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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명현의 감성회로 찾기] 리뷰_'영화를 넘어 체험의 영역으로의 확장'스탠리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라이브 시네마 콘서트

 

  서울시향은 지난 21일 라이브 시네마 콘서트를 선보였다. 이 공연은 워너 브라더스, 런던 사우스뱅크 센터, 영국영화협회와의 협력으로 진행되었다. 2010년 런던에서의 초연 후 서울은 24번째 상영이며, 아시아에서는 상해와 도쿄에 이어 3번째다. 영화 전편을 스크린 상영함과 동시에 영화에 등장하는 사운드트랙을 서울시향과 국립합창단이 담당한다. 또한 영화의 몰입을 위해 콘서트홀 내부에 대형 스크린과 5.1 서라운드 스피커 시스템을 설치했다.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각 장면에 사용된 음악은 단순한 BGM이 아니라 영화 진행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의 몰입과 진행을 위해서는 숙련된 연주가 요구된다. 이 날 사운드트랙으로 실제 연주된 곡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리게티, 하차투리안, 요한 스트라우스 2세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었다. 

이 영화에 들어간 음악들 역시 영화의 인기에 힘입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다. 아마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가장 큰 수혜자일 것이다. 영화의 이 유명한 오프닝곡인 짜라투스트라는 현재는 많은 악단에서 연주되지만, 리게티는 어려운 난이도로 여전히 기피된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의 가장 특별한 레퍼토리는 리게티의 작품들이었다.

 

공연이 시작되고 콘서트홀은 암전되었다. 단원들은 악보 위 조그만 불빛에 의존하며 연주를 시작하였다. 이로 인해 무대는 조그마한 별빛들이 떠다녔다. 그리고 우주를 연상케 하는 어둠속에서 드디어 리게티의 ‘Atmosphere’ 가 연주되었다. 그 이후 자연스러운 음악적 연결과 함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의 도입부가 울린다. 

저음의 짙은 떨림과 연동하여 무거운 입자들이 진동했다. 그리고 이내 어둠속에서 장대한 일출과 함께 트럼펫의 C음이 울려 퍼진다. 트럼펫의 빛나는 광채는 서서히 어둠을 몰아내며 일출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후 유인원이 동물 뼈를 다루기 시작하는 장면에서 다시 한번 짜라투스트라의 도입부가 연주되었다. 특히 이 곡의 도입부는 거대한 자연을 상징하는데, 유인원의 진화 장면과 이 음악은 아주 조화롭게 결합되었다. 같은 맥락으로 인류의 진화의 순간에 상징적으로 쓰인 이 곡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다시 등장한다.

 

중간중간 영화에 삽입된 리게티의 ‘Atmosphere’ 는 거대한 소리 덩어리가 물리적 운동성을 상실한 채 제자리에서 정적인 움직임만을 보였다. 하지만 단원들은 실제로 몹시 역동적으로 분투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놀랐다. 소리의 양극단을 오가는 관악기들의 넓은 범위와 기이한 현악기들의 기법이 눈에 띄었다.

 

스타게이트 장면 영화 캡처

 

이 음향은 영화에서 의도한 대로 초월적인 시간이 흐르는 우주를 나타내기에 충분했다. 그중 후반부 스타게이트 장면이 ‘Atmosphere’ 와 함께 영화의 클라이막스를 이루었다. 온갖 추상적인 우주의 장면들이 음향과 함께 환각을 일으킨다. 샤워하듯 쏟아지는 찬란한 우주의 광채들과 압도적으로 쏟아지는 음향 폭포는 일종의 체험을 가능케 했다. 관객들에게 환각을 일으키며, 우주 속을 유영하게 하였다. 마찬가지로 'Lux Aeterna' 에서도 조성과 선율이라는 요소를 전부 배제해버리고, 시간차로 성부를 쌓아 올렸다. 치밀한 음향설계로 소리들의 거대한 움직임을 구축해, 음향적 홍수를 온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더 이상 영화의 이성적인 서사구조는 중요하지 않았다. 몸으로 직접 닿는 시각과 청각적 쾌감이 영화의 본질이 되었다.

리게티의 레퀴엠 역시 인상적이었다. 최근 본 영화 중 리게티의 레퀴엠이 쓰였던 영화는 2014년에 개봉한 가렛 에즈워드 감독의 ‘고질라‘다. 인간의 통제를 넘어선 고질라에게 접근하기 위해 공수 부대가 하늘에서부터 낙하하는 장면에 이 레퀴엠 中 ‘키리에’ 가 아주 적절히 쓰였다. 

