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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준엽의 미술생각 23여성의 힘,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

 

유디트의 두 팔은 가장 강한 명암으로 처리했는데, 이 그림의 주제를 완성하는 대목이다. 강인한 힘이 느껴지는 유디트의 팔은 홀로 페르네스를 완전히 제압하고 있다.

인간의 정신적 자유를 생명으로 삼는 예술계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여성 차별은 심하다. 여성은 생명을 잉태하고 창조하는 능력 때문에 예술 창조에 있어 남성보다 열등할 수밖에 없다는 그럴듯한 논리를 내세워 여성의 예술 창조 능력을 과소 평가해왔다. 이런 고정 관념은 얼마 전 불거졌던 신윤복 성 정체성 논란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신윤복을 여성이라고 상상'하는 것조차도 '얘기하기가 낯부끄럽다'는 어느 전문가의 강한 비판은 뛰어난 능력을 지닌 화가는 여성일 수 없다는 생각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고정 관념을 비웃는 그림을 보자. 4백여 년 전 여성화가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1593-1652)가 그린 이 작품은 예술의 힘이 얼마나 강렬한지를 잘 보여준다. 카라바조, 루벤스와 더불어 바로크 미술을 이끌었던 젠틸레스키는 서양미술사에 여성 혁명을 일으킨 위대한 인물이다. 그래서 그녀는 서양미술사에 최초로 등재된 여성 화가가 되었다.

화가였던 아버지로부터 그림을 배웠던 그녀는 타고난 천재였다. 18세 때 아버지의 친구이자 스승인 타시에게 강간을 당했고, 오랜 법정 투쟁으로 미흡하나마 보상을 받았지만, 정신적 상처는 치유되지 않았다. 당시 이탈리아는 남성들의 세계였으니까. 아픈 개인사가 결국 이 작품을 낳은 셈이 되었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용감한 여성 유디트 이야기를 그린 것인데, 젠틸레스키는 이 주제로 세 점을 그렸다. 이 작품은 두 번째 그린 것으로 그녀의 대표작이 되었다. 유디트는 고향 베툴리아를 점령한 앗시리아 장군 홀로페르네스를 술에 취해 잠들게 한 다음 목을 베었고, 하녀와 함께 그의 목을 들고 고향으로 돌아온다는 내용이다.

유디트 이야기는 서양 예술의 단골 주제 중에 하나다. 그래서 많은 예술가들이 그림, 음악, 문학, 무용 등을 통해 각기 다른 유디트를 창조해냈다. 미술계에서는 티치아노, 보티첼리, 조르지오네, 크라나흐, 카라바조, 클림트 등의 그림이 유명하다.

이들이 창조한 유디트는 귀족 부인이거나 청순한 소녀 또는 요부의 얼굴을 하고 있다. 이에 비해 젠틸레스키가 창조한 유디트는 강렬한 분노와 결단력을 지닌 강한 여성이다. 특히 그림 속 유디트의 얼굴 인상이 그녀의 자화상과 상당히 닮아 있어, 자전적 경험담이 바탕에 깔려 있음을 짐작케 한다.

이 그림은 어두운 배경 위에 강한 조명을 받은 인물을 역삼각형 구성으로 배치하여 연극적 긴장감을 높이고 있다. 그림의 내용은 보이는 대로 끔찍한 장면이다. 강한 힘을 칼에 실어 목을 베어내는 순간이다. 검붉은 피가 목으로부터 뿜어져 나오는데, 고통과 공포에 놀란 홀로페르네스 표정과는 달리 두 여성의 표정은 냉정하고도 단호하다.

이 그림의 초점은 목을 베는 행위로 모아지고 있다. 유디트의 두 팔과 하녀의 내리누르는 팔, 그리고 저항하는 홀로페르네스의 몸짓이 목을 중심으로 방사선으로 퍼져나간다. 방사선의 효과로 우리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홀로페르네스의 목 부분으로 집중된다. 이를 더욱 부추기는 것은 홀로페르네스가 덮고 있는 붉은 색 이불, 하녀의 오른쪽 소매와 유디트 옷소매의 빨간색이 목을 중심으로 반원을 형성하는 것이다.

특히 유디트의 두 팔은 가장 강한 명암으로 처리했는데, 이 그림의 주제를 완성하는 대목이다. 강인한 힘이 느껴지는 유디트의 팔은 홀로 페르네스를 완전히 제압하고 있다. 머리칼을 움켜쥐고 짓누르는 왼팔과 칼을 쥔 오른손의 사실적 움직임이 압권이다. 죽어가는 인물의 저항은 하녀의 멱살을 잡은 오른손뿐이다. 그나마도 힘을 잃은 듯 유디트의 팔과 비교하면 빈약해 보인다.

이미 끝장난 승부라는 사실을 강조해주는 것으로는 홀로페르네스 머리 맡에서 흘러내린 침대 시트다. 화면 밑으로 빠져나간 침대 시트가 보여주는 수직선은 유디트 왼손의 손목 부분 주름을 거쳐 홀로페르네스의 오른팔을 타고 올라 하녀의 얼굴로 이어진다. 그리고 다시 하녀의 오른팔과 유디트의 칼로 내려오면서 수직선을 반복한다. 두 수직선 사이에 홀로페르네스의 목이 끼어 있다. 수직선을 제압하면서 들어온 유디트 두 팔의 사선은 그래서 더욱 힘이 느껴지는 것이다.

젠틸레스키의 역량은 당시에 이미 인정받아, 여성이 그리기에는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역사화와 종교화까지 그렸으나, 사후에는 역사 속에 묻혀버렸다. 그래서 그녀의 많은 작품들이 아버지 오라조 젠틸레스키의 것으로 잘못 알려져 왔었다. 동시대 선배 화가 카라바조가 개발한 명암법과 극적인 구성, 생동감 넘치는 표현력을 제대로 구현한 천재 화가였다. 그러나 그녀가 위대한 화가로 복위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그만큼 서양에서는 여성의 힘이 제자리를 찾아간다는 것을 반증하는 일이다.

 

전준엽 (화가 ․ ‘화가의 숨은 그림 읽기’, ‘미술의 생각’, ‘인문의 마음’ 등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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