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칼럼
한·중 합작 뮤지컬, 최부(崔溥)의 ‘표해록(漂海錄)’을 제안한다김승국의 국악정담40
표해록

 

김승국 노원문화예술회관 관장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제주는 우리나라 최대의 섬이자 수려한 경치, 온난한 기후, 남국적인 식생·경관, 독특한 문화와 풍속 등 관광자원이 가득한 곳이며 육지와의 해상 및 항공교통이 편리하여 우리나라 제1의 관광지이자 국제적인 관광지로서 각광을 받고 있다.

요즘은 사드 사태로 주춤하지만 2016년도에는 연간 300만 명 이상의 중국 관광객들이 즐겨 찾던 곳이 제주이다. 그런데 제주에 갈 때마다 늘 느끼는 일이지만 낮엔 보고 먹고 즐길 거리가 그런대로 풍부하지만 밤엔 삼삼오오 모여 술자리를 벌이는 일 외에는 딱히 할 일이 없다. 해외에 나가보면 밤 시간 대에 그 나라의 대표 브랜드 공연을 즐기곤 하는데 제주에는 ‘난타전용극장’ 상설 공연 외엔 별다른 것이 없다. 그래서 제주를 대표할 수 있는 공연을 만들어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늘 맴돌았다. 특히 중국인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는 소재로 된 공연이라면 금상첨화일거라 생각하였다. 한국의 전통문화를 이해할 수 있으면서도 명나라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각 지방의 중국의 풍속과 문화에 빠져들게 하여 중국인들의 가슴 속에 내재되어 있는 중화사상이 분출될 수 있는 소재로 된 한·중 합작 뮤지컬이면 더 좋을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그래서 생각해 본 소재가 최부의 ‘표해록’이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최부(崔溥)의 ‘표해록(漂海錄)’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가? 하멜의 ‘표류기(漂流記)’나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東方見聞錄)’에 대해 들어본 이는 많을 것이나 최부의 ‘표해록’에 대해 들어본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나의 제안이 다소 생뚱맞게 들릴 수도 있다. 최부의 ‘표해록’(A.D 1488)은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A.D 1300년경)’, 일본 승려 엔닌(圓仁:원인) 의 ‘입당구법 순례행기(入唐求法巡禮行記)’(A.D 847)와 함께 중국 3대 기행문 중 하나이자 최고의 작품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이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표해록’이 훗날 1769년 일본에서 ‘당토행정기(唐土行程記)’라는 이름으로 번역되었고 도쿠가와시대(德川時代)에 여러 가지 판본과 사본이 통용되어 일본 사회에서 널리 읽혀졌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우리의 문화적 소산인데 우리 대부분이 모르고 지내고 있다니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표해록’의 저자인 최부(崔溥:1454~1504)는 조선조 중기인 성종 조에서 연산군 조까지 활동한 문신으로서 전남 나주가 고향이다. 그는 ‘동국통감’을 편찬한 역사학자요, ‘신증동국여지승람’을 편찬한 지리학자이자, ‘표해록’을 남긴 기행 문학가이자, ‘탐라시 35절’을 남긴 시인이자, 절의와 의리를 중히 여긴 선비이다. ‘표해록’이 쓰이게 된 사연은 다음과 같다.

최부는 조선조 성종 재위 시절에 조정으로부터 추쇄경차관(推刷敬差官)이라는 관직으로 제주에 부임하였으나 이듬해 부친상을 당해 장례를 치루기 위하여 고향으로 돌아가는 도중 풍랑을 만나 표류하다 지금의 저장성(절강성:浙江省) 닝보(영파:寧波)에 상륙하게 된다. 처음에는 당시 명나라 관리들로부터 왜구로 오해를 받기도 하였으나 나흘 밤 간의 필담(筆談) 심문을 받고 나서야 왜구의 혐의를 벗고 조선의 관직을 가진 사대부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일행은 항저우에서 베이징까지 내륙 대운하를 따라 호송되어 명나라 황제 홍치제(주우탱:朱祐樘)를 알현하고 요동과 의주를 거쳐 조선으로 일행 43인 모두 무사히 돌아왔다.

‘표해록’은 당시 제주의 풍속과 최부와 그 일행들이 중국에서의 지나온 노정과 천연 지세, 중국의 물길 이용 제도, 살림살이와 옷차림새, 인정과 풍속까지 자세히 정리한 기록이며, 특히 양자강의 운하를 관찰하여 상세히 기록하였다. ‘표해록’에 기록된 중국 체험은 136일이다. 반년 만에 한양에 돌아오자 성종은 8,000리 길을 거쳐 온 중국 땅에서의 견문을 기술하여 바치도록 명하였다. 이에 그는 남대문 밖에서 8일간 머무르면서 기술했는데 이것이 ‘중조문견일기’(中朝聞見日記) ‘이며 훗날 ‘금남표해록(錦南漂海錄)’ 3권으로 재 편찬 되었다. 최부는 연산군 재위 시기인 1498년 연산군의 잘못을 극간(極諫)하고 공경대신들을 통렬히 비판하다가 무오사화(戊午士禍) 때 함남 단천(端川)에 유배되었다가, 연산군 10년인 1504년 갑자사화(甲子士禍) 때 애석하게도 참형을 당했다. 그야말로 최부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것이다.

최부의 ‘표해록’은 한국과 중국을 문화적인 동질감을 이끌어내면서도 그 차이를 서로 인정하게 할 수 있는 관광 공연예술상품의 좋은 소재이다. 한국과 중국이 공동으로 대형 뮤지컬 작품을 만든다면 사드문제로 서먹해진 양국 간의 친선 회복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 틀림없다. 양국이 가지고 있는 특장들을 잘 활용하고 협력하여 좋은 뮤지컬 작품을 제작해 보기를 제안해 본다.

 

THE MOVE  Press@ithemove.com

<저작권자 © 월간 더무브 THE MOVE,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관련기사 icon[김승국의 국악정담39]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 '거북놀이' icon글 읽는 소리도 노래가 된, 송서(誦書) icon[김승국의 국악정담37] '경기도당굿 시나위춤'의 비극 icon[탐방-노원문화예술회관] 공연장에서 만나는 교과서 예술여행 icon[칼럼-국악정담36 ] 국립국악원, 변화의 청신호 icon[김승국의 국악정담35] 창작 국악극 '꼭두'가 준 메시지 icon[김승국의 국악정담34] 성공적인 지역 전통공연예술제의 조건 icon[김승국의 국악정담33] 민속춤에 대한 오해 icon[김승국의 국악정담 32] 전통문화 콘텐츠 육성이 중요하다 icon[칼럼-김승국의 국악정담 31] 클래식 음악 학도여! 국악을 깊이 들여다보라 icon[김승국의 국악정담 30] 전통공연예술의 자생력 제고를 위한 방안 icon“새로움은 없는 것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다” icon[김승국의 국악정담 29] 아동국악교육이 왜 중요한가 icon인사 김철호 지휘자 서울시국악관현악단장 취임, 김승국 관장, 노원문화예술회관 취임 icon[김승국의 국악정담 28]-국립국악원에 바란다 icon김승국의 국악정담 27 대한민국이 문화강국이 되려면 icon김승국의 국악정담 26 icon김승국의 전통문화로 행복하기 icon김승국의 국악정담25 전통예술의 모체인 당당한 토속신앙 icon기다림과 느림의 미학_ 가곡, 가사, 시조 icon문화예술교육, 마을이 학교다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