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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다 Ask a question – 지켜볼 것인가 행동할 것인가?: ‘The Times They Are a-Changin'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그는 살 것인가 죽을 것인가를 물었다. 요란한 생각으로 고민했고, 답을 정했다. 그리고 행동했다. 지구상에 현존하는 가장 유명한 연극은 그런 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드라마는 문제를 내고, 주인공은 그 문제를 푼다. 그리고 우리는 그 결과를 지켜본다. 어쩌면 우리는 나 아닌 다른 누군가의 행동을 보고 삶이라는 저마다의 문제를 풀기 위해 극장에 가는지도 모른다.

 

5시에 시작한 공연은 밤 11시가 다 되어서야 끝이 났다. 언제든 나가도 된다고 아예 극장문은 공연 내내 열려 있었고, 사람들은 한 장면이 끝날 때마다 이리저리 자리를 옮겨 다녔다. 무대 위에까지 올라가 커피를 마시며 샌드위치를 먹기도 했고, 자기 집 거실인양 소파에 앉아 TV로 공연을 보기도 했다. 관객들은 스마트폰을 꺼내 들고 수시로 찰칵이며 사진을 찍었고, 이 사진들은 실시간으로 sns를 통해 전송되었다.

 

<로마비극>은 이머시브 공연이다. 이머시브(immersive)는 본래 '액체 속에 담그다, 몰두하다'라는 의미로,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허물고, 관객이 공간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면서 적극적으로 작품에 참여하는 공연을 뜻한다. 관객을 향해 펼쳐 보이는 특징을 지닌 낭만주의 무대와 기계장치로 둘러싸인 극장 안에서 불을 끄고 숨어서 지켜보는 20세기 무대를 거쳐, 현대 연극의 주된 특징 중에 하나인 관객배치의 다양성을 이머시브 시어터는 아주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다.

<로마비극>은 매우 현대적이며, 동시에 매우 셰익스피어스럽다. 우선 유니버설하다. 여관 앞마당의 관객처럼 먹고 마시며 동시에 집중한다. 관객은 원하는 것에 주목하며, 귀를 열어 상상한다. 의미를 하나로 한정하지 않으며, 다양한 각도로 바라본다. 수백년의 세월 속에도 생명력을 잃지 않고 유기체처럼 살아 본모습을 잃지 않으면서도 동시대적이다.

공연이 시작하기 전부터 앞무대에 반쯤 내려진 대형 스크린에는 "God, I'm glad I'm not me" - Bob Dylan 이라는 글귀가 떠 있고, 미국의 전설적인 포크록 가수이자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밥 딜런의 노래가 틀어져 있었다. "내가 아니라서 기쁩니다..." 공연이 시작하기 전에도 끝난 후에도 그의 말과 이 공연이 무슨 관련이 있는지 내내 궁금했다. 연출가 이브 반 호프가 셰익스피어 작품을 무대에 올리면서 밥 딜런을 대문에 걸었다는 건 분명 커다란 이유가 있을 것이기 때문에. 집으로 돌아와 지난 2016년 밥 딜런의 노벨문학상 수상소감과 강연을 찾아보았다. 지면상 그의 이야기를 모두 옮길 수는 없지만, <모비딕>, <서부전선 이상 없다>, <오디세이>를 학창시절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작품으로 손꼽으며 권력자들의 선택에 따른 힘없는 자들의 고통, 반전의 메시지와 생명에 대한 예찬, 그리고 셰익스피어가 문학이 아닌 연극무대를 위한 고민으로 작품을 썼듯, 그 의미가 어떻게 읽히든 자신은 부르기 위한 노래를 썼다는 이야기들이었다.

