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칼럼
진남수의 무빙액트① 보다 See

 

"극장 구경하러 갈래?"

그땐 그랬다. 영화 보러 가자는 말과 '극장 구경'이라는 말은 같은 의미로 쓰였다. 어쩌면 그 시절 우리는 정말 '극장'을 구경하러 갔었는지도 모른다. 커다란 간판 아래 동동거리던 발, 번쩍 들어 흔들던 손, 달려가던 웃음, 포옹 혹은 어색한 멈춤, 불이 꺼지던 순간 가슴 가득 머금었던 들숨. 설렘은 그렇게 어둠을 뚫고 세상보다 강렬한 총천연색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뭐가 보이나?" "레드요!"

연극 <레드>의 시작과 끝을 장식한 마크 로스코와 조수 켄의 대사다. 그림을 앞에 두고 나란히 서서 나누는 스승과 제자의 문답. "뭐가 보이나?" 이 물음의 전제 조건은 누군가에게 보이는 것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국의 심리학자 크리스토퍼 차브리스와 대니얼 사이먼스가 했던 주의력 관련 실험에서 '보이지 않는 고릴라'처럼 때론 무주의 맹시(inattentional blindness)가 우리를 보지 못하게 하기도 하지만, 바로 앞에 하나의 작품을 놓고도 우리는 보거나 보지 못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익숙한 충고를 다시 들먹이지 않더라도 '보다(see)'는 이미 '알다'와 같은 뜻을 지니고 있고, '보고 싶다'와 '알고 싶다'는 '관심'이라는 하나의 단어 속에서 마주보며 두근거리는 열정이다.

"보고 싶다!"

보고 싶은 마음은 그리움을, 그리움은 그림을 낳는다. 비로소 그가 그녀가 '황홀, 숙명, 비극'이 그림이 된다. 어쩌면 그림은 그리움의 우물에서 길어 올린 상상물인지도. 그렇다면 깊고 어두운 우물 속에 잠겨 있던 그리움의 정체는 과연 무얼까? 추상미술은 솔직히 어렵다. 마크 로스코는 그럼에도 "관람자와 내 작품 사이에는 아무것도 놓여서는 안된다. 작품에 어떤 설명도 달아서는 안되며, 그것이야말로 관객의 정신을 마비시킬 뿐이다. 내 작품 앞에서 해야 할 일은 침묵뿐이다."라고 권고한다. 어느 날, 그의 그림 앞에서 숨겨진 그의 상상 혹은 감춰두었던 내 마음속의 무언가를 보게 된다면 어떨까? 만약 눈물이라도 터진다면 그것은 멋진 경험이 될까, 아니면 견디기 힘든 괴로움일까?

정신을 차리고 보니 여기는 미술관이 아니다. 극장이다. 난 무엇을 보러 여기에 왔을까? "...사람..." 우리는 사람을 보러 극장에 간다. 그 사람은 로비에서 포옹 혹은 악수로 맞이한 사람이기도 하고 무대에 선 "그" 이기도 하고, 그를 통해 비춰보는 "나"이기도 하다. 우리는 행동을 통해 인간을 본다. 그가 보는 곳을 함께 보고, 그가 원하는 것을 통해 그를 알고, 그의 선택에 관심을 기울인다. 드라마는 갈등과 선택의 이야기요, 극장은 인간을 이해하는 공간이다. 로스코는 극의 말미에 자신의 그림이 걸릴 예정이었던 최고급 레스토랑에 작품료를 모두 반납하고 자신의 작품을 회수한다. 그 순간 우리는 예술의 가치와 내가 속한 인간 존재의 위대한 승리감으로 뜨거워진다. 곧이어 어둠이 찾아왔고, 지는 해의 꼬리 같은 붉은 빛이 잠시 빛났고, 다시 환해졌을 때 박수 받아 마땅한 사람들이 우리를 향해 걸어 나왔다. 누군가 그랬다. "어떤 어둠속에서라도 눈을 감지 않고 견딘다면 잠시 후 세상 모든 존재들은 제각각 머금은 빛을 발하며 우리에게 모습을 드러낸다"고. 로비로 나와 계단을 오르니 유명배우의 얼굴이 담긴 커다란 현수막이 눈에 띤다. <오이디푸스>다. 극한의 두려움 속에도 고개 돌리지 않고, 자신이 누구인지를 똑똑히 바라본 인간. 무지한 두 눈을 찌르고 광야를 향해 피 흘리며 뚜벅뚜벅 걸어갔던 인간. 보라! 비극속의 인간은 저 현수막의 커다란 얼굴만큼이나 거대하다. 3월이면 저곳으로 윤동주가 온다. 파란 구리거울 속 부끄러운 얼굴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으며 길고 깊게 응시하던 시인을, 무사의 마음으로 시를 쓰고 달을 쏘던 그를 그려 본다. 봄이다. 그리움이여! 보라고 봄이요, 보여서 '봄' 일테니 보자! Spring Awakening 사랑으로 눈 뜨는 봄이다.

 

진남수 (배우, 극작가, 호원대 교수)

 

진남수

부산출생. 동국대 연극영화학과 동대학원 졸.  극단 수레무대 창단동인으로 <스카펭의 간계>, <시집가는 날> 등에 출연 했고, 극단 모시는 사람들에서 배우 및 연기감독으로 활동하였다. 출연작으로는 <들풀>,<거주자 우선 주차구역>,<황야의 물고기>,<몽연> 등이 있었고, <블루사이공>,<오아시스 세탁소 습격사건>등에서 연기감독을 맡았다. <윤동주 달을 쏘다>,<홍도>,<당신의 아름다운 시절>등 다수의 뮤지컬을 연기지도 했으며, 뮤지컬 <메밀꽃 필 무렵>, <생일파티>, <소리극 서편제>등의 대본을 썼다. 현재 호원대 공연미디어학부에서 연기와 연출을 지도하며 애플씨어터의 <바냐삼촌>에 출연중이다.

 

 

THE MOVE  Press@ithemove.com

<저작권자 © 월간 더무브 THE MOVE,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THE MOVE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1
전체보기
  • 칼날댄서 2019-03-16 20:34:16

    봄바람에 간다간다 나는간다..
    살랑살랑 치마바람 맞으러~~~~
    빨강치마, 파랑치마,...술독쌓인 동네 극장.
    동해 7번국도로
    메밀꽃 필 무렵.
    교동닭발 붉은 댕기 찾으로...
    옛 극장으로
    2019년 봄바람이여 나에게 오라   삭제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