 세상이.

생각보다 훨씬 가까이에 있었습니다. 잊고 살지만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키고 계시는 분들이.

그런데, 그 세탁소는 부암동 꼭대기집 사는 호성이형(연출가 권호성)이 십수년전 가회동에서 작업하던 시절에, 골목길을 오가다 조그만 세탁소를 보고 <춤추는 세탁소(가제)>라는 연극을 떠올렸다던 바로 그 세탁소였습니다. 

모시는 사람들 대표 정숙 누님(작가 김정숙)의 손에서 그 모티브는 <오아시스 세탁소 습격사건>이 되었고, 2003년 막을 올린 <오세습>은 100석 소극장의 기적이란 제목으로 대서특필 되었고, 교과서에 실렸고, 수십만 누적관객을 기록하며 그 후로도 오랫동안 전용관에서 공연되었었지요.

 지금은 전용관도 없고, 연극도 언젠가 유행에 떠밀려 가버릴지도 모르지만, 17년째 준형이형(배우 조준형)은 강태국 아저씨로 세탁소 무대를 지키고 섰습니다. 언젠가 티비로 본 세탁소 아저씨가 서 있던 자리처럼 시멘트 바닥이 움푹 꺼지도록. 문화소외지역 시골 학교를 고아원을 교도소를 찾아다니던 오아시스가 연말 대학로 열린극장에 다시 세탁소를 열었습니다. 늘 열려 있지는 않겠지만 도시의 메마른 빌딩 사이를 지나다가 오아시스를 발견하시게 된다면 드르륵 문 열고 들어가 보세요. 아마 "아직 살만한 세상이다!" 하실 겁니다.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생각해보면 늘 그 자리에 서 계시는 그대들 덕분입니다.

 

진남수 (극작가. 배우. 호원대 교수)

THE MOVE  Press@ithemove.com

<저작권자 © 월간 더무브 THE MOVE,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THE MOVE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