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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ial] 국악 TV 개국에 앞서

 

악(樂)이란 하늘에서 나와 사람에게 붙인 것이요, 허(虛)에서 발(發)하여 자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니 사람의 마음으로 하여금 느끼게 하여 혈맥을 뛰게 하고, 정신을 유통케 하는 것이다.

느낀 바가 같지 않음에 따라 소리도 같지 않게 되니, 기쁜 마음을 느끼면 그 소리가 날아 흩어지고, 노한 마음을 느끼면 그 소리가 거세고, 슬픈 마음은 그 소리가 애처롭고, 즐거운 마음은 그 소리가 느긋하게 되는 것이니, 그 같지 않은 소리를 합해서 하나로 만드는 것은 임금의 인도 여하에 달렸다. 인도함에는 정(正)과 사(邪)의 다름이 있으니 풍속의 성쇠 또한 여기에 달렸다. 이것이 악(樂)의 도(道)가 백성을 다스리는 데 크게 관계되는 이유이다.

- <허백당 문집> 제7 

 

 

 

국악방송에서 최근 ‘국악TV’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개국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국악인뿐 아니라 많은 문화예술인들이 호응하며 연이어 참여하고 있다고 한다. 시대의 흐름이 비주얼과 영상이 압도하는 때이기도 하겠거니와 기술의 혁명이 4차 산업을 운운하며 변화의 능동적 대처를 요구하기도 하니 장기적으로 국악TV는 필요불가결할 것이라 본다. ‘듣는’ 소리에서 나아가 ‘보이는 라디오’ 를 넘어 티브이의 필요성이 대두될 만도 하다. 아니 어쩌면 그다지 이르지도 않고 늦었는지도 모른다. 라디오 방송이 여전히 진행되고 있지만, ‘라디오’ 라는 기기 자체가 슬그머니 사라진지가 언제인지도 모르겠다. 국악방송에서는 높은 청취율을 고지하고 있지만 굳이 대중적으로가 아니더라도 국악방송의 애청도가 국민적으로 얼마나 닿아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생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국악TV 그 필요성과 중요성 이전에 시기적으로 개국 캠페인보다 시급한 선결 과제가 있지 않을까 싶다.

국악의 많은 음악과 무용을 들려주고 보여주기에 앞서 국악과 전통에 대한 삶과 결부된 악(樂), 그 내면의 철학과 인문적인 배경, 서양음악과 차별화되는 우리 악의 다른 매력, 그 맛의 즐기는 방법에 대한 안내, 그러한 보다 실질적이고 현실적인 방식들의 운용이 더 많이 프로그램에 녹아 애청 프로그램이 늘어나고 방송으로는 더 이상 감당키 어려운 콘텐츠로 인해 그 필요성이 절실할 때, 그 때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국악에 다가가는 방법에 대한 더 많은 심도 있는 고찰과 더 많은 방식들이 필요해 보인다. 음악이란 무엇인가? 국악이란 무엇인가? 음악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왜 우리는 국악을 들어야 하는 것인가? 국악은 우리에게 어떤 즐거움을 주는가? 지금 이 시대 우리에게 음악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국악방송은 먼저 그 프로그램에 있어서 확고한 정체성을 가지고 더욱 고민하고 방향성을 모색해야 한다. 매니아를 계속 잡아두기 위한 심화 프로그램과 대중적인 국악 길잡이 역할로서 곁가지 같은 콜라보레이션이 아닌, 음악에 집중한 여러 아이디어를 발굴하고 더욱 치열한 고민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유명 스타, 혹은 연예, 스포츠 방송의 인물이나 대중적인 콘텐츠를 공연히 그대로 접목하기 보다는 그 프로그램의 골몰한 아이디어의 발상을 궁리해 수준 높은 국악을 쉽고 편안하게 전달할 안내의 방식도 연구해야 할 과제다.

우리 음악인 국악의 궁궁한 철학적 이해와 생활에 밀접한 인문적 풍류에 기인한 국악의 차원 높은 철학적 기반을 먼저 이해하지 않고 어떤 특정한 가락이나 선율만으로는 국악의 온전한 감상이 어려울 듯 하다.

