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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남수의 무빙액트] 성난 불길 속 공존의 의미<전쟁터의 소풍 Pique-nique en campagne>_아르케(Arkhe)
  • 진남수 호원대 교수 / 극작가, 배우
  • 승인 2020.06.07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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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으로 한 걸음씩 걸어 들어갔다. 사람은 가능한 피해야 한다. 고개를 돌리고 몸을 튼다. 안전한 곳을 찾아 철저히 혼자 자리를 잡았다. 주변은 비어있다. 숨을 죽이고 혼자만의 통신장비와 정보전달장치로 바깥세상의 실상을 실시간으로 전달받는다. 그러다 그마저도 주변에 노출될까 우려하여 전파를 차단하고 깊숙이 숨겨버린다. 섬광이 번쩍였다. 총성이 들린다. 곧이어 검은 쇠붙이들이 불을 뿜는다. 난리가 났다. 자욱하게 연기가 피어오른다. 얼마나 지났을까? 타오르는 불은 춤이 되고 총성과 포탄 소리는 음악처럼 사방에 울려 퍼진다. 불이란 지옥을 대변할 만큼 뜨거운 재앙이다. 하지만 동시에 독보적으로 화려한 꽃이며, 싸움 구경만큼 인기 있는 볼거리이며, 종종 축제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하는 놀이다. 어느 일요일, 어느 전쟁의 최전선, 참호를 지키는 군인이 있다. 그의 이름은 자뽀. 이 전쟁터에 자뽀의 부모가 불쑥 찾아온다. 화려한 나들이복에 맛있는 음식까지 잔뜩 싸 들고서. 언제 다시 전쟁이 시작될지 모르는 전쟁터 한복판에서 이들 가족의 소풍이 시작된다. 먹고 마시고 웃고 떠드는 즐거운 만찬 도중에, 적병인 제뽀가 이들에게 붙잡혀 포로가 된다. 그러나, 잠시 후 자뽀와 그의 부모는 포로를 친구처럼 대하며, 다 같이 즐거운 한때를 보낸다. 그들은 대화를 통해 전쟁을 그만둘 방법을 알아내고는 함께 흥겨운 춤을 추며 즐겁고 평화로운 소풍을 한껏 즐긴다. 그러다 폭격에 몰살당한다.

<전쟁터의 소풍> 메인 포스터

<제41회 서울연극제> 공식참가작인 창작공동체 아르케(Arkhe)의 작품 <전쟁터의 소풍 (페르난도 아라발 作, 김승철 연출)>의 풍경과 내용이다. 웃기고, 황당하고, 허무하며, 무자비하고, 처절하다. 순진하고, 잔인하며, 기괴하다. 서로 따로 있어야 할 것 같은 감상들이 뒤엉킨다. ‘어느 가족이 전쟁터 한복판에서 소풍을 하다가 몰살당했다.’ 사실적 개연성은 별로 없다. 그러나 춤을 추던 한 가족이 죽어 넘어진 그 자리에 진실이 있기에 가슴이 뻑뻑하다. 스페인 국적의 프랑스 작가 페르난도 아라발이 한국전쟁 발발의 소식을 듣고 썼다는 <Pique-nique en Campagne, 1952>은 ‘전쟁의 공포와 한 가족의 즐거운 소풍을 대비시켜 전쟁의 참혹함과 부조리함을 적나라하게 고발한 작품’이다. 역시 명작은 진화하는 유기체와 같다. 아르케의 <...소풍>은 몸집도 더 커지고, 외모도 잘 다듬어졌다. 품은 뜻도 현대적이고 광범위해졌다. 오늘날의 전쟁터. 자본, 이념, 권력, 질병, 등등등... 그리고, 싸움을 원치 않는 자들의 죽음.

계몽의 시대를 지나며, 인간은 눈부신 진보를 이루었지만, 과학과 기술은 인간의 세계를 전쟁으로 파괴했다. 전쟁의 잔해 속에서 인간은 존재의 가치를 다시 물었고, 기존의 절대적 가치와 익숙한 법칙들에 질문을 던졌다. 그 물결의 끄트머리에서 가장 뜨겁게 타올랐던 인물 중의 하나, 페르난도 아라발. 공포와 쾌락이 뒤섞인 그의 작품들을 일목요연하게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느낄 수는 있다. 참 뜨겁고 무자비하다. 아라발의 성난 불길 속에서 아르케의 아름다운 불꽃을 보며, 과거와 현재, 환상과 현실을 중첩시킨다. 올봄에서 여름 사이, 멈춤과 산책과 소풍 중에, 우리는 어느 해보다 푸른 하늘을 보았다. 지구의 신호를 들었고, 공존의 의미도 배웠다. 물질을 나누어야 하는 이유도 배웠고, 부질없는 것과 소중한 것을 가려 보았다. 그렇게 불은 꺼졌고, 불이 타올랐던 자리에는 다시 꽃이 피어난다.

 

진남수 호원대 교수 / 극작가, 배우  namsuls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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