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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선의 풀어쓴 정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삶의 태도- 소박한 자족의 삶⑦ 남창가곡 우조 소용 <불 아니>
  • 김희선 국립국악원 국악연구실장
  • 승인 2020.11.03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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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산 풍속화 <가객 소리하고> (1890년대)

불 아니 땔지라도 절로 익는 솥과

여무죽 아니 먹여도 크고 살져 한 걷는 말과

길삼 잘허는 여기첩(女妓妾)과 술 샘는 주전자(酒煎子)와 양부로 낳는 감은 암소

평생에

이 다섯가지를 두량이면 부러울 것이 없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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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아니 땔지라도 저절로 익는 솥과

여물죽 아니 먹여도 크고 살져 잘 걷는 말과

길쌈 잘하는 기생첩과 술 샘솟는 주전자와 양곱창 낳는 검은 암소

평생에

이 다섯가지를 가진다면 부러울 것이 없어라

 

*절로: 저절로

여무죽: 여물죽

길쌈: 실을 내어 옷감을 짜는 모든 일을 통틀어 이르는 말

양부로: 양부리, 양곱창, 소의 첫 번째 위장인 양과 여러 내장들을 함께 내놓는 요리

감은: 검은

두량이면: 둘 양이면, 둘 것 같으면, 가진다면

(국립국악원 『풀어쓴 정가』 2018:42)

 

 

전염병으로 전 세계가 멈춰버렸다. 자족을 모르는 인간의 욕망이 불러온 자연의 경고이다. 새삼 세상에 다섯 가지만 가지면 부러울 것이 없다는 <불 아니>의 화자의 소박한 자족의 삶을 떠올려본다. <불 아니>는 남창 우조 소용의 곡조에 부르는 가곡의 시어이다. ‘소용’은 시끄러울 ‘소(騷)’, 높이 솟을 ‘용(聳)’의 뜻을 가진 제목처럼 파격적인 곡태를 가진 곡이다. 다른 가곡에 비해 감정을 솔직히 담은 노랫말도, 곡의 이면에 맞게 파격적이다. 쓰고 계속 써도 한없이 솟아나는 화수분 같은 밥과 술, 소와 말, 길쌈 잘하는 아낙네, 이 다섯 가지만 있으면 평생에 부러울 것이 없다는 참으로 소망했던 소박한 일상이다. 비유적이며 유쾌한 노랫말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높은 벼슬과 권세, 대궐 같은 화려한 집, 쌓아도 쌓을 곳 없는 곳간과 한없이 많은 재산이 아니라 적당히 먹고 함께 할 이만 있다면 그것으로 족한 소박한 안빈낙도(安貧樂道)의 경지이다. 인류 모두에게 앞으로 가장 필요한 삶의 태도가 아닐까.

 

조선 후기의 대표가집인 박효관의 『가곡원류』에 묘사한 풍도형용(風度形容)에서 남창 우조 소용의 곡태는 “폭풍취우(暴風驟雨), 비연횡행(飛燕橫行)”-폭풍이 불고 소나기가 몰아치는 하늘에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제비와 같다-로 기록해 놓았다. 활기차고 시원시원한 소용은 처음부터 높은 음으로 시작하여 곡 전체를 긴장되고 빠르게 흥청거리는 느낌을 준다. 소용은 여창가곡에는 없고 남창가곡에만 있는데 남성 창자가 시작부터 끝까지 높은 음으로 강하게 질러내는 소리로 태평하고 한가로운 느낌의 다른 가곡에 비해 개성이 강한 인상을 준다. 특히 연창으로 부를 때 앞의 곡들이 우조 초수대엽으로 시작하여 이수대엽, 중거, 평거, 두거, 삼수대엽까지 노래를 부르고 나서 부르는데 이후 반엽으로 연결되며 계면조로 이어지는데 다리의 역할로 점잖은 정격으로 시작해 조금씩 흥을 돋우워 가는 다리역할로 빠르고 유쾌한 소용을 배치한 것이다. 소용은 삼삭대엽의 가락을 덜어낸 후 옥타브 위로 올려 변주한 곡으로 끝을 올리는 종지형을 가진 독특한 곡이며, 다른 곡에서는 기악반주만으로 연주하는 중여음 부분을 소용은 노래와 함께 연주하는 유일한 곡이기도 하다. 소용은 <소용이>라도고 부르고 <삼뢰(三雷)>라고도 부른다. 우조와 계면조로 다 부르며 곡명은 『삼죽금보』에 처음 등장한다. 우조 소용에는 <불 아니> 이외에도 <아마도> <어제밤도> <저 건너>의 노랫말을, 계면조에는 <어흐마>의 노랫말을 붙여 부른다. 노랫말에 따라 가락도 조끔씩 다르게 부른다. 옛 악보 『현금오음통론 玄琴五音統論』, 『삼죽금보 三竹琴譜』 에 음악이, 『청구영언』, 『가곡원류』 등에는 노래말이 전한다.

 

소박하고 유쾌한 노래 소용 <불 아니>를 들으면 민간의 풍속을 가감없이 그림으로 남긴 기산의 풍속화들이 떠오른다. 마침 국립민속박물관의 특별전 <기산 풍속화에서 민속을 찾다>가 진행 중이다. 19세기 말 20세기 초 활동했던 화가인 기산 김준근(箕山 金俊根)의 풍속화는 당대 우리나라의 다양한 풍속을 그렸는데 당시의 생활상을 잘 살펴볼 수 있다. 우리나라를 다녀간 여행가, 외교관, 선교사들은 기산을 그림을 수집하여 우리나라보다 외국에 소장된 작품이 많다. 특히 기산의 그림 중 민속음악의 여러 장면, 소리, 굿, 연희, 기생 등의 그림은 당시 민간의 전문예인들과 음악풍경을 보여주는 귀한 그림들이다. 소용 <불 아니>의 소박함의 정서와 잇닿아 있는 기산의 그림들이다.

 

기산 풍속화 <기생 배반나고> (1890년대)

 

하규일에 의해 전해진 소용 <불 아니>는 홍원기, 김경배, 이동규, 이정규, 박문규, 문현 등 이시대 대표 남창 가객들에 의해 불려졌으며 독창으로도 가장 즐겨부르는 노래이기도 하다.

 

노래-이동규

https://www.youtube.com/watch?v=aBteXdlX5Co&list=PLoO7d4_wtAa60Ik9O9lpZAiVXfUWWMQnz&index=5

 

 

 

김희선

국민대학교 교양대학 부교수

국제전통음악학회 동아시아연구회장

문화재청 무형문화재 전문위원, 국악방송 시청자위원회 부위원장

 

 

* 《기산 풍속화에서 민속을 찾다》특별전

기산(箕山) 김준근(金俊根)의 풍속화와 그 속에 기록된 우리 민속의 흔적과 변화상을 찾아보는 전시가 현재 국립민속박물관에서 《기산 풍속화에서 민속을 찾다》특별전으로 전시되고 있다.

<밭 갈고 부종(付種)하는 모양>, <여인 방적(紡績)하고>, <행상(行喪)하고>, <추천(鞦韆)하는 모양> 등의 기산 풍속화와 '두부판', '씨아', '시치미', '대곤장' 같은 민속자료 등 총 340여 점이 소개된다.

2020.5.20-2021.3.1  국립민속박물관

 

김희선 국립국악원 국악연구실장  themove99@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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