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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다. Go on foot그 많은 걸음으로 우리가 구하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

산티아고 순례길 800km. 이유야 무엇이든 언젠가부터 많은 사람들의 로망이 된 길이다. 급기야 몇 달 전에는 그 길 중간에 하숙을 차려놓고 손님을 치르는 예능프로가 인기를 끌기도 했으니 그 유명세는 새삼 말할 필요도 없겠다. 멀고 먼 지구 저편의 기나 긴 고행길이 어쩌다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일까? 말이 800km지 마라톤이 42.195km요, 경부고속도로가 416km니 경부고속도로를 걸어서 부산까지 갔다 오겠다는 셈이 아닌가. 그것도 지구 반대편까지 비싼 돈을 들여 날아가서 몇날며칠을 그저 걷기만 하겠다니, 항공료에 숙박비는 얼마며 육체적인 고통은 또 오죽하겠는가? 그런데도 스페인의 순례길이 수많은 이들의 버킷리스트가 된 이유는 무얼까. 그저 지나는 유행인걸까? 그렇지 않다면 그 많은 걸음으로 우리가 구하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

 

문득 답답하다는 생각에 달리는 자동차의 창문을 열면, 세찬 바람이 화악하고 덮쳐든다. 머리는 날리고 소리는 웅웅댄다. 환기도 잠시, 다시 창을 닫고 액셀을 밟는다. 부산까지 고작 몇 시간이면 충분하다. 그 몇 시간, 생각해보면 나는 철로 만든 이동수단에 앉아 검은 아스팔트와 빠르게 지나가는 비슷비슷한 산과 들을 힐끔거리며 보았을 뿐이다. 어쩌다 외국행 비행기에 앉아 날짜선을 넘나들 때는 심지어 인형뽑기의 집게 같은 것이 나를 들어 올려 다른 지점에 내려놓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다. 한 곳에 가만히 앉아 있는 내가 다른 힘에 의해 옮겨진 까닭이다. 이에 비해 걷는 것은 나의 리듬에 맞춰 한걸음씩 실시간의 세상을 만나는 것이다. 주도적으로 햇빛과 공기를 내 몸에 접촉하는 것이다. 세상의 색깔과 질감과 냄새 속으로 들어가 체험하는 것이다. 프랑스 작가 미셸 퓌에슈는 그의 책 <걷다>에서 걷기를 "온전히 시공간을 장악"하는 행위로 설명하고 있으며, 또 다른 프랑스의 사회학자 다비드 르 브르통은 "오늘날 걷는 사람은 개인적 영성의 순례자이며 그는 걷기를 통해서 경건함과 겸허함, 인내를 배운다."라고 <걷기예찬>을 한 바 있다. 걷기에 대한 예찬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니체도 칸트도 하정우도 아침마당의 의사들도 너나할 것 없이 걷기를 예찬한다. 이들의 좋은 말들을 들으며 나도 잠시 걷기에 대한 사유의 행렬에 끼어본다.

 

무대 위를 걷다.

막이 열리면 소리가 있고 빛이 있고 자연을 모방한 풍경이 나타난다. 하지만 여기까지는 연극이 아니다. 사람이 보인다. 아직도 멀었다. 그가 움직인다. 여기부터다. 연극에서 막을 Act라고 하는 이유다. 그렇게 무대에 올려놓은 극적행동은 인간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생각하게 만든다. 몇 년 전, 한 대형뮤지컬에 캐스팅 된 인기 영화배우 때문에 매일 극장에 일찌감치 출근한다는 어떤 연출가의 푸념을 들은 적이 있다. "걷지를 못해요! 공연 중인데도 매일 연습해야 돼!" 인간은 특수한 직업에 있는 몇몇을 제외하고는 걷는 법을 배운 적이 없다. 하지만 스스로 터득하고 세상 여기저기를 잘들 걸어 다닌다. 하지만 무대는 가상의 공간이다. 때문에 저절로가 존재하지 않는다. 시간과 공간을 두발로 장악하고 의지라는 연료로 이동하는 것이다. 걷지 못한다는 건 마음이 그곳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방향과 지시는 있으되 이유와 충동이 부족한 탓이다. 발에 마음이 실리지 않은 채 걷다보면 감각은 마비되고 체험은 사라진다. 두려움에 발이 얼어붙고 막연함에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것이다. 무대에 서면 다가가는 것도 멀어지는 것도 서성거리는 것도 돌아서는 것도 빨리 가는 것도 "사뿐히 즈려 밟고" 가는 것도 실은 마음이요 Dramatic Action이다. 참 거창하기도 하다. 하지만 연출가의 가장 큰 임무라 할 수 있는 Blocking설계가 실은 이 이동의 계획이니 걸음은 곧 사람의 마음이요. 발연기야말로 연기의 핵심인 셈이다.

 

함께 걷다

올해는 3.1운동과 임시정부 백주년의 해이다. 여름 내내 아베정권의 경제보복에 맞선 국민들의 자발적 불매운동이 식을 줄을 몰랐고 8.15에는 시내 곳곳에서 행진이 벌어졌다. 함께 걷는 행위는 이제 축제가 되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걸음에는 더 나은 세상에 대한 마음이 실려 있다. 발자국에는 자신감이 묻어난다. 유난히 올 여름에는 공연계에서도 기존 관행에 대해 개선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그 소리는 제주도에서도 대학로에서도 서초동에서도 들려왔다. 걷는다는 건 지금 여기와 이별을 뜻한다. 그리고 바라보는 곳 혹은 만나야하는 시간으로 발을 내딛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미셸 퓌에슈는 걷는 행위를 "인간이 한 발을 앞으로 내밀어 몸이 기우뚱하는 순간 다른 발을 내밀어 다시 균형을 잡는 행위의 연속"으로 설명하며 이 순간 발생하는 뒤뚱거림을 "역동적 불균형"으로 명명했다. 걷기 위해서는 균형을 무너뜨리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넘어지지 않으려면 재빨리 발을 내딛어 다시 균형을 잡아야한다. 그렇게 우리는 여기에 머무르지 않고 한걸음씩 앞으로 간다.

 

진남수 (호원대 교수, 극작가,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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