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ART 작가
[무브갤러리] 사실주의로 빚은 토속적 홍송(紅松)의 우미_이희호 작가금산 이희호는 한결같이 소나무만을 그린다

항도 부산에서 활동하고 있는 중견 서양화가인 금산 이희호는 한결같이 소나무만을 그린다. 그는 우리나라의 전통 소나무인 홍송(紅松)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찾아간다. 홍송은 우리네 대표적인 토종 수종이면서도 지역마다의 풍토와 기후 등의 조건에 따라 그 자태가

달라지는 특성을 갖고 있다. 그의 화폭에는 경주 남산, 충남 계룡산, 양산 통도사의 홍송이 등장한다. 우리나라에는 일명 소나무 작가들이 여럿 있다. 이희호도 그 부류에 속하지만, 그들과의 차이점은 바로 한국화 기법과 서양화 기법을 융합하는 그만의 독특한 제작기법에 있다. 크고 작은 유화용 붓의 터치들을 주로 활용하는 다른 작가들과는 달리 이희호는

수채화용 세필에만 매달린다. 그는 2호짜리 세필로 큰 화폭에 소나무를 그려 나가는데, 그 행위는 그것이 창작과정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수도승이 득도하려고 정진하는 고행에 가깝다.

예를 들어 100호짜리 화폭의 제작기간이 6개월 이상 걸린다는 말을 들으면서 필자는 “그가 현대를 사는 작가인가”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그런가 하면 그는 1호당 세필 1개가 마모될 정도로 소나무 형상의 꼼꼼한 묘사에 소모되는 세필의 숫자는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는다.

금산 이희호의 홍송 시리즈는 그렇게 태어난 것이다. 그는 홍송 군락지를 방문하고 그 자신의 마음과 사진기에 그 지역 홍송이 갖고 있는 독특한 이미지를 담아온다. 그런데 그가 작업장에서 홍송의 형상을 그려내면서 자유분방하게 뻗은 줄기들의 윤곽선에만 실재감을 용인한다. 바늘처럼 얇고 꼿꼿한 소나무잎, 거북이 등처럼 갈라진 줄기의 표면 등의 묘사에서 그는 반복적, 다층적 묘사와 채색을 한다.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할 때는 한국화로 출발했지만, 지금은 서양화의 무대에 서 있다. 그런 연유에서인지 몰라도 그의 작가정신, 제작기법 등에서는 양자의 특징들이 혼재해 있다. 최근에는 소나무의 화면구성에서 평원법 대신에 고원법을 선호한다고 했다. 그것은 중국 북송의 곽희(1023-85)가 주창했던 산수화의 구도법에 등장하는 용어들이다. 그런데 필자는 그것을 바로크 화가들이 선호했던 클로즈업(close-up) 기법, 혹은 르네상스 화가들이 활용했던 선원근법(Linear perspective)으로 바꾸고 싶다.

소나무의 줄기를 근경에서 중경을 거쳐 원경으로 이어지게 배치하는 과정에서 근경의 줄기를 자연스럽게 클로즈업시키지만, 이와는 반대로 중경에서 원경으로 이어지는 부분은 오히려 실제보다 더 작게 처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화면에서 원근감, 공간감이나 깊이감이 한층 더 심화되었으며, 소나무가 전체 화면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답답하다’거나 ‘압도적이다’는 등의 느낌은 전혀 생기기 않는다. 소나무 잎들은 원경으로부터 중경, 근경으로 나아오면서 반복적으로 중첩시키는 기법을 통하여 그 무리들 사이의 공간감이나 입체감을 구현해내고 있다. 그것은 마치 한국화의 안료인 진채나 석채를 동일한 공간에 7번 이상 덧칠하여 원하

는 색을 발현하는 것처럼, 그는 유화 물감을 린시드유와 묽게 개어서 이렇게 덧칠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인고의 과정을 거쳐 탄생한 그의 홍송들은 우리가 그 아래나 속을 거닌다면 청량한 공기를 쐬리라는 기대감마저 드는 것이다.

오로지 세필로써만 장시간에 걸쳐 그려내는 그의 소나무들은 따라서 작가의 사의(寫意)가 자연스럽게 배어 있다. 그는 각 지역마다의 특별한 역사, 이야기 등이 담겨 있는 실제 홍송들의 형상을 빌려오면서도, 거기에 그 자신의 이미지를 보태고 있는 것이다. 그 소나무들은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져온 사물인데, 거기에 작가는 현재와 미래의 시대정신을 투영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소나무 잔가지들의 자유분방한 자태를 빌어 우리네 삶의 모습을 비유하기도 하고, 늙은 소나무를 빌어 세상의 온갖 풍파를 겪어온 불굴의 인간을 비유하기도 한다. 그 화면에서 소나무가 차자하는 공간을 제외한 나머지 공간에 대해서는 가장 간략하게 처리하고 있음으로 인하

여 소나무를 통한 사의적 표현은 오히려 부각되고 있다.

금산 이희호는 왜소하고 깡마른 체구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안경 너머의 눈초리가 매서워 고집이 센 작가로 비쳐진다. 2호라는 작고 부드러운 수채화용 붓으로 점성이 강한 유화물감을 묻혀 대형 캔버스 천 위에 홍송을 그려내려는 욕심 아닌 욕심이 바로 이러한 그의 정신성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과언일까. 이러한 그의 작가정신과 소재를 해석해내는 기법을 종합하여 그의 화풍을 말하자면, 필자는 그것을 사의적 사실주의로 명명하고 싶다. 각 지역마다의 독특한 향취를 지니고 있는 홍송들의 이미지를 가져다가 장기간의 제작과정을 거쳐 새롭게 탄생시키는 그의 홍송 시리즈는 차창 밖으로 스쳐가는 풍경 속의 소나무들이 아니라 그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손상시키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오히려 그만의 우미적인 자태로 변모시킨 소나무인 것이다.

-최병길(철학박사 원광대학교)

 

이 희 호

(李熙浩) 호: 금산(金山) Lee Hee Ho

경성대학교 예술대학 회화과 졸업(1985)

부산미술대전 특선(1984)

개인전 8회 및 미술제 단체전 등 다수

現> 대동중학교 미술교사 / 부산미협 회원

 

 

THE MOVE  Press@ithemove.com

<저작권자 © 월간 더무브 THE MOVE,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THE MOVE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