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려 뽑은 요즘 노래② 장서윤의 <육자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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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3.12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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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서윤 _소리꾼

장서윤이 아직 초등학교 5학년일 때 앳된 목소리로 부른 육자배기를 자주 듣는다. 아마도 나는 장서윤이 부른 이 육자배기를 가장 많이들은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국립국악원 연구실에서 <교과서에 실린 우리 민요 서른 아홉곡>(2000) 음반을 기획하던 때, ‘소리를 신통하게도 잘하는 유미리 선생님 제자가 있다’는 말을 들을 때부터였으니 20년이 다 되어 간다. 그 어린이의 육자배기를 아직도 듣고 있다면 좀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사실 장서윤의 육자배기는 지금 들어도 재밌다.

구나헤

연당 밝은 달 아래 채련하는 하는 아이들아

십리장강 배를 띄우고 물결이 곱다고 자랑마라

그 물에 잠든 용이 깨고 나면 풍파일까 염려로다.

높이 질러내고, 꺾어내고, 굴려 맛을 내야 하는 이 노래를 장서윤은 음이 안 올라가면 안 올라가는 대로, 곧이곧대로 또박또박 부른다. 이 노랫말의 뜻이나 알고 불렀을까 싶은 어린 소리꾼의 ‘귀여운 육자배기’다. 소리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들으면 절로 흐뭇한 기분이 든다. 물론 깊고 진하게 익은 명창의 소리에서 시간과 함께 숙성된 곰삭은 맛에 비할 바는 아니겠다. 실제로 장서윤의 육자배기를 자주 듣게 되는 이유는 강의에서 ‘국악감상’을 권할 때 어른 명창의 익은 소리와 비교해보시라는 권유를 할 때다. 어른 명창의 소리로는 50대 초반에 녹음된 김수연 명창의 육자배기인데, 김명창의 그 노래는 어린 장서윤의 쨍쨍하고 높은 목과 대비되는 묵직하고 나지막한 울림으로 가슴 속에 ‘서늘한 그늘’을 드리운다.

남도소리 ‘육자배기’는 초보 국악감상자들을 위한 선곡으로 다소 낮설고 어려울 수 있지만, 그동안 만났던 대부분의 감상자들은 용케도 두 소리꾼이 부른 ‘같은 노래, 다른 느낌’을 잘도 분별했다. ‘잘한다’, ‘못한다’의 비교가 아닌 ‘어린 소리’와 ‘어른 소리’의 다른 맛을 꼽으며 국악에서 높이 치는 맛과 멋이 무엇인지 스스로 터득하는 눈치였다.

여기에 나는 국악 명곡에서 귀 기울여야 할 요소가 무엇인지 몇 마디만 살짝 더했다. 그리고 다시 장서윤의 ‘육자배기’에 주목하자고 권유했다. 잘 숙성되어갈 장서윤의 ‘어린 성음’이 과연 어떻게 익어가는 지를 함께 지켜보자는 말이었다. 그이들이 나의 권유를 기억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자주 그녀의 ‘귀여운 육자배기’를 들으며 음악가로 성장하는 모습을 응원하며 바라보고 있다.

판소리와 가야금병창 음반도 내고, 캐나다에서 중학교를 마친 후 돌아와 국악 전문 교육과정을 거치는 동안 장서윤은 여전히 ‘좋은 재목’으로 인정받으며 활동 영역을 넓히는 중이다. 지금은 국립창극단에서 젊은 주역에게 주어지는 여러 역할들을 소화해내면서, 개인적으로 ‘나’를 표현하는 일에 주력하고 있다.

성장하고 있는 장서윤의 일면은 국악방송에서 제작한 <호락호락> 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만날 수 있다. 2017년에 조지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을 소리로 짜서 부른 무대에서 펼친 장서윤의 생각과 그 음악적 표현들이다. 다양한 매체를 통해 다양한 장르를 경험한 ‘나’와 ‘청중’이 좀 더 새롭게 교감할 수 있는 판소리의 새 길을 가기위해 도전하는 젊은 음악가의 모습이다. 그의 소리 속에는 이런 생각과 경험들이 켜켜이 쌓이며, 그의 소리를 숙성시키는 요소가 될 것이다

장서윤은 그 육자배기를 기억하고 있을까? 혹시 기회가 된다면 그녀에게 초등학교 5학년 때 불렀던 육자배기 가사 그대로 20대, 30대, 40대, 50대의 소리로 녹음하며 소리가 익어가는 과정을 기록해두시라 부탁하고 싶다. ‘될 성 부른 나무의 떡잎’이었던 어린 장서윤의 소리에 바람과 물, 햇볕, 시간이 깃들어 둥치가 커지고, 줄기가 뻗어 꽃이 피고 잎이 무성해지는 노정을 함께 지켜보는 마음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