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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예술취향을 저격하라!

 

고대 로마의 격언에 “취미(taste)에 관한 한 논쟁할 수 없다”고 한다. 취미야 각 개인의 주관적 기호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고 우열이 있을 수 없을 것이다.

미적 취향은 어떠할까?

무엇이 아름답다고 말할 때, 그 심미적 가치의 기준은 무엇일까?

판단의 기준은 무엇일까?

칸트에 의하면 미적 판단은 ‘주관적 보편타당성’을 갖는데, 주관적인 판단이 동시에 보편성을 갖기 위해서는 예술 외적인 불순한 요인이 제외된 자유로운 상태인 ‘미적 무관심’과 선험적인 ‘공통감’에 따라 판단하는 ‘이상적 자아’의 상태로 올라가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검열과 블랙리스트’ 사안도 결국은 누군가의 판단에 의해 ‘블랙’이라는 카테고리에 묶어 분류하고 관리해왔던 것이 화근이 됐다. 그 예술에 대한 판단은 미적 기준에 앞서 이념적 편견에 매몰된 맹신이 불러온 것이라 밖에 볼 수 없다.

금전과 권력과 같은 물질적 이해와 다양한 가치관으로부터 비롯된 사회 곳곳에 만연한 부조리와 편견, 몰이해 등은 이제 영화와 같은 환타지가 아닌 현실에서 우리 사회 깊숙이 침투된 병폐를 속속들이 드러낸다. 하물며 크고 작은 지원 사업에 있어서랴.

결국 편협한 이념적 판단에 근거한 미적 가치는 제외되어 홀대받는다. 그러한 예는 앞서 지나온 시대에도 불거져 나왔다. 매카시 열풍이 불어 닥친 50년대 초, 미국의 수많은 공공벽화들이 수난을 겪었고, 좌익 활동에 연루된 예술가들의 작품이 정부 지원을 받는 공공 프로젝트에서 제외되고, 전시회가 줄줄이 취소되고 공산당원인 피카소의 그림이 포함됐다는 이유로 전시회가 취소되기도 했다.

당시 ‘레드 헌트’로 악명 높은 매카시 상원의원의 추종자로 예술영역을 담당했던 조지 돈데로라는 하원의원은 “모든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단순한 방식으로 아름다운 우리나라를 찬양하지 않는 예술은 불만족을 낳는다.

따라서 그것은 우리의 정부에 반대되며, 그것을 지원하는 이들은 우리의 적이다.”고 무교양적인 단순한 예술취향을 말한다. 이에 대해 그것이야말로 공산주의와 파시즘 예술의 특징이 아니냐고 반문한 미술평론가 에밀리 게나우어는 이 일로 분노를 사 ‘뉴욕 헤럴드 트리뷴’에서 해고를 당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코메디 같은 일화는 아직도 여전히 존재하는 것 같다. 특히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우리나라는 이념에 관한 논란이 공적, 사적 이해와 얽혀 분명한 사안에 대해서도 해결이 안되고 사회적, 정치적으로 이용된다.

올해는 특히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를 기리는 ‘통영국제음악제’에서 뜻 깊은 행사를 기획했는데, 국비, 도비 지원이 중단, 예산이 감소되어 오히려 그 규모가 축소됐다. 새로 제작해 공연하기로 계획했던 윤이상의 대표적 오페라 <심청>도 취소되어 아쉽다.

오페라 <심청>은 1972년 뮌헨올림픽 때 위촉되어 동서양간의 문화적 장벽을 허물며 세계인의 화합을 보여주려 한 상징적 작품인데, 기대했던 많은 음악팬들도 실망감이 크다. 예술에 대한 가치 판단과 공적 지원에 있어서 편협한 취향이 아니라 각각의 이해를 넘어 성숙한 사회를 향한 상식(common sense)과 윤리적인 덕을 고양하려는 노력이 더욱 절실할 뿐이다.

 

 

Chief in Editor 임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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