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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선의 풀어쓴 정가] 알고 듣는 우리 노래 ⑧예의염치, 사유(四維)를 실천하는 고결한 인격; 남창가곡 평조 중거 <인심은>
  • 김희선 국민대학교(교양대학) 교수. 문화재청 문화재
  • 승인 2020.12.09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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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의 끝에 되새겨보는

예의염치, 사유(四維)를 실천하는 고결한 인격

 

⑧ 남창가곡 평조 중거 <인심은>

 

인심(人心)은 터이되고

효제충신(孝悌忠信) 기동되어

예의염치(禮義廉恥)로 가즉이 예였으니

천만년(千萬年)

풍우(風雨)를 만난들 기울 줄이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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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진 마음 터가 되고

효제충신 기둥되어

예의 염치로 가지런히 이었으니

천만 년

비바람 만난들 기울 줄이 있으랴

 

*효제충신: 효도, 형제우애, 임금에 충성, 벗 사이의 믿음을 가리키는 말

(국립국악원 『풀어쓴 정가』 2018:34)

 

사유(四維)의 유는 벼리이자 뼈대라는 뜻이며, 사유인 “예의염치(禮義廉恥)”는 사대부와 나라의 인재의 덕목이며 교육의 기본인 네가지 뼈대를 의미한다. “예”는 “원칙과 기본을 넘어서지 않음”, “의”는 “자신만을 위해 스스로 나아가지 않음”, “염”은 “자신의 잘못을 부당히 은폐하지 않음”, “치”는 “올바르지 않은 것을 따르지 않음”이다. 즉 네 뼈대를 갖춘 인재가 벼슬에 나아가 나라를 운영할 때 나라가 잘 세워질 수 있다는 것인데, 다시 말해 인간의 기본 됨됨이를 지칭하기도 하는 사유는 어려서부터 소학(小學)을 통해 매우 중요하게 교육되었다. 어진 마음에 부모에 효도하고 형제간 우애하며 임금에 충성하며 벗 사이의 신의라는 기둥에 사유가 더해질 때 도덕적이며 선한 고결한 인격을 갖추게 된다는 의미이다.

 

조선시대 중요하게 여겨졌던 “효제충신 예의염치”는 선비들이 곁에 두고 그 의미를 새기기 위해 문자도로 그려 집안을 장식하거나 병풍에 담아 가까이 두었다. 문자도는 한자문화권의 특유한 회화문화로 조선에는 중기 이후 유입되어 크게 유행하였다. 특히 “효제충신 예의염치”의 여덟글자를 그린 효제문자도는 각 글자를 병풍의 각 폭에 배치시키는 8폭 병풍으로 인기가 있였다. 각 글자는 관련 고사가 대표하는 상징도상이나 글자 관련 의미의 소재를 그려넣고, 그림이 글자 획을 대체하는 방식으로 도해하여 글자와 회화가 미적으로 조화를 이루도록 하여 교훈적 목적을 드러내면서도 장식을 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때로 효제문자도가 그려진 병풍은 혼례와 제례 등 가정 의례에서 사용하며 실용적 목적도 더하여져 활용도가 높았다. 현재까지도 문자도는 민화의 중요한 갈래로 전해지고 있다.

 

 

이러한 도덕적 교훈을 담은 시조시 <인심은>은 가곡의 세 번째 노래인 중거의 선율에 붙여 노래한다. 중거는 다른 말로 중허리 혹은 자즌한닙이라고도 불리우는데 초장의 중간부분의 선율을 높게 부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중거는 가곡의 파생과정에서 원곡인 <이수대엽>으로부터 가장 마지막에 파생된 곡인데, <이수대엽>보다 덜 느리게 부른다는 점과 3장과 5장에 높은 소리를 낸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선율적으로 원곡인 <이수대엽>과 가장 유사하다.

가곡을 연창으로 부를 때 중거는 이수대엽 바로 다음에 부르고 빠르기도 가장 느린 이수대엽 다음으로 느린 곡이 된다. 장중한 소리를 내며 굵은 요성을 사용하는 남창 우조는 교훈적 주제를 담은 <인심은>의 노랫말과 잘 어우러진다. 남창 우조 중거의 선율에는 <청강(淸江)에> <창랑(滄浪)에> 등을 부르기도 하고 여창 우조 중거에는 <청조(靑鳥)야> <청계상(淸溪上)> <간밤에> <사랑모여> <눈 맞아> 등의 시조시를 얹어 부르기도 한다. 가곡으로 부르는 중거는 같은 사설의 중허리 시조로도 부르기도 한다.

 

<인심은>은 국립국악원 고음향자료복원시리즈(2006)를 통해 두봉(斗峯) 이병성(李炳星)(1910-1960)이 1960년대 남긴 녹음의 음원이 귀한 자료로 남아있다. 이병성 선생은 하규일(河圭一, 1867~1937)의 수제자로 조선 궁중의 음악기관인 장악원의 전악이었던 이수경(李壽卿, 1882~1955)의 장남이었다. 이왕직아악부원 양성소 2기생으로 이후 이왕직아악부의 아악수장을 역임하였는데 동시대의 대표적인 선가인 이동규(현재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30호 가곡의 전수교육조교)와 이정규(전 국립국악원 정악단)의 부친이자 스승으로 한국 선가의 맥을 이어온 대표적 가문을 일구었다. 이 음반에서는 이병성이 녹음한 중허리 시조 <인심은>이 담겨있다. 현재 국가중요무형문화재 가곡 보유자인 김경배의 가곡음반 <김경배 남창가곡 소하가곡>에도 <인심은>은 두 번째 곡으로 수록되어 있다. “예의염치”를 아는 것은 조선시대 뿐 아니라 이 시대 우리들에게도 성숙한 인격을 위해 갖추어야 하는 중요한 덕목이 된다는 점에서 다사다난했던 한 해의 끝에 다시금 새겨 보면 어떨까 싶다.

 

노래 중거 <인심은>-도상구 (인천광역시 무형문화재 제7-1호 남창가곡)

https://www.youtube.com/watch?v=XVCDaxP-awQ

 

 

김희선

 

국민대학교 교양대학 교수,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 국립국악원 국악연구실장 역임

김희선 국민대학교(교양대학) 교수. 문화재청 문화재  themove99@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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