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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을 이겨내고 진실을 볼 수 있을까?<블루사이공>의 카타르시스

<블루 사이공>은 두려운 눈을 하고라도 저 서글픈 인생을 똑똑히 바라보라며 

우리를 밀어붙인다.”

 

진남수의 무빙액트⑤

카타르시스란 비극이 관객에게 주는 효과이자 목적으로, 비참한 운명으로 인해 겪게 되는 주인공의 참혹한 고통을 보고 두려움과 연민을 느끼며 관객의 감정이 정화되는 것을 뜻한다.

이것은 슬픔도 아니요 통쾌한 전율은 더더욱 아니다. 카타르시스는 엔딩에서 느껴지는 순간의 감정이 아니라 인간의 영혼이 한 차원 더 고양된 상태에 도달하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이러한 이론적 설명을 명쾌하게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인지 아리스토텔레스의 카타르시스에 대해서는 다양한 이론과 설명이 존재한다.

그 옛날 축제의 날, 수천에서 일만에 이르는 시민들은 함께 모여 앉아 공포에 질린 눈으로 한 인간에게 주어진 가혹한 운명을 목격했다. 그들은 비극의 주인공에 감정이입하여 인간존재의 한계와 무기력함을 보았고, 그 어둡고 우울한 시간을 견딤으로 얻게 된 어떤 깨달음은 인간의 영혼을 한 차원 더 높은 곳으로 이끌었으리라. '두려움은 직시하면 그 뿐, 바람은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극복하는 것이다.'라는 영화 <최종병기 활>의 대사처럼 그것이 고통이든, 운명이든, 역사든, 정면으로 직시하는 순간에라야 비로소 우리는 우리 안에 지닌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도 모른다.

블루사이공이 돌아왔다. 15년 만에.

'월남에서 돌아온 1943년생 김상사'는 여전히 아팠다. 고엽제 후유증에 몸이 아팠고, 자기 때문에 죽어간 고향사람들에 대한 기억에 아팠고, 전장에 두고 온 사랑에 가슴 아팠고, 전우들을 모두 잃고 혼자 살아 돌아온 미안함에 평생을 아팠다. 그렇게 아픈데 죽을 수가 없다. 돌아온 김상사가 어찌된 영문인지 돌아가실 수가 없다. 전쟁의 공포와 고통의 기억에 사로잡힌 김상사는 가히 우리나라 근대사의 비극적 결정체라 할만하다.

디오니소스와 아폴론의 균형처럼 거대한 감정의 격랑은 그 크기만큼 이성적인 형식을 통해야만 표현이 가능하다했던가. 회상방식의 구성으로 역사적 통찰의 거리감을 부여받은 우리는 시간을 거슬러 그의 기억을 따라 여행을 시작한다.

함경남도 북청군 신창읍 토성리 1구 1033번지. 그 집에 살던 아이는 국군이 학교 운동장으로 들어올 때 태극기를 흔들며 따라온 사람을 지목하지 않으면 부모를 죽이겠다는 인민군의 협박에 손가락을 뻗었고 그 손가락 끝마다 사람들이 죽었다. 아이는 빨갱이로 불렸다. 남으로 온 아이는 자라서 빨갱이를 때려잡는 군인이 되어 베트남의 전쟁터로 간다. 이국의 전쟁터에서 청년은 그 나라 사람들이 우리와 똑같은 하늘의 자손들이란 것을 알게 되고, 한 여인을 뜨겁게 사랑하고 운명의 소용돌이 속에 전우를 모두 잃고 그녀와도 이별한 채, 홀로 고국으로 송환된다. 끔찍한 고통의 장면들을 하나하나 다시 목격한 김상사는 마지막 순간, 어린 시절의 자신을 마주보고 고백한다. "무서워서 그랬어" 그리고 그는 비로소 이 세상을 떠났다.

정신분석에서 말하는 것처럼 카타르시스가 마음속에 억압된 감정의 응어리나 상처를 외부로 드러냄으로써 정신적 안정을 찾는 것을 의미하는 거라면 누구보다 먼저 김상사가 카타르시스를 느낀 셈이다.

<블루사이공>은 전쟁이라는 가혹한 운명에 내몰린 인간의 공포와 무력함을 연민하며 길 떠나는 혹은 떠난 이들에게 위로의 손을 내밀어준다. 그리고 남은 건 우리. 식민지의 역사. 전쟁의 역사. 민간인 학살의 역사.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무섭고 가슴 아픈 시간들이다. 그 오랜 시간 묵어온 감정의 응어리는 지금 어떤 크기와 냄새를 가지고 있을까?

<블루사이공>은 두려운 눈을 하고라도 저 서글픈 인생을 똑똑히 바라보라며 우리를 밀어붙인다. 가만히 보고 있자니 무서워서 그랬다 고백하고 길 떠나는 인간 김문석이 어느 순간 아름다워진다. 우리는 언제쯤 두려움을 이겨내고 역사의 진실을 들추어 또렷이 볼 수 있을까? 연극은 인간과 삶의 진실을 추구해 왔다. 또한 인간의 영혼을 고양시켜 더 나은 세상으로 발을 내딛게 하는 목적을 일관되게 경주해 온 예술이다. 쇼 오락이 주류가 되고 예술적 가치보다는 경제적 이익을 앞세우는 시대에 잠시나마 다시 돌아온 <블루사이공>이 안겨주는 카타르시스는 그래서 더욱 묵직하고 짜릿하다.

 

진남수 (배우, 극작가, 호원대 교수)

THE MOVE  Press@ithemov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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