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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 가는 길명동에 온 <스카팽>

극장가는 길 명동은 여전히 북적이고 있었다. 길가의 노점들은 떨어지는 빗방울보다도 리드미컬한 소리와 저마다의 맛깔로 오가는 행인들을 유혹했고, 쇼윈도 글라스에 반짝이는 것들은 지난 시절의 추억을 반사하며 가던 걸음을 붙잡곤 했다. 그 길 가운데서 만나는 오래된 극장. 1975년에 폐관 하였다가 2009년에 재개관하여 옛 모습을 되살린 건 외벽뿐이라지만, 유서 깊은 극장에서 만나는 고전과의 약속은 그 자체만으로도 설렘이었다.

 

객석에 들어서니 커다란 붉은 막이 눈에 꽉 차온다. 빨간색 바탕에 가면을 쓴 한 사내가 만화처럼 그려져 있는 커다란 한 장의 막. 그림의 테두리에는 중세풍의 문양과 함께 Commedia Dell' Arte라고 적혀있다. 무대 상수에는 작가의 책상, 하수에는 건반과 타악기가 드러나 있다. 잠시 후, 작가 몰리에르가 먼저 등장하여 먼 곳으로부터 온 작품과 오늘날 관객과의 간격을 좁힌다. 막이 열리자 요란한 음악과 함께 노래하는 일단의 배우들이 올라탄 무대가 뒷무대로 부터 객석 쪽으로 밀려온다. 천년에 달하는 기나긴 중세시대의 끝 무렵, 관객을 찾아다니며 연극을 되살리던 꼬메디아 델아르테의 이동식 무대를 떠올리게 하는 시작이다. 광장의 연극, 대중의 연극, 배우의 연극, 몸의 연극이 펼쳐지던 수레무대. 그 무대가 몰리에르를 태우고 명동에 도착했다.

 

<스카팽> 17세기 프랑스. 십여 년의 유랑극단 생활을 마치고 파리에 입성한 후, 그 어떤 법칙보다 관객의 즐거움을 중시했던 몰리에르. <스카팽>은 그런 몰리에르까지 무대 위로 불러올려서 웃기에 더욱 적당한 극적행동과 관객의 거리를 만들고 있다. 임도완 연출은 "관객과 작품사이의 거리두기를 의도하다 보면 작품에 예기치 않은 새로운 리듬이 들어오거든요. 그러한 방식이 엉뚱함으로 비쳐지지만 사실은 치밀하게 계산된 것이지요. 적시적소에 개입하는 그 느닷없음이 관객의 생각을 환기시키는 역할을 해요. 일정한 리듬을 깨면서 예상치 못한 것이 들어오는 생경함은 특히 코메디에서는 유쾌한 웃음을 유발하죠."라고 희극과 거리의 관계를 설명해 주기도 했다. 연출의 의도대로 극은 시종 유쾌하다. 경직되고 기계적인 것, 부조화와 부조리가 연신 웃음을 터트리게 한다. 극의 흐름은 변화무쌍하고 리드미컬하다. 몰리에르가 시대를 뒤틀어 관객을 웃겼던 것처럼, 또 그 웃음으로 사회를 치유하려 했던 것처럼, 다시 돌아온 21세기 명동 무대의 <스카팽> 또한 웃음이라는 무기로 오늘날의 계급구조와 갑질의 문제를 까발리면서, 아직도 여전히 평등하지 않은 세상의 부조리를 종횡무진 신나게 조롱하고 있었다.

스카팽의 내용은 즉흥이 중심이 되었던 꼬메디아(Commedia Dell' Arte)나 대부분의 소극(Farce)이 그렇듯 간결하고 황당하다. 부유한 집안의 아들인 옥따브와 레앙드르는 그들의 아버지 아르강뜨(이번 공연에서는 어머니로)와 제롱뜨가 사업상의 이유로 여행을 간 사이에 각각 가난한 여인 이아상뜨 그리고 집시여인 제르비네뜨와 사랑에 빠진다. 이들은 각자의 연인을 위해 결혼비용과 구출비용을 마련해야 했고, 간절히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 앞에 스카팽이 나타나 온갖 계략과 술책으로 이들의 아버지로부터 그 돈을 뜯어내준다. 하지만 그칠 줄 모르는 스카팽의 장난 때문에 이들의 속임수가 들통 나서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게 되었을 때, 이아상뜨와 제르비네뜨가 각각 제롱뜨와 아르강뜨의 잃어버렸던 딸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갈등은 모두 해결되고, 겹사돈의 기쁨 속에 극은 끝난다. 이정도면 얼렁뚱땅 끝내는 막장드라마라고 누군가 시비를 걸만도 하다. 하지만 몰리에르에게는 해결책이 있었다. 그것은 웃음. 황당함으로 터지는 더욱 커다란 웃음이었고, 그는 폭소의 힘으로 막을 끌어내렸다. 이미 악덕은 비틀었고 연인들은 맺어졌다. 그리고 관객들은 배를 잡고 웃느라고 따질 수도 없었다. 극의 엔딩은 그렇게 축제의 광기로 들썩였다. 오늘의 <스카팽>은 흥겹고 세련되고 치밀하다. 하지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을 꼽으라면 극을 클라이맥스로 밀어 올리는 동력이다. 인물들이 가진 목표에 대한 절실함, 어리석은 광기와 진지함이 조금 아쉽다. 웃음은 연속적으로 이어졌지만 빵 터트릴 바람이 어디선가 조금씩 새고 있었던 건 아닐까? 희극은 다치지 않는다. 쓰러져도 다시 살아난다. 하지만 안전한 게임을 즐기는 여유로운 제물이라면 때로는 축제의 재미를 약화시킬 수도 있구나 싶었다.

 

극장을 나와 왔던 길을 되돌아 걸어 버스정류장에 서니 전광판에 오늘의 뉴스가 뜬다. 아! 저기에 있구나. 오늘밤도 우리 머리위에서 번쩍거리는 저 광기의 진지함과 집요함. 시간이 흘러 조금 더 멀찍이 떨어져서 이곳을 다시 보는 날이 오면, 과연 우리는 우리에게 어떤 웃음을 터트릴 것인가.

 

진남수 (호원대 교수, 극작가,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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