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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스마와 버너러블 – 황정민의 오이디푸스진남수의 무빙액트②

카리스마. 널리 쓰이는 말이다. 본래는 '신으로부터 특별히 부여받은 재능'이라는 뜻으로 신이 어떤 특정한 사람에게 내린 초자연적인 능력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한다. 이 말은 오늘날 정치적인 의미를 갖게 되어 '일반 대중의 지지나 후원을 이끌어 내는 지도자의 특별한 정신력과 권위'를 뜻하는 말이 되었고,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이 '카리스마'를 합법적 지배, 전통적 지배와 함께 지배의 세 가지 유형중 하나로 제시하기도 했다. 결국 카리스마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인 셈인데, 이러한 카리스마는 조직사회에서는 물론이고 오늘날 스포츠 지도자나 배우들에게까지 종종 적용되는 말이 되었다. 그렇다면 타인을 움직이는 힘. 다시 말해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란 과연 어떤 것일까? 지위? 권위? 권력? 신체적 매력? 확고한 신념?

 

오이디푸스. 그는 왕이다. 스핑크스의 문제를 풀어 테베의 백성들을 구해낸 구국의 영웅이다. 전생에 나라를 구한이가 아니라 불과 이십 년 전에 나라를 구한 위대한 왕이다. 그는 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닌 지도자로서 또 다시 재앙으로부터 백성을 구하기 위해 선왕의 살인범을 찾아 나섰다. 그는 그 과정에서 자신을 향해 조여 오는 운명의 칼끝을 보았고, 두려웠으나, 알고자 했고, 떨면서도 걸었고, 결국 자신이 누구인지를 보았으며, 패륜한 자신의 눈을 찔렀다. 그리고 스스로를 추방하여 치욕의 몸뚱이를 지팡이에 의지한 채, 그가 사랑했으나 이제 그에게 바늘 같은 시선을 꽂는 사람들 사이를 지나 광야로 걸어 나갔다.

 

황정민 배우가 연극 <오이디푸스>에서 오이디푸스 왕으로 분했다. 황정민이라는 배우를 보면 아직도 다른 사람들이 차려 놓은 밥상에 자신은 숟가락만 올렸다고 얘기하던 어느 영화제의 수상 소감이 떠오른다. 그날 그에게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는 무비스타로서의 격식 따위는 안중에 없어보였다. 그런 그의 모습은 낯설었으나 그 순간 그는 대중의 마음을 빼앗았다. 무대에 그 황정민이 나왔다. 어딘가 비뚜름한 자세에 떨림이 느껴지는 쉰 듯 한 목소리. 허청거리는 걸음. 황정민과 오이디푸스라. 그가 갖고 있는 소탈하고 인간적인 이미지가 오이디푸스라는 고전 비극의 상징과 같은 인물로 분하는데 장애가 되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아시다시피 그리스 비극은 일상의 말투나 몸짓과 거리가 멀다. 매우 장엄하고 확고하다. 그래서 고대의 배우들은 커다란 가면 뒤에 서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의 배우들은 가상의 유리가면을 쓰고 관객들의 코앞까지 다가선다. 어둠속에서 자신을 주목하는 수많은 시선 앞에서 어찌 불안하지 않겠는가. 그로인해 배우는 고전 비극의 주인공을 연기할 때면 자신이 맡은 배역에 비해 한없이 작게만 느껴지는 자신의 본모습을 감추기 위해 신체와 감정과 소리를 더욱 크게 부풀리기 십상이다. 하지만 황정민의 오이디푸스. 그는 어딘가 모자라고 위태롭고 외로워 보인다. 역이란 얼굴을 가리는 가면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창이 되기도 한다. 단정할 수는 없지만 오이디푸스(황정민)는 초라하고 연약한 자신의 본모습을 꺼내어 대중에게 드러내었고 급기야 높은 자리에서 내려와 사람들 사이를 걸었다.

버너러블. Vulnerable. 취약한, 민감한, 상처받기 쉬운, 노출되어 있는 등의 뜻을 가진 형용사로, 얼마 전 극단 벼랑끝 날다의 연출가 이용주로 인해 관심을 갖게 된 단어다. "극장을 장악하는 위대한 힘은 맹수의 포효가 아니라 상처 입은 한 존재의 영혼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간절한 떨림일 것이다." 황정민의 오이디푸스를 보며 카리스마와 버너러블이 연결되었다. 카리스마는 결국 사람의 감정을 움직이는 힘이다. 오이디푸스의 카리스마는 권위와 명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의지와 사랑으로부터 솟아나 두려움 속으로 스스로 걸어감으로써 한층 강력해졌다. 우리는 그의 모습에서 공포와 연민을 느끼며 우리가 인간이라는 사실과 인간이란 얼마나 고결한 존재인가를 되새겼고 박수를 쳤고 척추를 곧추세우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진남수 (배우, 극작가, 호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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