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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의 기약-속세를 떠나 자연합일과 인격수양의 삶을 그리며⓶ 남창가곡 평조 이수대엽 <강호에>
겸재 정선(1676~1759), 영조 17년(1741), <한양진경> 중 송파진(松坡津)

강호(江湖)에 기약을 두고

십 년(十年)을 분주(奔走)하니

그 모른 백구(白駒)는 더디 온다 하려니와

성은(聖恩)이

지중(至重)하시니 갚고 갈려 하노라

 

 

강호에 때를 정해두고

십 년을 분주하니

그걸 모르는 흰 갈매기는 더디 온다 하겠지만

성은이

매우 크시니 갚고 가려 하노라

 

*강호: 속세를 떠나 풍류와 흥취를 즐기고 수양에 힘쓰던 자연공간

지중: 지극히 귀중함

(국립국악원 『풀어쓴 정가』 2018:32)

 

강호(江湖)는 속세를 떠나 풍류와 흥취를 즐기고 수양에 힘쓰던 자연공간을 뜻한다. 강호에 머물며 자연에 내재한 이치를 찾아 합일하며 심성과 인격을 수양하는 수기(修己)의 도를 중시하는 강호시조이다. 강호를 이상적으로 그리면서도 군은을 잊지않는 감격군은(感激君恩)을 담은 이 시조는 선조와 광해군 시기 문신인 정구(鄭逑 1543-1620)의 작품이다. 공인으로서의 삶과 개인적 이상과의 조화와 균형을 잘 드러내는 강호의 정서를 노래 곡조에 담아낼 때는 어떤 음악이 적당할까? 사대부의 정서를 담기에 꿋꿋하면서도 평온함이 깃든 음악이 제격일 것이다. 가곡 한 바탕 가운데 가장 느리고 평온한 ‘긴 것’, 이수대엽, 긴 자진한잎이 아니었을까.

 

조선 후기의 대표가집인 『가곡원류』에는 당시 유행하던 노랫말을 모아놓았는데 여기에 음악의 정서와 가창방식을 은유적으로 묘사한 4자(字) 2구(句)의 팔자평어(八子評語)로 풍도형용(風度形容)을 함께 기록해놓았다. 각각의 곡조를 가장 알맞은 표현방식으로 노래하고 기악반주로 연주하라는 뜻이다. 이수대엽의 풍도형용은 다음과 같다. 풍도-행단설법(杏壇說法), 공자가 행단(은행나무) 아래 설법하듯이, 형용-우순풍조(雨順風調), 비는 순조롭게 오고 바람은 고르게 오듯이. 음악적으로 표현하자면 풍도는 속도와 선율, 형용은 음역과 리듬이다. 현대적 창법으로 표현하자면 태평하고 여유있게 노래하라. 자연과 합일하고 군은을 잊지않는 강호시조에 잘 어울리는 음악적 선택이다.

 

가곡의 원류는 (삭)대엽이다. 현행의 초수(초삭)대엽, 이수(이삭)대엽, 삼수(삼삭)대엽, 편수(편삭)대엽이 대엽계의 음악들이다. 대엽에 바로 이어 부르는 중거-평거-두거는 초수대엽-이수대엽에서 파생되었다. 그런 면에서 이수대엽은 모체의 음악이다. 가곡의 여러 곡을 연창으로 부를 때 전체적인 틀은 느리게 부르는 (삭)‘대엽’으로 시작하여 보통 빠르기의 ‘농’과 ‘낙’, 그리고 빠르게 부르는 ‘편’의 곡조의 순서로 부른다. 맨 마지막에 다시 느린 태평가를 부르며 흐트러진 마음을 다잡으며 연창을 마무리한다. 남창의 이수대엽은 연창으로 전바탕을 노래할 때 남창 연창 시에만 부른다. 남녀창이 교대로 부를 때는 남창이 가장 먼저 초수대엽을 부른 후 이어 여창은 이수대엽을 부르는데 이어 남창은 이수대엽을 건너뛰고 중거를 부른다.

 

남창은 여창과 달리 절대 속소리를 써서는 안된다. 처음부터 끝까지 배 아래 단전에 힘을 주어 통성으로만 소리를 내야한다. 생목, 겉목 뿐 아니라 여창의 속청(팔세토)은 허용되지 않는다. 음역대도 가장 좁으며, 완만하게 길게 끄는 곡선형의 선율선을 갖는다. 급하강하거나 급상승하는 선율은 찾아보기 어렵다. 즉 장인굴곡(長引屈曲)의 선율이다. 그러나 느리게 부르다보니 다채로운 리듬을 짜 넣어 음악적 완성을 추구한다. 선비 사대부의 마음과 몸가짐을 다 잡을 수 있는 곡조이다. 이수대엽 선율에 <강호에>외에도 <가마귀> <주공도>처럼 권계(勸戒), 계세(戒世), 인륜(人倫)의 주제를 갖는 시조가 노랫말인 까닭이다. 19세기 김천택의 『청구영언』(육당본)에 정리한 580수의 시조 가운데 가장 많은 악곡이 바로 이수대엽이었는데 총 391수를 실었다. 이수대엽의 노랫말 대부분이 같은 주제로, 이수대엽의 풍도형용과 일치한다.

 

이수대엽 <강호에>를 들으면 겸재 정선이 그린 <한강진경>의 아름다운 풍광들이 떠오른다. 자연을 담은, 강과 산이 표현된 여러 풍경이다. 송파진도, 압구정도 푸르름과 평온이 가득한 강과 산의 아름다운 풍경으로 남아있다. 사대부 화자가 꿈꾸었던 강호의 자연풍광이었을까.

겸재 정선(1676~1759), 영조 17년(1741), <한양진경> 중 압구정도

금하(琴下) 하규일(1867-1937)에 의해 전해진 <강호에>는 이주환, 이병성, 홍원기, 이동규, 이정규, 김경배, 박문규 등 동시대 대표 남창가객들에 의해 불려졌다. <이동규 남창가곡>이 두 번째 곡으로 실려있다. 10여분이 넘는 긴 곡이다. 어느 때 보다 자연의 소중함을 깨닫는 오늘, 한 여름 녹음의 자연 속 심신의 수양을 돌아볼 여유를, 남창 이수대엽 <강호에> 감상에서 찾는 건 어떨까.

 

노래-박문규 <박문규 전통가곡 발표회>

https://www.youtube.com/watch?v=ZfdoJ-t5OlI

 

김희선

국립국악원 국악연구실장, 국민대학교 교양대학 부교수

문화재청 무형문화재 전문위원

 

 

THE MOVE  Press@ithemov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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