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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화의 연극세상 23 열정과 진지함으로 가득채운 무대

 

연극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극단 공연연구소 탐구생활, 신동일 연출)

 

"폭력의 시작과 끝의 순환, 그 관계에 대한 암시,

눈에 보이지 않는 언론의 폭력"

 

1972년 “여인과 군상”으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하인리히 뵐은, 1917년 독일 쾰른에서 태어나 청소년기를 나치가 지배하던 독일에서 보냈다. 그러나 그는 히틀러 유겐트에 가입하지도 않았고, 나치에 협력하지도 않았다.

2017년은 그가 태어난 지 100년이 되는 해이다. 그래서 극단 ‘공연 연구소 탐구생활’은 극단 ‘창세’와 함께 하인리히 뵐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2차 세계 대전 종전 이후 독일 사회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던 하인리히 뵐의 소설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를 김연수 번역, 홍진호 각색, 신동일 연출로 지난 2월 10일부터 26일까지 동숭아트센터 ‘꼭두’ 소극장 무대에 올렸다.

1970년대 독일에서는 극우집단들이 적군파의 테러리즘에 대해 매우 격렬하게 반응했고, 극우 언론들은 미확인 범행을 적군파의 소행으로 단정하는 이른바 ‘마녀사냥’식의 보도를 일삼았다. 사회의 억압과 인권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하인리히 뵐은 1972년 1월, 극우 언론사의 보도방식을 비난하는 글을 독일의 좌파 언론지인 ‘슈피겔’에 발표했다.

 

 

대부분 독일 가톨릭교회의 신도들인 당시의 극우 독자들은 하인리히 뵐의 글을 테러리스트를 옹호하는 글로 규정하고, 비난하기 시작했다. 독일은 전쟁이 끝난 후, 1970년대에 엄청난 경제적인 부흥을 이룩하면서, 물질주의가 팽배해 졌고, 일반 시민들의 도덕성은 타락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부패한 가톨릭교회는 정부의 자본주의 우선정책에 동조했고, 새로운 부를 축적한 독일 사회는 나치 독일의 청산과 독일 분단의 문제는 뒤로 접어두고, 좌와 우로 나뉘어졌고, 극우 언론은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했다.

1972년 9월 10일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하인리히 뵐은 당시 적군파에게 숙식을 제공했다는 이유로 언론의 비난을 받고 해직되었다가 나중에 무혐의로 복직된 하노버 공대 심리학과 교수의 사건을 모델로 해서, 1974년 7월과 8월에 주간지 ‘슈피겔’에 4회에 걸쳐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를 연재했다.

소설에서는 심리학과 교수 대신에 평범한 가사 도우미인 여성 카타리나 블룸을 등장시켰고, ‘폭력은 어떻게 발생하고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가’라는 부제를 달았으며, 한 개인이 언론의 ‘폭력’에 어떻게 대응할 수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었다. 그리고 연재가 끝난 다음에는 책으로 출판했고, 이 작품을 통해 언론의 ‘보이지 않는 폭력’을 가시화했다.

다소 미흡한 부분은 있었지만 열정과 진지함으로 가득채운 이번 공연에서 가장 핵심적인 역할은 카타리나 블룸 역을 맡은 변민지였다. 무대에 등장하지 않은 은행 강도를 파티에서 만나, 그와 동침하고, 경찰의 추격으로부터 그를 도망치게 했다는 사실로 취조를 받으면서, 변민지는 ‘눈에 보이지 않는 언론의 폭력’과 마주치게 된다.

평범한 가사 도우미로 살아가던 그녀는 자신이 평생 성실하게, 열심히 잘 살아왔지만 언론으로부터 그리고 주변으로부터 ‘창녀’와 같은 취급을 받게 된다. 아버지의 보호를 받을 수 없었으며, 이혼한 경력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녀는 기존의 사회 권력으로부터 엄청난 폭행을 당하게 된다.

 

 

그녀를 잘 알고 있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그녀의 결백함을 증명할 수 있었고, 심지어 그녀를 변호하는 변호사 블로르나(한정현 역)와 그의 아내 트루데(정재은 역)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카타리나 블룸이 자신에게 치근덕거리던 블로르나와 트루데의 친구 알로이스(서병철 역)의 별장 열쇠를 경찰이 추적하던 은행 강도에게 넘긴 것이 드러나게 되면서, 카타리나 블룸은 곤경에 빠지게 된다.

그동안 자신을 그렇게 괴롭히고, 보이지 않는 ‘폭력’을 행사해 온 언론사 기자와의 단독 인터뷰를 요청한 카타리나 블룸은 친척인 엘제(정해연 역)이모의 남자친구인 과거 나치당원의 총을 훔쳐, 자신과의 인터뷰에서 그녀를 성적으로 희롱하려던 그 언론사 기자에게 쏜다. 인터뷰보다는 카타리나 블룸과의 섹스에 더 관심이 있었던 극우 언론사의 기자가 과거 나치당원의 총에 맞아 죽는다는 이 아이러니한 결말은, 폭력의 시작과 끝의 순환, 그 관계에 대한 암시로 읽혀져, 전후 독일 사회에 대단한 반향을 일으켰다.

이제 이 소설이 알려진 지 43년이 지났다. 최근 한국 사회의 태극기부대와 촛불 집회의 각기 다른 주장을 보면, 1970년대 독일의 사회적 상황과 매우 흡사해 보인다. 그러나 우린 아직 극우 언론을 향해 겨누는 카타리나 블룸의 총구와 같은 구체적이고 명료한 표현과 결말이 문학과 예술로 형상화되지 못했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

 

김창화 (상명대 공연영상문화예술학부 연극전공 교수)

THE MOVE  Press@ithemov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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