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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일본의 문화적 거리가 느껴지는 공연연극 <애도하는 사람>

두산 아트센터는 2018년 ‘두산 인문극장’의 주제를 ‘이타주의자’로 잡고, 강연과 공연, 전시를 준비했다. 최근 한국 사회가 지나치게 남에 대한 ‘배려’가 없는,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형태로 변질되어져 간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져가는 분위기에, 매우 적합한 선택으로 보인다. 그래서 남을 위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근본적으로 남은 누구인가? 어떻게 하는 것이 남을 위하는 일인지 판단하는 것은 가능한가?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변을 ‘두산 인문 극장 2018’은 준비했다.

2018년 세 번째 ‘인문극장 2018 : 이타주의자’의 공연은 뜻밖에도 텐도 아라타(天童荒太)의 소설을 오오모리 스미오(大森寿美男)가 공연대본으로 옮긴, “애도하는 사람(哀悼人)” 이다.

그러나 한국어 ‘애도’의 한문표기인 ‘哀悼’와 일본어 표기인 ‘悼む’가 다르듯, 죽은 사람에 대한 한국인의 정서와 일본인의 태도는 이번 공연에서 엄청난 차이를 드러냈다. 그래서 한국과 일본은 비슷한 뿌리와 문화에서 자라온, 얼핏 보면, 가까운 이웃처럼 보이는, 문화적 동질감이 있는 듯 보여도, 구체적이고도 본질적인 문화는 다른 줄기와 경로를 통해 발전해왔다는 사실을 이번 공연을 통해 다시 한 번 더 확인해 볼 수 있었다.

김재엽이 연출한 “애도하는 사람”에는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사카츠키 시즈토역의 김동원과 그의 어머니 사카츠키 준코역의 전국향, 여동생 사카츠키 미시오역의 박희정. 그리고 죽은 남편을 어깨에 메고 다니는 나기 유키요역의 김소진과 시즈토를 취재하기 위해 쫓아다니는 잡지사 기자, 마키노 코우타로 역의 김승언, 이렇게 5명의 배우가 출연한다.

2시간 이상 진행되는 연극의 초반부에, 요란한 옷차림으로 등장해, 병원에서 퇴원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리는 시즈토 어머니 역의 전국향이 보여준 연기는 정말 실망스러웠다. 대사가 너무 빨라, 들리지도 않았고, 호흡도 받쳐주지 못했고, 지금 어떤 상황에서, 왜 이런 연기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설득력이 전혀 없었다.

시즈토의 뒤를 쫓아다니는 기자 역을 맡은 김승언 역시 전국향과 함께 한국연극계에서 이미 잘 알려진, 충분히 연기력을 인정받은 배우로 알고 있었는데, 이번 공연에서는 왠지 배역에 대한 접근법이 잘못되어 있는 것 같아 보였다. 죽은 사람에 대한 ‘애도의 뜻’을 표현하는 시즈토역의 김동원이 보여주는 ‘애도의 제스처’도 왠지 어설퍼 보였고, 남편을 살해하고, 교도소에 갇혀 있다가 나온, 유키요역의 김소진도 성량이 너무 얇고, 목소리의 톤이 낮아서, 귀를 기울여 듣지 않으면,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 전혀 모를 지경이었다. 게다가 혼전 임신을 하고, 결혼하기로 약속한 남자와의 가상적인 대화를 진행하는 딸 역의 박희정은 아직 배역에 몰입하지 못해, 배역과 자신의 거리감을 메우지 못하는 연기를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아, 정말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사실은 두 시간 가까이 진행되는 이 공연을 어떻게 지켜봐야하나 매우 곤혹스러웠다. 그러나 곧이어 정말 놀랄만한 반전이 기적처럼 눈앞에 펼쳐졌다. 배우들은 갑자기 미친 듯 공연에 몰입하기 시작했고, 객석 사면과 중앙을 모두 다 무대로 활용한, 신승렬의 무대디자인이 극의 진행과 일체감을 갖기 시작하면서, 동시 진행형의 연출기법이 설득력을 얻었고, 장면의 진행속도도 빨라졌으며, 배우들의 열정도 앞 다투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래서 5명의 배우가 서로 적절하게 어우러지면서, 모든 장면들이 심포니처럼 웅장하게, 의미를 풀어 헤치며, 조화와 화음을 이루기 시작했다. 5명의 배우들이 혼신의 힘을 다해 보여준 이 연극의 핵심은, 죽은 사람을 애도하는 이유가, 그들이 살아있었을 때에, 누군가로부터 사랑을 받았고, 아직 그들이 살아있었던 때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것이었다. 한국적인 ‘애도의 방식’과는 정말 다른 것이다.

공연 초반에 그렇게도 공연보기가 힘들게 느껴졌던 것은, 배우들의 잘못이 아니라, 한국연극의 도입부와 일본연극의 출발점이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모든 일본 연극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일본 연극은 도입부가 분명하지 않다. 그래서 기승전결의 흐름에 익숙한 한국의 관객들은,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 전제된 조건을 바탕으로 출발하는, 일본 연극의 ‘즉발적인 출발’에 당황하게 된다. 특히 죽은 자에 대한 우리들의 생각과 그들의 관점이 다르기 때문에, “애도하는 사람”의 공연은 쉽게 읽혀지지 않는다.

이렇게 한국과 일본의 문화적 거리가 크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들은 우리의 관점에서 보면, 전범자이자 가해자이면서도, 죽음에 관한 담론에서는, 언제나 피해자의 위치에만 머물러 있기에, 결국 그들이 말하는 진실은, 우리들에게는 또 다른 위선과 가식으로만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김창화 (국제극예술협회 한국본부 부회장)

THE MOVE  Press@ithemov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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