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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국의 국악정담25 전통예술의 모체인 당당한 토속신앙

 

김승국

수원문화재단 대표

 

내가 얼마 전까지 가지고 있던 직함 중 하나가 ‘한국귀신학회’ 부회장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귀신학회 부회장이라고 하니 퇴마사들의 모임을 주도하는 사람으로 여겨서인지 이상한 눈길로 바라보는 것이었다. 그래서 ‘한국귀신학회’에서는 주위의 쓸데없는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 ‘한국무교학회(韓國巫敎學會)’로 명칭을 바꿨다.

요즘엔 악령을 쫒는 사람을 뜻하는 ‘퇴마사’(퇴마록이라는 소설의 영양이 컸다)라는 용어가 일반화되어 있는데 우리의 전통 토속신앙에는 퇴마사라는 개념이 없다. 왜냐하면 우리 무속문화 속의 귀신(鬼神)은 악령이 아니라 영험한 신력을 갖고 있는 신격(神格)으로, 신령(神靈), 신명(神明)등으로 불린다. 하지만 성정이 욕심 많고 탐욕심이 많아, 대접을 극진히 해주면 복을 주지만, 서운하게 하거나 박대를 하면 그에 따르는 벌을 주므로, 무당을 통하여 극진히 모시고 잘 달래야만 했다. 우리나라에서 굿 문화가 발달한 것은 모두 이런 연유 때문이다.

토속신앙은 기층민(基層民)들의 삶 그 자체였고 심지어 유교를 중시하였던 왕실 내명부에 의해서도 받아들여졌다. 서울 은평구 진관외동에 자리 잡고 있는 금성당(錦城堂, 중요민속자료 제258호)이 좋은 사례이다. 이곳에 고종 임금의 탄신일에 돈 7백 냥을 내렸다는 '위축발기(爲祝件記)'문과 고종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던 전패(殿牌:왕의 초상을 대신하는 목패)가 남아 있는 걸로 보아 고종 당시 황실의 굿당으로 사용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우리의 역사와 함께 시작된 토속신앙은 생활문화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내 나이 또래 분들은 유년시절에 집집마다 할머님들이 깨끗한 물을 떠놓고 신령님께 가족의 건강과 자손들의 행운을 비시던 모습들을 모두들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이렇듯 토속신앙 속에는 우리민족의 시원(始原)부터 전해 내려오는 토속적 신앙의식과 이국(異國)으로부터 유입된 도교(道敎)와 불교문화를 주체적으로 용해하여 민족문화의 정체성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또한 토속신앙은 전통예술의 모체이기도 하다. 무속 의례 속에 녹아 들어가 있는 무가(巫歌) ·무악(巫樂)·무무(巫舞)·무복(巫服)·무구(巫具)는 우리 전통음악, 춤, 공예, 복식 등 전통예술 전반의 형성과 발전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무악(巫樂)의 경우에는 일반적으로 전국을 4개의 무악권으로 나누고 있다. 서울과 한강 이북의 경기 지역은 서울무악권, 황해도와 평안도 지역은 서도무악권, 한강 이남의 경기남부지역 · 충청도지역 · 전라도지역 · 경상도 서남지역은 서남무악권, 그리고 경상도와 강원도의 동해안 지역은 동해안무악권이라 한다.

토속 신앙의식 중에는 지역에 따라 예술적, 역사적, 학술적 가치가 크게 인정되어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것들이 있다. 충남 부여의 은산별신제(恩山別神祭), 강릉의 강릉단오제(江陵端午祭), 제주의 제주칠머리당굿, 진도의 진도씻김굿, 부산의 동해안별신굿, 황해도의 서해안배연신굿 및 대동굿, 전북 부안 위도의 위도띠뱃놀이, 경남 통영의 남해안별신굿, 황해도의 황해도평산소놀음굿, 경기남부의 경기도당굿, 서울의 서울새남굿 등이 그것이다. 토속 신앙의식은 가(歌)·무(舞)·악(樂)은 물론 공예, 복식적 요소가 융합된 예술의 보고이며 한국 전통예술의 뿌리라 할 수 있다.

일본은 첨단 산업시대인 지금까지도 그들의 토속신앙인 신사문화를 굳건히 지켜 왔을 뿐만 아니라 지금은 일본을 대표하는 브랜드 관광 자원으로도 활용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제 강점기의 일본은 우리 문화 말살정책의 일환으로 우리의 토속신앙을 미신으로 폄하하였으며, 이러한 행태 문화가 무비판적으로 이어져, 우리의 토속신앙이 무속, 혹은 미신이라는 명칭 아래 아직도 정당한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하고 있음이 너무나도 안타깝다.

불교와 기독교 등 외부로부터 유입된 종교가 우리 땅 위에서 당당히 대접받고 존중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역사의 시작과 함께 면면히 숨 쉬어 온 토속신앙이 폄하되고 존중되지 못하고 있음은 분명 주객이 전도된 일이다. 아무쪼록 우리 토속신앙이 제 자리를 찾아 정당하게 평가 받고 존중되어 이 땅위에 모든 종교가 함께 어우러져 상생하여 나아가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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