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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명현의 감성회로 찾기] 리뷰_섬세함과 현란함의 무지개빛 테크니션조지 리 피아노 리사이틀

 

지난 달 23일, 피아니스트 조지 리(George Li) 의 피아노 리사이틀이 열렸다. 조지 리는 2015년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준우승을 차지할 정도로 훌륭한 기량을 가진 연주자이며, 작년 내한 공연 역시 애호가들의 호평을 받았다. 요 근래 공인된 가장 촉망받는 신성 중 하나이다. 올해의 내한 프로그램은 베토벤과 리스트로 이루어져 있었다.

 

1부의 베토벤은 전체적으로 무거운 분위기를 가져가기 보다는 밝은 색채를 유지하고 균형감 있는 진행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조지 리의 힘 고른 타건은 베토벤 6번 3악장 presto에서 빛났다. 푸가적 요소로 가득한 오른손과 왼손의 진행이 균형감 있게 다가왔으며, 양 손의 대화는 끊어질 듯 다시 이어졌다. 그리고 대위법을 바탕으로 하는 이 대화에서 조지 리는 세기와 박자에 조금씩 변화를 주며 다채롭게 대화를 만들어 나갔다. 때로는 단호한 질문에 유머러스하고 새침한 응답을 하였으며, 또다시 이어지는 같은 질문에는 포르테를 동반한 씨크한 응답을 하며, 그 내러티브적 요소를 강조하였다. 오른손의 옥타브 트레몰로(같은 음을 같은 속도로 여러번 치는 주법) 역시 왼손의 중심음의 색깔에 따라 그 빛깔을 달리해 그 마디마다 다른 색깔을 부어 넣었다. 아주 흥미로운 요소였다.

 

오늘 조지 리가 컨셉으로 가져온 이 방식은 베토벤 소나타 23번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의외성을 바탕으로 진부함을 피하려는 시도가 곳곳에서 보였다. 물론 그 시도는 매순간 귀가 즐겁고 관객들의 호기심을 끌었다. 하지만 거시적 관점에서 바라보면 소나타 23번은 6번과 달리 그 규모와 길이가 대단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야기에 더 큰 굴곡을 주어야 관객들에게 설득력을 얻는다. 일례로 오늘 1악장에서는 전조 후 이어지는 전개가 앞선 진행과 유사해, 진행해 나간다는 서사적 구조를 찾기 힘들었다. 그리고 3악장에서의 Allegro 템포와 코다로 이어지는 Presto 템포가 매우 유사해 구분되어야할 두 파트의 경계가 모호했다. 또한 응축된 힘을 예상하지 못한 구간에서 해소해버려 그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는 방식에 의문을 가지게 만들었다.

 

2부의 리스트로 이루어진 연주를 듣고 조지 리의 연주 방식은 베토벤보다는 리스트에게 더 맞는 옷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소네트에서는 시를 연상케 하는 대목들이 돋보였다. 우선 곡은 다소 느린 템포의 담담한 독백으로 시작했다. 시를 읽어가듯 독백 사이사이 쉼을 주는 부분에서 이 소네트에 대한 조지 리의 애정을 확인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어서 보여준 양극단의 세기를 오가는 다이내믹과 디미누엔도를 활용한 극적인 진행은 조지 리가 음악적 감각이 아주 훌륭한 연주자임을 증명하였다. 특히 클라이막스 파트에서 오른손의 격렬한 상승과 하강 직후 디미누엔도로 속도와 세기를 전환하며 극적인 효과를 자아내는 부분은 압권이었다. 관객들의 심장을 놓아주지 않으며 격렬한 감정을 그려내다가 디미누엔도로 완화시키며 관객의 숨통을 트이게 해주었다. 이와 같이 서사적 흐름에 있어서, 리스트에 의해 음악으로 승화된 소네트(시의 한 형식)가 기존의 소네트 장르만큼이나 그 장르적 쾌감이 대단하다는 사실을 직접 보여준 셈이다. 또한 ‘돈주앙의 회상’ 에서는 ‘비르투오소’로서의 빛나는 모습이 발현되었다. 음이 한음 한음 생기를 가졌으며, 복잡한 화음진행 속에서도 정확하고 섬세한 페달링을 구사해 중심음들의 진행이 돋보였다. 스케일 진행에서는 그 흘러나오는 소리 파장이 아름답기까지 하였다. 그리고 후반부에서 돌입해서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도약을 완벽하게 처리해 내면서 테크닉에 있어서는 완벽한 피아니스트임을 다시 한번 보여주었다.

 

조지 리는 리스트 작품들에서 테크니션이라는 타이틀을 넘어 섬세함의 극치를 보여주었던 순간들도 종종 보였다. 순례의 해 제3년, S 163 中 ‘에스테 별장의 분수’에서는 오른손으로 쏟아지고 흩날리는 분수를 묘사했으며, 그 물안개 뒤로 조심스럽게 모습을 드러내는 듯한 왼손 멜로디 진행을 슬며시 보여주었다. 오른손의 현란함과 섬세함이 끊임없이 왼손 주 멜로디 진행을 흔들어 공연장은 무대 아래로부터 물안개가 피어 올라오는 듯 했다.

 

베토벤과 리스트로 이루어진 거대한 본 공연이 끝나고 박수갈채 속에서 글룩, 쇼팽, 리스트, 라흐마니노프 등 다양한 작곡가로 구성된 앙코르가 이어졌다. 각 곡들이 비록 앙코르로 연주되었지만 본 공연의 일부인 것처럼 완성도가 높았다. 역시나 한음한음 섬세한 컨트롤을 보여주어 더욱더 콘서트홀의 관객들을 열광하게 만들었다. 충분히 만족하고 배부른 메인 디쉬 뒤에 조지 리는 관객들에게 그럴듯한 디저트를 선보인 셈이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이 디저트 배는 따로 있다.

 

글 허명현 객원기자  사진제공 마스트미디어

 

사인회 하는 조리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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