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칼럼 진남수의 무빙액트
거리두기 distancing

 

안 보이던 것들이 거리를 두면 보이기도 한다. 일상에도, 실험실에도, 카메라 앵글에도, 사람 간에도, 공연에서도 그렇다.

                                                       ”

 

“봄바람 휘날리며 ~ 흩날리는 벚꽃 잎이~~” 유난히 쓸쓸한 봄이다.

동시다발로 터져버린 만우절의 꽃망울은 언제봐도 거짓말 같고, 달력의 날짜로 돌아오는 믿기 힘든 사연들은 아직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올봄은 희한한 일들이 많다. 강력한 사회적 거리 두기를 위해 인터넷으로 수업을 하고, 예배를 보고, 회의를 했다. 여의도의 벚꽃길은 통행이 차단되었고, 노란 유채꽃밭들은 ‘싹 다 갈아엎어’졌다.

때로는 좁은 식당 안에서 삼삼오오 밥을 먹고 수다를 떨다가, 밖으로 나오면서 마스크를 다시 쓰는 내 모습이 코미디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거리 두기는 어느새 서로의 안전과 사회의 유지를 위한 필요조건이 되어 있다. 돌아보고, 두고 보고, 다시 본다. 어쩔 수 없이 두게 된 거리지만, 밀접했을 때 안 보이던 것들이 거리를 두면 보이기도 한다. 일상에도, 실험실에도, 카메라 앵글에도, 사람 간에도, 공연에서도 그렇다.

무대 위의 감정은 거리에 달려있다. 로미오의 줄리엣도 시라노의 록산느도 발코니 위에 있다. 그들은 오늘날의 연인들과 비교하자면 상당히 먼 거리에 있다. 그들의 거리는 사랑의 숨결을 부풀렸고 시와 노래를 가능하게 했다. 무대 위의 인간은 거리에 따라 크고 위대해지기도 작고 왜소해지기도 한다. 관객과 무대와의 거리는 더욱 흥미롭다. 그리스인들은 무대와 상당히 멀리 떨어진 객석에서 연극을 보았다.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인간 공통의 문제에 주목했다. 이천 몇 백 년이 지난 후에도 우리는 넓은 광장에서 하나가 되었고, 식당에서 삼삼오오 따로 놀았다. 소극장은 소시민의 문제를 주목하게 했고, 대극장은 우리가 생각보다 고상한 존재였음을 상기하게 했다.

독일의 극작가 브레히트에게 거리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그는 관객들이 연극에 빠져들지 못하게 하기 위해 거리 두기의 방법을 사용했다. 그는 이것은 연극이며, 저 사람은 배우라는 것을 관객으로 하여금 시종 잊지 않도록 했다. 문제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거리가 필요했다. 그는 우리가 공연을 매우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본 다음, 행동을 통해 세상을 바꿔나가기를 바랐다.

 

코로나 시대에 우리는 거리를 두고 서로를 본다. 길 건너에 있는 문 닫은 극장과 전시장을 바라본다. 떨어진 거리만큼 그리움은 점점 커져간다. 때문인지 덕분인지, 요사이 국립단체들은 우수공연들의 동영상을 한시적으로 제공하였고, 영국 국립극단의 공연실황(National Theatre at home)이나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나 <오페라의 유령> 같은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작품들도 유튜브로 볼 수 있게 되었다.

손에든 스마트 폰으로, 책상 위의 컴퓨터 모니터로 카메라가 근접 촬영한 훌륭한 공연들을 아주 가까운 거리에 두고 보게 된 것이다. 이게 웬 떡인가 싶다가도, 갑자기 주어진 ‘재난 기본 문화’에 걱정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낀다. 이러다 무대와 너무 멀리 떨어져 버리는 건 아닐지... 보첼리의 노래를 듣고, 레미제라블 배우들의 ‘Bring Him Home’을 듣고, 지나간 공연의 녹화영상을 보며, 객석을 비우고 띄엄띄엄 앉아 공연을 보며, 그리고 무대를 잃어버린 배우들을 보며 새삼 연대의 의미와 가치를 생각하게 된다.

다들 힘겨운 시절이다. 그러나 국경을 뛰어넘는 바이러스 앞에서 인류는 서로를 보고 격려하고 지원하고 있다. 서로가 그리 멀리 떨어진 거리에 살고 있지 않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이 별스러운 시절을 지나는 동안, 우리는 가까이 봐야 할 것은 가까이에 가서, 떨어뜨려 봐야 할 것은 또 떨어뜨려서 다시 보게 될 것이다. 거리를 두고 보며 우리는 서로를 발견할 것이다. 그리고 서로에게 다가가 손을 잡고 일으켜 함께 더 멀리 걸어가게 될지도 모른다. 희망이다.

 

진남수(호원대 교수, 극작가, 배우)

THE MOVE  Press@ithemove.com

<저작권자 © 월간 더무브 THE MOVE,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THE MOVE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