<로마비극>은 물론 정치연극이다. 연출의 말을 빌리자면 정치 그 자체다. 로마제국을 설립하기까지의 힘든 여정을 담은 세편의 이야기 -<코리올라누스>, <줄리어스 시저>, <안토니&클레오파트라>-를 엮어 놓고, 연출가는 우리를 대규모 정치 컨퍼런스 현장으로 불러들였다. 그리고 셰익스피어가 그런 것처럼 어느 한 쪽을 편 들어 선택하지 않고, 역사적인 서술보다는 정치 매커니즘에 주목했다.

특히 정치란 사람에 의해 만들어 진다는 것과 정치와 진실은 언제나 서로 상충한다는 사실. 곧, 진실은 타협을 용인하지 않는데 비해 정치는 합의에 의해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그러한 합의도 결국은 압력을 받게 마련이며 공동의 결정도 계속해서 의심 받고, 비판 받고, 폐기 된다는 것을 이야기 했다.

인물들은 끊임없이 논쟁했고, 정치권력은 계속 교체 되었으며, 비극의 주인공들은 죽고, 죽고, 또 죽었다. 그런데, 그러던 사이에 그만 감정이입의 대상을 놓쳐버렸다. 심지어 비극인데.. 나는 어느 쪽에 서야 하나. 그제서야 왜 우리가 무대 위에까지 올려져 있었는지를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극 속에 담긴 의미가 무엇인지 뚜렷이 알 순 없었지만, 연극은 놀라웠고, 우리는 즐거웠다. 돌아가는 우리에게 연출가는 소크라테스처럼 답 대신 문제를 주었다. "사람들이 내핍정책에 대해 불평할 때 정치인들은 어떻게 행동하는가? 전쟁으로 거둘 수 있는 결과는 무엇인가? 전쟁을 해야 할 좋은 이유란 무엇인가? 적에게 항복할 수 있는가? 민주적으로 선출된 지도자가 권력 그 자체에 취하거나 개인의 세력 확대를 위해 힘을 키운다면 어떻게 될까? 정치적인 살인은 허용할 수 있는가?"

그 많은 물음들이 가슴을 묵직하게 누를 때,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며, 또 몰라야 한다고 믿는' 변화하는 예술가는 극장을 나서는 우리를 노래로 배웅해 주었다.

 

 

 

The Times They Are a-Changin'

사람들이여 모여라.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든/ 높아지는 물결을 인정하고/ 뼛속까지 젖어들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대의 시간이 소중하다면 물결을 타라. 아니면 돌처럼 가라앉을 테니/ 시대는 변하고 있으므로// 펜대나 굴리는 작가와 논객들이여 오라/ 눈을 크게 뜨고 보아라/ 기회는 다시 오지 않으니/ 함부로 지껄이지 말라 세상은 돌고 도는 법이니/ 오늘의 패자가 내일의 승자가 될지도 모르는 법/ 시대는 변하고 있으므로// 국회의원들아 정치인들아, 귀를 기울여라/ 회관의 문을 막아서지 말아라/ 문을 걸어 잠그는 자들이 상처 입게 되리니/ 바깥세상의 싸움은 분노로 치열해진다/ 결국 너희의 창문을 흔들고 벽을 두드릴 것이다/ 시대는 변하고 있으니// 이 땅의 아버지 어머니들이여 오라/ 당신들이 이해하지 못한 것을 비난하지 마라/ 당신의 아들 딸들은 통제를 벗어났으니/ 그대들의 방식은 급속히 구식이 되고 있으니/ 거들 수 없다면 가로막지 말라/ 시대가 변하고 있으므로// 한계선이 그어지고, 저주가 퍼부어 진다/ 지금 느린 것은 나중에 빨라질 것이고/ 현재는 곧 과거가 되리라/ 기존질서는 사라지고/ 처음인 것은 마지막이 되리라/ 왜냐하면, 시대는 변하고 있으므로...

 

 

진남수 (호원대 교수, 극작가, 배우)

 

Bob Dylan - ‘The Times They Are A-Changin'

https://www.youtube.com/watch?v=90WD_ats6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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