곡에 사용된 마이크로폴리포니(대위법적 진행을 하는 미세한 선율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효과) 기법과 시간차를 두고 낙하하는 대원들의 모습이 너무나도 잘 맞아떨어졌다. 또한 영화 ‘고질라’ 의 세기말적인 분위기를 연상시키는 잿빛 배경과 마이크로폴리포니를 기반으로 하는 비극적 화성이 인상적이었다. 스페이스 오디세이 역시 아주 적절한 장면에 이 레퀴엠이 들어갔다.

 

이날 스페이스 오디세이와 함께 실황으로 접했던 리게티 레퀴엠은 음반과는 다른 차원의 연주로 이해될 만큼 질적으로 달랐다. 영화 주인공들이 검은 돌(모노리스)을 발견하게 되고, 그들이 느낀 무력감과 절망감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영화에서 사용된 음악이 오디오가 아니라, 실제로 연주되어 영화와 결합하니 그 감정이 깊이가 대단했다. 이러한 음향적 절규와 처절함은 지금껏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겪지 못했던 감정이었다. 때로는 처절함을 넘어 음악적 카타르시스가 느껴지기까지 하는 복합적인 감정이 들었다. 

이날 국립합창단의 파트에서 성부들이 아주 치밀하게 갈라지지는 못했다. 하지만 자칫 잘못하면 놓칠 수 있는 음정을 정확히 지켜내는 모습에서 그들의 많은 연습량을 알 수 있었다. 또한 리게티 작품의 난해함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그렇기에 리게티가 의도했던 안개 낀 모호한 공간감과 화성을 만들어내려는 지휘자의 노력에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영화는 주인공의 마지막 여정과 함께 피날레에 다다랐다. 죽기 직전의 주인공의 모습과 다시 태어난 태아의 모습이 한 장면에 병치되었다. 그리고 영화 초반 유인원들의 진화를 알렸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가 마지막으로 연주되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죽음 직전의 노인과 태아를 병치한 순간, 영화는 인간의 존재, 회귀과정, 그리고 진화의 개념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모호하고 불친절한 결말이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연주된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에 기대어 일부 의문을 해소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니체는 본인의 작품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영원회귀를 이야기했고, 슈트라우스 역시 트럼펫의 C음으로 시작해 다시 C음으로 곡을 끝냈으니 말이다.

결국 니체의 주장처럼 존재의 바퀴는 돌고 돈다. 그리고 현재라는 이 순간은 과거와 미래의 집합체이다. 이는 ‘존재’ 라는 관점에서 인류에게 나아가야할 방향, 즉 또 다른 진화를 예고한다. 인류에게는 ‘최후의 인간’이 아니라 니체가 말했던 ‘초인’의 모습이 투영된다. 다윈의 말하는(그리고 앞선 진화의 방식이었던) 자연선택의 진화론이 아니라 니체의 초인적 진화론에 가깝다. 그렇기에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짜라투스트라는 완벽한 선곡이라고 할 수 있다.

 

‘피터와 늑대’, ‘아마데우스’, ‘프랑켄슈타인’ 등 영화와 음악을 결합한 무대들이 근래 종종 보이기 시작했다. 국내의 메이저 오케스트라들이 시도하고 있는 시네마 콘서트의 그 품질이 더욱더 향상되고 있는 시점이다. 오늘 서울시향의 공연 역시 앞으로 시네마 콘서트가 성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앞으로도 위대한 감독과 위대한 음악가들에 대한 경의에서 출발하는 이런 시네마 콘서트가 계속 시도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같은 시도는 위기의 클래식 시장에 새로운 수요를 창출할 수 있는 힌트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대중적으로 친숙한 영화를 통해서, 마냥 어려운 것으로 인식되는 고전 음악의 진입장벽을 낮추는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있다.

 

허명현 객원기자  / 사진제공 서울시립교향악단

 

 

 

스탠리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라이브 시네마 콘서트)

9.21 목 9PM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지휘 : 최수열

합창 : 국립합창단

오케스트라 : 서울시립교향악단

 

서울시향 리허설 , 사진 제공 서울시향

 

 

THE MOVE  Press@ithemov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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