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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풍요로운 서정데이비드 호크니 ‘큰 첨벙 A biggger splash’
‘A biggger splash (큰 첨벙)’, David Hockney, 1967, 캔버스에 아크릴, 243.8×23.8cm, 개인소장

 

 

‘첨벙!’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방금 누군가 풀장으로 뛰어들었다. 따가운 햇살이 가득한 한낮의 정적을 깨는 순간이다.

                                                 ” 

 

 

‘첨벙!!’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방금 누군가 풀장으로 뛰어들었다. 따가운 햇살이 가득한 남부 캘리포니아 어느 저택의 정원, 한 낮 정적을 깨뜨리는 순간이다. 이 그림의 제목 역시 <첨벙>이다. 살아있는 미국 팝아트의 대가 데이비드 호크니(1937-) 작품이다.

 

미국 정체성을 상징하는 미술 팝아트는 20세기 서구미술이 거둔 가장 성공적인 예술 흐름이다. 1960년대 영국에서 씨를 뿌렸지만 미국에서 꽃을 피웠고, 풍성한 열매를 거둬 전 세계에 파종하고 있다. 그 결과 현재 세계 여러 나라에서 새로운 꽃과 열매로 자라나고 있다.

 

팝아트의 성공은 대중문화와 같은 궤도로 이루어졌다. 대중문화의 꽃인 영화는 프랑스에서 태어났지만 미국에서 성장했고, 팝송 역시 대부분 영국에서 나왔지만 미국을 거치면서 세계인의 대중음악으로 자리 잡았다. 영화와 팝송은 지난 100년 동안 미국적 가치관을 전 세계에 심었다. 팝아트 역시 미국적 가치관을 예술화하고 있다. 이를 가장 잘 소화해낸 이가 호크니다. 영국이 고향이지만 미국에서 이 시대 성향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가로 성공을 거두었다. 호크니는 LA를 중심으로 작품 활동을 펼쳤다. 미국에서도 가장 미국적인 삶의 가치관이 집약돼 있는 이곳이 호크니의 예술적 입맛에 잘 맞았기 때문이다. 현대인의 일상생활에서 채집한 모티브를 다루고 있지만 서정성을 놓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여운이 길게 남는 그림이다. 호크니가 그리는 주제는 주로 미국 백인 중산층의 정서다. 그들의 여유롭고 한가로운 일상의 긍정적인 쪽에 눈길을 주고 있다. 이 그림에서도 그런 생각을 담았다.

 

호크니가 작가로 확고한 자리를 잡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수영장 시리즈’ 중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다. 1967년에 그렸는데, 현재도 남부 캘리포니아를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쓰이고 있다. 이 그림에서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두 가지 전혀 다른 요소가 부딪혀 빚어내는 묘한 느낌이다. 건물과 풀장에 담긴 물이 그것이다. 인공 구조물인 건물은 움직이지 않고 딱딱한 것이며, 물은 그 자체로는 형태가 없고 움직임이 자유로운 것이다. 이 그림에서는 물조차도 풀장에 가두어 움직임을 정지시켜 놓았다. 건물은 기하학적인 수평 수직 구조를 정확하게 유지하며 견고하게 배치돼 있다. 선의 정확성을 기하기 위해 작가는 마스킹 테이프를 붙여 선을 만들고, 롤러로 칠하는 방법을 썼다. 

그렇게 해서 정적이 감돌 정도로 안전한 중산층 가정 공간 분위기를 훌륭하게 그려냈다. 철저하게 프라이버시가 보장되는 저택 정원의 풀장이다. 미국 백인 중산층의 생활은 이처럼 안전하고 개인의 자유가 보장되는 세계다. 이를 유지하기 위해 그들은 정확한 규칙 안에서 살아간다. 법을 지키고, 세금과 할부금을 정해진 날짜를 어기지 않고 정확하게 납부하며, 직장에서 성실하게 일하고, 가정에 충실하다. 이런 중산층의 정서를 호크니는 맑고 깨끗한 한 낮의 저택 풍경으로 담았다. 미국 중산층이 갖고 있는 풍요로운 서정이다. 가공되고 세련되게 다듬어진 서정성이다. 미래가 보장되는 안전한 삶이지만, 지루함을 느낄 것이다. 사람이니까. 풍요로움 속에서 권태를 견디는 방법은 현재 유지되고 있는 질서의 틀을 깨는 것이다. 

그러나 안정된 삶이 송두리째 무너질 정도로 틀을 깰 배짱이 중산층에게는 없다. 조금만 깨는 것이다. 지루함을 잊을 만큼만. 회귀가 손쉬운 일탈이다. 그런 속셈을 드러낸 것이 풀장에서 일어난 포말이다. 

기하학적 선으로 평면화된 그림 속에서 유일하게 자유로운 붓 터치가 살아나는 부분이다. 이것 때문에 그림에서 공간이 나타나며 소리까지 들린다. ‘첨벙!’ 지루한 일상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욕구는 화면 오른쪽 아랫부분에서 사선으로 솟아오른 다이빙 보드로 표현하고 있다. 욕구의 결과는 첨벙하는 포말 이미지다. 아마도 물속으로 뛰어든 사람은 알몸일 것이다.

 

  전준엽 (화가, 미술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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