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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명현의 감성회로 찾기] ‘극한의 피아니시모와 고귀한 피아니즘’리뷰_라파우 블레하츠 피아노 리사이틀

 

정확히 12년 전인, 2005년 10월. 제15회 쇼팽콩쿠르 결선에서 라파우 블레하츠는 본인의 결선곡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연주했다. 결선이라는 압박감이 굉장함에도 불구하고, 블레하츠는 믿기 힘든 완벽한 연주를 선보였다. 청중들은 이 연주에 기립으로 환호했고, 라파우 블레하츠는 우승과 동시에 4개의 특별상을 모두 휩쓸었다. 같은 시간 폴란드와 멀리 떨어진 극동아시아 한국에서도 이 연주자에 대한 관심은 커졌다. 한국 애호가들의 호기심을 자극했고, 결선의 연주는 만나보고자 하는 열망을 불태우기에 충분했다. 그 후 긴 시간이 흘러, 2013년 첫 한국 내한 일정이 성사되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연주자의 독감으로 내한은 취소되었다. 음악세계와 심지어 그 외모와 병약함마저 쇼팽과 닮은 라파우 블레하츠에 대한 궁금증은 더욱더 커졌다. 그리고 그로부터 4년, 쇼팽 콩쿠르 우승으로부터 12년 만에, 한국에서 첫 내한연주회를 가졌다. 연주회 프로그램은 바흐와 베토벤 그리고 쇼팽이었다.

 

공연은 바흐의 듀엣 네 작품으로 시작되었다. 대게 바흐의 음악이 그러하듯이, 이 곡들 역시 곡 전체가 큰 흐름을 보여주기 보다는, 중간중간 완성된 것들의 집합체라고 볼 수 있다. 스테인드글라스를 만들어 나가듯 중간중간 간격사이에 선을 그어 작품을 완성시켜 나갔다. 화려한 색채의 스테인드글라스가 아니라, 차가운 기운이 맴도는 흑백의 글라스를 연상시켰다. 빛이 들어오는 세기와 굴절도를 미세하게 조정해 칸마다 미묘하게 명암이 변화해가는 스테인드글라스가 격조 있고 우아하다. 하지만 일부 구간에서 아티큘레이션이 뚜렷하지 않고, 템포 역시 균일하지 않아, 연주자의 의도가 무엇인지 모호한 경우도 종종 있었다. 최근 발매된 음반과는 또 다른 모습의 연주였다.

 

뒤이어 연주된 베토벤의 작품들은 초창기 베토벤의 특징들을 보여주었다. 라파우 블레하츠는 중간중간 질문하고 대답하듯이, 여백을 강조하였다. 또한 템포를 꽤 자의적으로 가져가는 대담한 모습도 종종 보여주었다. 그리고 본인의 장기이기도 한 왼손의 무게감이 훌륭해, 주고받는 선이 뚜렷하고 스케일도 고른 베토벤 연주가 되었다.

 

인터미션 이후에는, 쇼팽의 판타지와 녹턴이 먼저 연주되었다. 판타지라는 곡 자체의 굉장한 감정의 굴곡에도 불구하고 아주 절제된 연주를 보여주었다. 도입부 리듬에서는 앞으로 펼쳐질 곡의 방향과, 절제에 대한 의지를 볼 수 있었다. 시종일관 직선을 연상시키는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고 아주 세련된 루바토를 선보였다. 쇼팽의 녹턴 op.48-2 역시 감정을 배제한 채, 서늘한 분위기를 유지했다. 한음 한음 그냥 흘러가는 음 없이 자기 역할을 충실히 하였다. 특히 왼손의 저음을 적절히 사용하여 아주 기품 있고, 쿨한 녹턴이 되었다.

 

이후 이어진 쇼팽 소나타 2번은 오늘 공연의 백미였다. 블레하츠의 소나타는 밀도는 높지만 다소 가벼운 첫 음으로 시작하였다. 그 후 이어지는 리듬은 전혀 과장되지 않고 우아했다. 지나치게 서두르지 않으면서도 효과적으로 불안감을 조성하였다. 소나타 2번의 강렬한 파토스(Pathos)적 유혹에도 불구하고, 본인 스스로가 연주에 지나치게 빠져 들어가지 않았다. 관조적 시선을 유지한 채, 곡이 어떻게 들릴지 철저히 계산하였다. 관객들의 뇌를 끄덕이게 하려는 로고스(Logos)적인 설득을 하는데 공을 들였다. 스케르초 악장에서 이야기의 색채를 바꾸기 위해 등장하는 accelerando 에서도 과장된 변속을 보여주지 않았다. 확실히 부점을 짚고 꽉 찬 음을 연주해 절제된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3악장에서, 블레하츠는 가장 아름답고 기적 같은 순간을 콘서트홀에 박제했다. 블레하츠는 무거운 발걸음의 장송곡을 지나, 중반부의 아름다운 멜로디를 아주 여린 피아니시모로 끌고 갔다. 이 여린 멜로디는 무대 밖에서 불어오는 바람처럼 콘서트홀을 떠다녔다. 이 아름다운 노래를 숨을 죽이고 지켜보고 있는 도중, 블레하츠는 한단계 더 여린 극한의 피아니시시모를 보여주며 다시 한번 곡의 깊이를 바꾸어 놓았다. 나지막한 탄성과 함께, 숨 막히는 압박감이 느껴질 정도의 여린 세기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여린 세기는 그 어떤 강력한 세기보다 그 감정적인 효과가 파괴적이었다. 의식하고 있던 모든 생각들을 무너뜨렸고, 기적같은 순간이 탄생하였다. 쇼팽의 피아니시모가 과연 무엇인지 알 수 있는 몇 분간의 잊지 못할 아주 특별한 순간이었다.

 

그리고 곡은 이내 다시 장송곡풍으로 이어지면서 화성의 미묘한 색채가 변해갈 때마다 영리하게 크레셴도로 서서히 세기를 조정해 나갔다. 그 화성의 표정 변화와 크레셴도가 너무 자연스럽게 맞물렸다. 그렇기에 어느덧 가랑비에 옷 젖듯 음량은 최고조의 세기에 임박해 있었다. 블레하츠는 음악에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완벽히 소나타를 장악하고 있었으며, 아주 체계적이고 아주 기능적인 연주를 선보였다.

 

이번 첫 내한으로 한국관객들은 라파우 블레하츠를 새로운 측면에서 보게 되었다. 쇼팽 콩쿠르 우승자라는 타이틀은 그를 설명하기에 현저히 부족했다. 흔히 생각하는 감성적인 쇼팽의 인상보다는, 훨씬 차가운 이성적 판단을 중시하는 성향의 연주자이다. 조심스럽게 이야기하면, 이 우승자 타이틀은 오히려 왜곡된 시각으로 작용했을 수도 있다. 결국 쇼팽콩쿠르 우승자라는 타이틀을 내려놓더라도, 라파우 블레하츠라는 연주자의 정체성을 설명할 수 있는 기점(起點)이 되는 공연이었다. 또한 지금까지 그의 음반들만으로는 그의 음악세계를 듣고 소통하기에 턱없이 부족했음을 알 수 있었다. 운이 좋게도,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한 연주자의 성장을 직접 귀로 들어볼 수 있는 의미 있는 밤이 되었다. 앞으로의 성장과정이 더욱더 기대된다.

 

허명현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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