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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의 거울_윤두서의 <자화상>전준엽의 미술생각 24

 

윤두서, 자화상, 38.5 x 20.5 cm, 국보 제240호, 해남 연동 윤선도 기념관 소장

예술가에게 작품은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다. 그중에서도 자화상은 작가 자신의 삶을 집약적으로 압축해 보여준다.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이며 자기와 끊임없이 맞서는 인생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화상은 작가의 본질에 다가서는 열쇠 같은 그림이다.

서양미술사에 등장하는 많은 작가들은 자화상을 남겼다. 자신의 모습을 자화상의 포즈로 그린 것이 대부분이지만, 다른 인물에 빗대어 그리기도 했다. 위대한 자화상을 남긴 작가로는 독일 르네상스 미술을 이끈 알브레히트 뒤러를 가장 먼저 꼽는다. 그는 자신을 예수의 모습으로 그린 자화상으로 유명하다. 이탈리아 바로크 미술을 연 천재화가 카라바조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이나 인간으로 변한 자신의 모습을 남겼다. 가장 많은 자화상을 남긴 화가로는 렘브란트가 꼽히며, 후기 인상주의 화가 고흐도 내면의 솟구치는 광기를 자화상으로 담아낸 것으로 유명하다.

서양에서 자화상은 표현의 한 방법으로 발달했지만 우리 미술에서 본격적 의미의 자화상을 찾기란 그리 녹록치 않다. 수에서는 턱없이 부족하지만 질에 있어서만큼은 뒤러나 렘브란트 자화상과 견주어 결코 뒤지지 않는 자화상이 있다. 호랑이 얼굴같이 보이는 이 인물은 3백여 년 전 선비다. 공재 윤두서(1668-1715)의 자화상이다. 우리 미술사 최초 자화상으로 꼽히는 걸작이다.

반듯하고 선이 굵은 얼굴이다. 성격파 배우쯤 해도 괜찮을 용모다. 무얼 보고 있는 것일까.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이겠지. 눈썹 한 올, 수염 한 터럭까지 세밀하게 관찰해 그려낸 것이 놀랍다. 얼굴 피부의 느낌까지 사실적으로 나타냈다. 마치 진짜 얼굴을 마주 대하고 있는 듯한 현실성이 느껴진다. 서양 사실주의 미술보다 1백여 년 앞서 나타난 조선 회화의 사실주의라고 불러도 괜찮을 성 싶다.

이 그림에 사실성만 있을까. 그렇지 않다. 머리에 쓴 탕건은 과감하게도 짙은 먹으로 쓱쓱 칠해 단순하게 처리했다. 추상적인 표현법이다. 눈은 마치 화장이라도 한 듯 강조해 놓았다. 눈동자 또한 도드라지고 있다. 정신을 담기 위한 작가 나름의 방법으로 보인다. 이를 ‘전신사조(傳神寫照 / 인물의 형상 재현뿐만 아니라 정신까지 담아낸다는 의미)’라고 한다.

48세에 삶을 마감한 작가가 죽기 3년 전에 그린 것이라고 한다. 윤두서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겉모습만 보고 있을까. 아니다. 얼굴을 통해 내면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다. 인생 말년 삶에 대한 반성을 통해 내면의 성숙함을 이루려는 의지를 보여주려는 듯하다. 여러분도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을 보며 골똘히 생각에 잠기다 보면 내면을 볼 수 있을 게다. 윤두서가 자화상을 통해 그리려던 세계가 바로 이것이다. 이 그림은 얼굴이 공중에 떠 있다. 몸을 그리지 않았다. 귀도 없다. 이를 두고 미술계에서는 ‘혁신적 현대 감각’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밝혀진 바로는 몸과 귀를 그렸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지워졌을 것이라는 과학적 근거를 내놓았다.

‘어부사시사’로 유명한 윤선도 손자이자 실학의 대가 정약용의 외할아버지였던 윤두서는 조선 후기 대표적 명문가 인물이다. 시, 서, 화에 두루 능했으며 현실적인 포부도 대단했던 인물이었지만 기꺼이 선비의 삶을 택했고, 화가로서 조선 회화사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냈다.

 

전준엽

화가, ‘화가의 숨은 그림 찾기’ ‘미술의 생각, 인문의 마음’ 등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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