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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준엽의 미술생각 22 신윤복 ‘봄나들이’

<연소답청 年少踏靑>(젊은이들의 봄나들이), 신윤복, 지본담채, 35.6 x 28.2 cm, 간송미술관 소장

 

21세기 봄과 18세기의 봄은 어떻게 다를까. 봄의 문턱에 서서 문득 스민 생각이다. 소설가 한수산의 표현대로 봄은 젖어서 오는 것 같다. 250여 년 전에도 그랬겠지. 얼었던 땅이 녹고 강이 풀리면 물기가 오른다. 물기는 대지를 적시고 생명의 움직임을 피워낸다. 노랑에서 초록으로, 다시 여러 가지 색깔의 꽃으로 볼거리를 만들어낸다. 그래서 ‘봄’인가 보다.

18세기 조선시대에도 이맘 때 쯤 이면 사람들은 지금과 똑 같은 봄을 맞았을 것이다. 이런 생각 말미에 꺼내 본 그림이다. 신윤복의 ‘봄나들이’.

이 그림을 보면 예나 지금이나 봄은 역시 젊은이들의 계절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은 당시 유행을 이끌었던 젊은이들이다. 지금으로 치면 청담동 거리를 누비며 첨단 패션 감각을 뽐내는 신세대쯤 되겠지. 기녀와 젊은 한량들이 봄맞이 쌍쌍파티를 하려고 약속 장소로 모이는 장면을 그렸다.

이미 당도한 한 쌍은 장죽에 담배까지 피우는 여유를 즐기고 있다. 그 뒤에 막 도착한 쌍의 표정이 재미있다. 아마도 기녀가 파트너에게 담배 한대 청한 모양이다. 한량은 두 손으로 공손하게 장죽을 바치고 있다. 기녀는 겸연쩍은 듯 머리를 매만지며 어색한 웃음으로 손을 내민다. 필경 한량은 진한 농지거리를 하며 장죽을 건네는 중 이리라.

이런 광경을 못마땅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걸어오는 한량은 짝이 없다. 그러고 보니 다른 한량에 비해 행색이 다소 처진다. 파트너가 있는 한량들은 모두 꽃미남과에 속하는 곱상한 외모와 당시 유행이었을 장신구로 치장하고 있다. 그런데 이 인물은 얼굴이 거무튀튀하고 늙어 보이며, 복장도 다르다. 맨 앞 기녀의 말을 모는 하인이다.

그러니까 요즘으로 치면 자가용 기사인 셈이다. 그 기녀의 파트너가 짓궂은 장난을 한 모양이다. 자신이 기녀의 마부가 되어 말을 몰고 있다. 하인의 초립까지 쓰고서. 뒤쳐져 오는 하인은 양반 갓을 쓰지도 못하고 난처한 표정이다. 화면 아래쪽에 부리나케 달려오는 한 쌍은 봄바람에 옷이 나부껴 역동적이다. 기녀는 쓰개치마에 말몰이 시종까지 부리는 모양새가 예사롭지 않다. 오늘 파트너가 대갓집 외동아들쯤 되는 모양새다.

이 그림을 통해 우리는 18세기 말 젊은 세대의 개방적 유희 풍속을 가늠할 수 있다. 정분나기 좋은 봄날, 젊음의 상춘 쌍쌍 파티는 생각만으로도 핑크 빛이다. 이런 주제가 신윤복의 단골 메뉴다. 그래서 그는 조선시대 회화의 이단아로 통한다. 이 그림에 등장하는 여덟 명은 각기 다른 포즈를 취하고 있다. 빠른 걸음에서 보통 걸음, 느린 걸음 그리고 멈춘 걸음까지 보인다. 바라보는 방향도 제 각각이다.

그런데도 산만하지 않은 것은 빼어난 구성력 덕분이다. 모든 인물은 한 인물로 방향을 잡고 있다. 오른쪽 그림 가장자리에서 안쪽을 바라보고 서있는 인물로. 이 인물을 꼭지 점으로 위의 네 명과 아래 세 명이 V자 구성을 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의 시선을 이 인물 쪽으로 몰아가고 있다. 이 사람이 서있는 곳이 오늘 봄나들이 가기 위해 모이기로 약속한 장소인 모양이다.

 

전준엽 화가, ‘화가의 숨은 그림 읽기’, ‘미술의 생각, 인문의 마음’ 등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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