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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화의 연극세상 21포스트모더니즘과 마술적 사실주의 :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연극 <위대한 놀이> (극단 하땅세, 윤시중 연출)

 

쌍둥이 역의 문숙경과 이수현은 이번 공연의 핵심적인 세계, ‘놀이와 거짓말’, ‘현실과 환상’, ‘주어진 삶과 만들어 진 삶’의 이중적 구조를 정확하게 표현해 냈다.

1936년 헝가리에서 태어나, 2차 세계대전을 경험하고, 1956년 반체제 운동을 하던 남편과 함께 오스트리아를 거쳐 스위스에 정착해, 1970년대부터 프랑스어로 작품 활동을 하다가, 2011년에 죽은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3부작 소설, ‘비밀노트’, ‘타인의 증거’, ‘50년간의 고독’이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로 1993년과 2014년에 한국에 소개 되었다.

한국의 대표적 희곡작가이신 윤조병선생님이 이 소설을 각색하셔서, 그 아드님이신 윤시중 연출로 극단 ‘하땅세’ 단원들과 함께 지난 2016년 12월 6일부터 29일까지 두산 아트센터 ‘Space 111’에서 <위대한 놀이>라는 제목의 공연을 올렸다.

 

 

1949년 유고슬라비아 출생의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은 철학자로서 자신이 꿈꾸는 이상적인 세계가 바로 이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이라는 책 속에 들어있다고 얘기할 정도로, 이 작품에 매료되어 있었다. 같은 동유럽 출신의 작가 밀란 쿤데라와 비교되는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문학성과 예술성을 높이 평가한 것이다.

사실 아고타 크리스토프는 밀란 쿤데라만큼 주목받지 못했던 작가다. 그러나 그녀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삶의 비통함을 검은 다이아몬드처럼 빛나게 그려내는 작가’로 알려졌으며, 헤겔, 마르크스, 자크 라캉의 정신분석학을 바탕으로 정치이론, 영화이론 그리고 이론정신 분석학 연구에 집중하고 있는 슬라보예 지젝의 관점에서 본다면,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은 포스트모더니즘과 마술적 사실주의를 결합한 대중문화의 이상적 세계로 보였을 것이다.

2013년에는 이 소설의 1부에 해당하는 ‘비밀노트’가 ‘The Notebook’이라는 제목의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1986년에 쓴 1부 ‘비밀노트’는 오빠를 클라우스로 자신을 루카스로 등장시킨 소설이다. 2부 ‘타인의 증거’는 1988년에 완성되고, 몽상과 거짓말 사이를 오가는 우화인 ‘50년간의 고독’은 1991년에 출간 되었다.

 

 

극단 ‘하땅세’의 공연 <위대한 놀이>는 이 3부작 소설의 1부를 중심으로 구성되었으나, 내용면에서는 2부와 3부의 이야기를 포함하고 있다. 쌍둥이로 등장하는 문숙경과 이수현이 계속 붙어 다니면서 진행되는 이번 공연은 악사로 등장하는 서상권이 멋지게 아코디언을 켜면서,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절묘하게 넘나든다.

엄마로부터 떨어져 할머니(남미정 역)에게 맡겨진다는 1부의 설정을 사실적으로 재현하지만, 무대는 테이프에 의해 구분되고, 화살표에 의해 분할된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아버지의 대 사전’을 들고 할머니 집을 찾아 온 이 쌍둥이가 할머니로부터 ‘사는 법’을 배우면서, 그들이 관찰한 세상을 아버지의 언어가 담긴 사전의 언어로 배운다.

 

 

쌍둥이와 할머니, 악사를 제외한 대부분의 배역은 1인 다역으로, 소설에 등장하는 ‘독일군’과 ‘소련군’, 마을 사람, 닭이나 염소 등 동물을 몸과 소리로 표현한다. 언청이, 하녀, 엄마의 역을 맡은 조선주는 이번 공연에서 쌍둥이 역을 맡은 문숙경, 이수현 못지않게 열심히 바쁘게 움직이는데, 이웃집 개와 섹스를 하는 언청이 역과 먹을 것을 사기 위해 할머니 집에 찾아오는 사제관의 하녀역, 전쟁이 끝나고, 쌍둥이의 새로운 동생과 함께 이들을 찾아 온 쌍둥이 엄마 역과 기타 군인, 마을사람의 역을 도맡았다.

늘씬한 몸매와 치렁치렁하게 기른 머릿결을 휘날리며, 군인의 제복으로, 창녀와 같은 모습으로, 때로는 순박한 시골처녀의 모습으로 다양한 변신을 통해 이번 공연의 분위기를 ‘마술적 사실주의’로 띄우는데 큰 공헌을 한 조선주의 연기는 그 이전의 공연, “쇼팔로비치 유랑극단”에서 보여주었던 차분함과 ‘카르멘’이나 ‘동백부인’과 같은 열정과 매력을 지닌 여배우형 연기와는 전혀 다른 강렬하면서도, 도발적인 모습을 드러내 보였다.

 

 

안정된 연기력으로 사람들이 ‘마녀’라고 부르는 할머니역의 남미정은 이번 공연의 ‘포스트모던’한 스타일 연기를 잘 보여주었고, 쌍둥이 역의 문숙경과 이수현은 이번 공연의 핵심적인 세계, ‘놀이와 거짓말’, ‘현실과 환상’, ‘주어진 삶과 만들어 진 삶’의 이중적 구조를 정확하게 표현해 냈다.

이번 하땅세의 공연에서 특이하게 보였던 것은 무대를 상징적으로 구분하여 기능적으로 사용하면서도, 몇 가지 기본적인 장치와 조명의 효과만으로도 유태인 수용소와 같은 환상적이고도 가상적인 세계를 잘 표현해 냈다는 사실이다. 가장 사실적인 연기를 하면서도, 상징적인 무대를 적절하게 활용한, 뛰어난 공간연출의 힘은 아마도 연출자가 원래 무대미술을 전공했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었다.

 

김창화 (상명대 공연영상문화예술학부 연극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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