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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현직 오케스트라 악장으로 산다는 것<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206회 정기연주회>

[허명현의 감성회로찾기]

 

지휘 : 정치용 바이올린 : 다이신 카시모토

 

지난달은 빅토리아 뮬로바, 바딤 레핀, 조슈아 벨, 다이신 카시모토 등 최정상급 바이올리니스트들이 연달아 한국을 찾았다. 저마다 제 각각의 목소리를 내며, 같은 악기로도 정말 다양한 음악세계가 존재하고 있음을 알려주었다. 예를 들면, 바딤 레핀이 프로코피에프 바이올린 협주곡에서 보여준 날렵한 음색, 빅토리아 뮬로바가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에서 보여준 서늘하고 건조한 음색 등 저마다의 색깔을 과시했다.

 

Daishin_Kashimoto

다이신 카시모토 역시 대단한 존재감을 드러내며 국내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특히 다이신 카시모토는 그 중 현직 오케스트라 악장이라는 점에서, 최근 한국을 찾은 바이올리니스트들과는 다른 포지션을 차지하고 있다. 사실 다이신 카시모토는 우리에게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악장으로 훨씬 잘 알려져 있다. 협연자보다는 최전선에서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악장으로 익숙하다. 노아 벤딕스-뱅글리(Noah Bendix-Balgley), 다니엘 스타브라바(Daniel Stabrawa)와 더불어 현재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악장 중 한명이다. 다이신 카시모토는 코리안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함께 생상의 바이올린 협주곡 3번을 협연하였다. 1악장에서부터 그의 저력을 금방 알 수 있었다. 연달아 이어지는 자연스러운 트릴은 생상의 작품에 생기를 불어넣었으며, 튀어 오르며 튕겨나갈 듯한 탄성은 유연한 채찍을 떠올리게 하였다. 3악장에서 등장했던 리듬들은 정교했으며, 섬세한 아티큘레이션을 통해, 생상 작품 자체가 가진 매력을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가장 놀라운 점은 다이신 카시모토와 각 파트별 앙상블이었다. 특히 2악장에서 그 역량이 발휘되었다. 목관과 현악군이 주제를 주고받으며, 긴밀하게 주제를 형성하였다. 플롯과, 오보의 솔로파트 역시 흔들림이 없었다. 음반에는 담기지 않는 음향들의 어울림이 화려했다. 다이신 카시모토와 정치용 지휘자 그리고 코리안심포니 오케스트라가 그 지점을 사전에 모두 인지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순간이었다. 물론 가장 크게는 다이신 카시모토의 오케스트라에 대한 이해도에서 기인했다. 각 파트별 소리를 듣고, 소통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오케스트라의 소리를 들으며, 효과적으로 응축된 에너지를 발산하는 순간들을 잘 캐치했다. 또한 다이신 카시모토는 여러 가지 오케스트라 소리에 대응할 수 있는 다양한 소리들을 가지고 있었다. 최근 내한해 활약했던 솔리스트 바이올리니스트들처럼 명확한 특색을 꼽을 수는 없지만,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는 소리 그 자체가 이미 강점이었다.

비슷한 사례로, 바이올리니스트 이지윤의 최근 연주를 들 수 있다. 얼마 전 이지윤은 바렌보임의 선택을 받아, 그가 이끄는 베를린 슈타츠카팔레의 종신악장이 되었다. 그리고 지난 4월 이지윤은 니콜라이 즈나이더가 이끄는 경기필과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을 협연하였다. 바이올리니스트 출신인 니콜라이 즈나이더가 같은 바이올리니스트인 이지윤의 소리를 배려하며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지만, 이지윤 역시 오케스트라 소리에 귀 기울이며 다양한 색깔로 앙상블을 맞추는 모습 역시 대단했다. 이처럼 솔리스트로 활동하는 연주자와 오케스트라 악장으로 활동하는 연주자는 알게 모르게 연주에서 그 차이가 발현된다. 그리고 이들은 서로 필요로 하는 역량도 서로 다르다. 한국은 최근 몇 십년간 국제 콩쿠르를 통해 훌륭한 연주자들을 많이 배출해왔으나, 대부분 솔리스트들에 편중되어 있었다. 하지만 최근 이지윤, 박지윤, 김수연 등 국내연주자들이 유럽 명문악단의 악장이 되었다는 낭보가 전해져 왔다. 무척 고무적인 일이다. 솔리스트로서의 경쟁이 아닌, 본고장이기도 한 유럽 주류의 무대에서 그들과 함께 음악을 함께 만들어 나간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허명현(음악칼럼니스트)

THE MOVE  Press@ithemov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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