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혼례식(윤전일, 장윤서) ©허웅

창작(創作)은 생명력이다. 2015년 탄생이란 첫 숨을 내쉰 후, 지난한 여정을 넘나들었다. 무대예술에서 영혼의 결집체인 작품의 생명력은 숭고하다.

단일 작품이 10년이란 세월을 지나며, 대중성과 예술성을 견지함은 그 자체로 존경받을 만한 일이다. 그 역사적인 현장을 전나래 단장과 함께 목도했다. M발레단의 <안중근, 천국에서의 춤>이 주인공이다.

2023년 8월, 마포아트센터 공연에 대해 필자는 ‘한국 창작발레 레퍼토리의 시금석(試金石)’이라는 제호로 평한 바 있다. 광복 80주년, 안중근 의사 순국 115주기라는 시의성에 맞춰 창작 10주년 기념 무대가 2025년 3월 15~16일(평자 15일 관람),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개최됐다.

2015년 무용창작산실 우수작품제작지원 선정작으로 대학로예술극장에서의 초연 이후, 2017년도는 전남 무안과 여수, 서울(예술의전당, 국립극장)에서 작품을 이어갔다. 2018년 제주, 2021년 서울 공연 후, 2022년 대한민국발레축제 개막작으로 선보였다. 2023년에는 마포, 광명, 성남, 충주 등 서울, 수도권과 지역을 아울렀다.

2024년에 이어 올해는 예술의전당에서 10년의 금자탑(金字塔)을 쌓았다. 창작 10년의 궤적을 따라가면서 몇 가지 포인트를 얻을 수 있다.

첫째는 창작 역량이다. 제작 주체인 발레단의 예술적 역량이다. M발레단 문병남(안무) 예술감독, 양영은(대본·연출) 단장의 리더십 하에 제작진과 출연진이 힘을 모은 결과다.

둘째는 지속성이다. 주요 지원사업 선정과 기관 등의 후원은 작품을 이어갈 수 있는 기폭제 역할을 했다. 펀딩, 펀드레이징의 중요성은 예술경영에서 불문가지다. 관객들의 관심과 사랑은 작품이 이어질 수 있는 근간이기도 하다.

셋째는 확장성이다. 하나의 레퍼토리가 수정, 보완을 통해 단단한 열매를 맺은 후, 확장이 된다는 것은 멈추지 않는 대내외적 기제들이 작용할 때 가능하다. 공연수명(公演壽命)은 주기가 있지만 이 작품은 예외로 해도 손색이 없다.

넷째는 예술성이다. 무용작품이라는 콘텐츠의 성공 요인 중 비중이 가장 큰 것은 이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뤼순감옥에서 시작해 뤼순감옥으로 수미쌍관(首尾雙關)을 이루는 이 작품은 애국이라는 중심어에 사랑, 용기, 평화, 위로, 두려움, 그리움, 슬픔 등 다양한 감정선이 촘촘히 박혀 있다. 관객의 눈과 귀를 만족시키는 역할을 했다. 감정의 고양이라는 숭고미(崇高美) 발산은 미학적 견지에서 볼 때 그 함의가 크다.

뤼순감옥(이동탁, 김리회)©허웅

공연이 시작되면, 영상 속 별빛이 눈송이처럼 떨어진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메타포(metaphor)다. 뤼순감옥에 있는 안중근(이동탁)을 위로하는 어머니 조마리아(김순정)의 모습이 처연하되 따스하다. 안중근과 아내 김아려(김리회)의 혼례식이 펼쳐진다. 남녀 2인무가 아련하다. 기쁨 속 슬픔이 복선 역할을 한다. 웨딩사진 컷 후, 일본군이 무고한 백성을 죽이는 장면은 실루엣 장면으로 처리했다. 직설적이지 않아 오히려 울림이 컸다. 이토의 통감취임 축하연에서 일본군 장교 이시다(윤별)와 이시다의 여인 사쿠라(박지수)의 춤은 매력적이다.

의병부대를 조직한 안중근의 결연한 모습이 긴장감을 높인다. 단총을 든 안중근과 장총을 든 군무들의 비장감이 객석까지 퍼진다. 특히 오케스트라 피트를 적극 활용해 독립군들이 오르락내리락 하는 장면은 공간의 적극적 활용과 사실감 극대화에 주효했다. 안중근이 잡힌 후, 은은한 위로가 이어진다. 무대 삼면의 영상을 배경으로 여자 군무가 펼쳐진다. 슬픔, 그리움을 담은 2인무가 먹먹하다. 하지만 안중근의 꿈은 잠들지 않는다. 자유와 평화를 향한 간구(懇求)다.

통감취임 축하연©허웅

대한독립의 열망이 태극기에 선명하게 아로새겨진다. 단지동맹의 결연함이 몰입감을 높인다. 이토를 태운 특급열차에 안중근의 시선이 고정된다. 그를 향해 방아쇠를 당긴다. “코레아 우라(대한제국 만세)”. 안중근의 외침이 하얼빈 땅을 울린다. 사형을 언도받은 안중근, 마지막으로 떠오르는 건 어머니와 조국이다. 당당히 죽음을 맞이하라는 어머니의 말, 수의를 건네는 장면에선 객석에서 훌쩍이는 모습도 보인다. 안중근의 유언은 천국에서의 춤이 된다. 무대 후방으로 천천히 퇴장하는 안중근의 뒷모습에서 천국을 마주한다.

창작 10주년을 기념한 이번 공연은 ‘천국의 춤, 지상에서 만나다’라고 정리할 수 있다. 레퍼토리 구축을 위한 노력, 주·조역이 따로 없는 출연진의 고른 기량, 초연 때부터 지금까지 무대에서 한결같은 힘을 보여준 김순정 교수(조마리아 역)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작품적으로 보면, 애국이란 키워드에만 주목한 것이 아니라 죽음을 앞둔 고뇌, 그를 위로하는 목소리와 몸짓은 단단한 씨줄과 날줄이 됐다. 윤별(이시다 역)과 박지수(사쿠라 역)의 역량을 확인한 시간이기도 했다. 16일 주요 캐스팅을 맡은 윤전일(안중근 역), 장윤서(김아려 역), 진유정(사쿠라 역)의 예술적 역량 또한 양일간의 무대 완성도를 높였다. ‘안중근, 천국에서의 춤’을 지상에서 만난 뜻깊은 시간이다. 다음 10년을 기대한다.

이주영 무용칼럼니스트  jy034@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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