옛사람들은 철따라 곳곳에서 '시사時事' (동호회 내지는 커뮤니티) 같은 모임을 통해 산수 경치 좋은 곳에서 무리지어 시를 읊고 노래하곤 했다. 조선 후기 전하는 화첩에 보면 인왕산 계곡에 모인 시사에는 한문학에 능통했던 양반이 아닌, 중인들로 서당 훈장, 규장각 서리, 술집 머슴 등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이 모였다 한다. 이처럼 사대부 양반만이 아니라 일반 백성들이 곤궁한 세상살이에도 문학과 음악을 생활화해 즐겼다는 것이다.

 

산에 가도 너를 생각한다. 바다에 가서도 너를 생각한다. 시사일비(時事日非)-

왜 이렇게 쓸쓸하냐.

산에도 가지 말고 바다에도 가지 말고 어질지도 말고 슬기롭지도 말고 어리고 못나게 돌아 앉아 흐렁흐렁 막걸리나 마시면서 살꺼나.

- 조지훈,  ‘풍류 원죄’

 

<예기>의 악기편- 악기- 음악에 대한 최초의 본격적인 연구서-에는 “무릇 음이 일어나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좇아 생긴다” 고 전한다. 사람이 만들어낸 소리를 음이라고 하는 서양과 달리 동양에서는 우주에 이미 존재해있는 음들 중 사람이 뽑아 쓴다고 여겨 음악이 우주의 질서를 의미한다고 여겼다.

오음을 설명하며 음을 나라가 평안해지는 근본이라 생각했고, <악학궤범>의 서문에 밝힌 음악에 대한 철학은 자연의 섭리와 인간의 세상사를 반영한 원리로 그 의미를 밝히고 있다.

모두들 요즘 쓸모있는, 유용한, 현대에 유통되는 음악을 강조하며 국악의 현대화를 말한다.

그러나 , 한편, 어쩌면 우리의 국악은 오히려 차별화된 접근 방식을 통해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올지도 모른다. 이처럼 우리 국악의 차원 높은 경지를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경박한 세상 풍조에 휩쓸리거나 시류에 영합하지않고 실생활에 기반한 철학적, 인문적 배경을 통해 한발 한발 다가가는 노력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오랜 세월 묵혀온 인문의 근간이 어디 갈까.

옛사람들의 지혜에서 배우는 지음(知音, 음을 알아듣고 알아주는 사람)에 이르는 방식이나 대우탄금(對牛彈琴, 소한테 거문고를 연주해준다)의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

'현대화'라는 이름으로 음악의 변형이 아닌, 고전의 원형을 '소한테도 알아듣게 전달한다'는 식의 전달 방법의 다각적 연구가 필요한것은 아닐까.

‘오래된 미래’로서 우리 국악의 향방에 대한 접근 방식을 다시금 점검해봐야 할 때다.

이러한 근본적인 물음에 대한 더욱 탄탄한 인문적 배경이 뒷받침되지 않고는 국악은 TV, 아니 첨단 OLED , 홀로그램, 4D 등 어떤 첨단 기술로도 국민에게 대중적으로 피부에 닿기 힘들지 않을까 싶다. 또한, 그 무엇보다 트렌드에 맞춤한 기술적 운용의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보다 다른 방식이 더 필요하지는 않는지? 국악의 감상과 전파에 있어서 소통의 매개는 기술에 앞서 악을 도 닦는 것으로 공부하던 선인들의 지혜로부터 비롯되는 것은 아닐까. 오히려 훨씬 더 고전의 방식이 필요한것은 아닐지? 생각해본다.

5천년의 긴 역사를 지나며 전해지는 우리의 옛 음악은 아정한 음악으로 정신을 고상하게 하며 삶과 어우러져 멋을 느끼게 한다. 온고지신의 정신 속에서 살아나는 국악의 전파 방식은 어디로부터 오는 것일까.

 

                                                Editor-in-Chief    임효정

임효정 기자  Press@ithemov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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