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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마트료시카(Matryoshka)를 떠올릴 진짜 러시아 음악’review_모스크바 필하모닉 내한 공연
유리 시모노프와 모스크바 필하모닉

[허명현의 감성회로 찾기] _모스크바 필하모닉

지난 11월 22-24일 예술의전당에서는 유리 시모노프와 모스크바 필하모닉의 내한공연이 있었다. 이번 내한 프로그램은 협연이 존재하지 않는 그야말로 차이코프스키 싸이클이었다.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1번을 시작으로, 마지막 6번까지 전곡을 연속으로 연주하는 3일간의 대장정이었다. 잘 연주되지 않는 1, 2, 3번의 교향곡을 전부 내한 투어 연주목록에 넣어 차이코프스키 교향곡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오로지 러시아 악단만이 가능한 기획이었으며, 러시아 악단만이 보여줄 수 있는 경지의 연주였다. 과거 여러 차례 유리 시모노프는 모스크바 필하모닉을 이끌고 내한한 적이 있는데, 이 3일간의 연주는 기능적인 측면에서 최고수준의 연주를 보여주었다.

 

물론 이들의 연주가 기능적으로 완벽하다고 할 수는 없다. 유리 시모노프와 모스크바 필하모닉은 얼마전 내한한 베를린 필하모닉과는 연주의 방향을 달리 했다. 베를린 필하모닉은 각 악기별로 지구촌 간판스타급 연주자들이 대거 포진해있다. 이들은 개개인들이 보유한 상상을 초월하는 역량을 바탕으로 정밀하고 촘촘한 극세사(micro fiber) 앙상블을 지향한다. 반면에, 이 러시아의 모스크바 필하모닉은 진하고 원색적인 색채로 극적인 효과를 강조한다. 이들의 연주는 원색적인 빨간색과 파랑색을 온통 휘장한 러시아의 목제 인형 마트료시카(Matryoshka)를 떠올리게 했다. 날것 그대로의 금관소리를 빠르게 쏘아대며, 천지를 진동시켰다. 특히 이 금관악기군은 특히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6번에서 처절한 울부짖음이 무엇인지 보여주었다. 다른 오케스트라들은 도달하지 못할 또 다른 비정한 감정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러시아 특유의 서정성을 강조하며 청자들의 마음을 울렸다. 러시아의 음악은 독일의 음악들과 달리, 음악의 정서가 더욱더 직접적으로 마음에 닿기 때문에, 유리 시모노프와 모스크바 필하모닉의 방식은 감정의 전이라는 측면에서 아주 효과적이었다. 이 일일권장량을 초과하지 않는 신파는 러시아 음악과 아주 적절히 콜라보레이션을 이뤘다. 싸이클 내내 그 소리에 귀 기울여 보면, 이들의 소리는 분명 게르기에프와 마린스키 오케스트라와는 다름을 알 수 있다. 오히려 게르기에프와 마린스키는 폴리시(polish)한 세련미를 강조하는 서방세계의 소리 트렌드와 가깝다고까지 느껴진다. 모스크바 필하모닉이 만들어 내는 음악은 청자들의 귀에서 머리로 음악이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곧바로 귀에서 심장으로 직행했다. 귀와 심장까지의 거리가 정말로 가깝다는 사실을 직접 경험했다.

유리 시모노프는 같은 부분들을 연주하더라도 음량, 박자, 프레이징 등 세밀하게 디테일을 달리했다. 이 덕에 곡이 전개되는 모습이 귀에 들렸다. 이는 싸이클의 하이라이트이자 앙코르였던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 中 ‘Introduction’, ‘Dance of Little Swan’, ‘Waltz’ 에서 잘 나타났다. 특히 왈츠 도중 국면이 전환되는 부분들에서 유리 시모노프는 의도적으로 일정 시간 이상의 쉬는 부분을 만들었다. 이 역시 극적인 효과를 높이고, 이야기의 진행을 느끼게 해주었다. 이 백조의 호수 앙코르에 한해서는 모스크바 필하모닉이 가장 품질관리(QC)가 잘된 악단임에 틀림없다. 매번 하나의 불량품도 없이 완벽한 밸런스와 짙은 러시아 서정성을 보여준다. 그들이 만들어 내는 이 음악이 오로지 연습으로 단련된, 설령 영혼이 없는 자본주의 사운드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날의 청자들은 분명 그들의 음악세계 안에서 차이코프스키의 영혼을 발견했다. 이로써 모스크바 필하모닉은 그들이 내한해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준 셈이다.

 

싸이클의 마지막 날은 아쉬웠던 점도 종종 보였다. 3일간 쉬지 않고, 매 공연마다 앙코르까지 온 힘을 쏟아 낸 탓에 6번 교향곡에서는 앙상블이 흔들리는 모습들이 보였다. 전반적으로 느린 템포를 고수했기 때문에 그 앙상블이 어긋나는 모습이 더욱 귀에 들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스크바 필하모닉의 정체성을 보여주기에 충분했고, 많은 애호가들에게 하나의 브랜드로 각인되었다.

 

이 유례없는 차이코프스키 싸이클로 3일간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벽면은 러시아의 원색적 색채로 도배되었다. 게다가 11월임에도 공연 후 눈이 펑펑 내려 운치와 감흥을 더했다. 러시아의 원색적 색채를 쏟아 부은 이 오케스트라는 2019년 쇼스타코비치 교향곡들로 다시 내한한다. 지휘자가 앙코르 때 선보인 회중시계를 바라보는 퍼포먼스는 앞으로 이들의 공연을 눈이 빠지게 기다려야 할 한국 청자들의 몫이 되었다. 이들의 행보가 더욱더 기대된다.

 

허명현( 음악 칼럼니스트)

THE MOVE  Press@ithemov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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