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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기행_예술이 머무는 그 곳 ⓵ ]_ 헤밍웨이가 사랑한 도시 론다를 가다
Plaza de Maria Auxiliadora 헤밍웨이 공원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For whom the bell tolls)

헤밍웨이가 머문 시간 속으로

 

“누구를 위해 종이 울리나 알아보려고 사람을 보내지 말라. 종은 그대를 위해 울린다.”

- John Donne 의 수필 中

 

헤밍웨이의 소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의 배경으로 헤밍웨이가 말년의 시간을 보내며 소설을 집필한 그 곳, 헤밍웨이가 사랑한 도시 론다(Ronda)는 스페인의 남쪽 북서부 론다 산맥에 위치한 해발 780m 고지대로 절벽과 협곡에 둘러싸인 천혜의 절경을 자랑하는 곳이다. 헤밍웨이는 론다를 일컬어 “사랑하는 사람과 로맨틱한 시간을 보내기 좋은 곳”이라고 평가할만큼 운치있고 고풍스런 자연환경이 낭만적인 곳이다. 스페인을 여행하노라면 피카소의 고향 남부 해안도시 말라가에서 버스를 타고 약 2시간을 달리면 안달루시아 지방의 드넗은 올리브 밭과 험준한 산, 작은 마을들을 지나며 론다에 당도하게 된다. 시내로 걸어 들어오면 입구에서 헤밍웨이 조각상이 있는 Plaza de Maria Auxiliadora 공원을 지나며 ‘헤밍웨이 산책로’를 따라 걸어보자. 눈앞에 펼쳐지는 탁트인 드넓은 대지와 구릉들, 겹겹이 둘러쳐진 산 능선들 너머 멀리 하늘이 전개되고 바람이 불어오면, 햇빛과 구름이 머문다. 헤밍웨이가 걸었던 그 길을 따라 그 시간 속으로 들어가 본다.

 

 

Puente Nuevo 누에보 다리

헤밍웨이는 왜 론다를 사랑했을까?

삶과 죽음의 현장 투우, 절벽 끝에 매달린 누에보 다리

 

 

“삶과 죽음을, 이를테면 격렬한 죽음을 볼 수 있는 유일한 장소는 전쟁이 끝난 오늘에 와서는 투우장뿐이다. 그래서 나는 투우를 연구할 수 있는 스페인에 몹시 가고 싶었다.”

- 헤밍웨이, <오후의 죽음 Death in the Afternoon>

 

 

헤밍웨이(Ernest Hemingway 1899-1961)가 사랑한 도시 론다(Ronda)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투우장이 있는 곳이다. 근대 투우의 발상지이며 많은 유명한 투우사들을 배출한 스페인에서 가장 오래되고 아름다운 투우장 중 하나인 론다 투우장(Plaza de Toros de Ronda)이 있다. 페드로(Pedro Rome)라고 하는 론다 출신의 유명한 투우사가 있어 론다는 더 많이 알려지기도 했는데, 투우 경기를 할 때 투우사가 붉은 천을 활용해 소를 피하는 형식은 이 페드로의 일화에 의해서라고 한다. 한번은 페드로가 경기 중에 말에서 떨어져 위기에 직면했는데, 이때 입고 있던 옷을 활용해 달려드는 소를 피함으로써 그때부터 투우의 형식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이 투우장에서는 지금도 가끔 투우 경기가 열리고 있다. 투우장 앞에는 헤밍웨이의 동상이 세워져 있는데, 헤밍웨이는 투우에 특별한 관심을 갖고 연구하며 객관적 사실 묘사와 에세이를 담아 1932년 <오후의 죽음>을 출간했다.

 

 

 

헤밍웨이는 왜 투우에 관심을 갖게 되었을까? 왜 론다를 사랑하게 되었을까?

헤밍웨이 산책로를 따라 절벽 위를 걸으며 생각해본다. 1899년 미국 시카고 교외 오크파크에서 출생한 헤밍웨이는 고교시절 시와 단편소설을 쓰기 시작하면서 문학에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운전병으로 참전했다. 1918년 이탈리아 전선에 자원 종군해 다리에 중상을 입고 도살장 같은 전쟁터을 경험한다. 살육의 현장인 전쟁터의 경험은 그에게 절망과 회의를 안겨주었고, 1차 세계대전 이전의 가치가 현실에서 얼마나 부질없고 허무한 것인가를 체험을 통해 깨달은 헤밍웨이는 이후 추상적인 사고 대신 몸으로 겪는 감각적인 실제 경험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러한 사고의 변화는 그의 작품 곳곳에 드러나고 있는데, 전쟁의 허무와 사랑을 테마로 한 전쟁문학의 걸작 <무기여 잘있거라>(1932)에서 주인공의 대사를 통해서 또, <오후의 죽음>에서도 나타난다.

 헤밍웨이는 어려서부터 죽음에 대한 남다른 공포를 가지고 있었고(단편 <인디언 부락>), 그런 한편 죽음에 맞서서 대결해보려는 정신을 추구하기도 했다. 휴전이 되면서 1919년 귀국한 헤밍웨이는 이후 전쟁이 끝나고 캐나다 ‘토론토 스타’의 특파원으로도 활동하고 이후 수많은 작품을 발표하며 <오후의 죽음> 출간 후 8년 만인 1940년 스페인 내란을 배경으로 한 그의 최대의 장편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을 발표했다. 헤밍웨이는 론다에서 머물며 이 작품의 배경을 삼고 작품을 썼다. 특히 <오후의 죽음>은 전쟁이 끝나고 그가 죽음의 현장을 실감할 수 있는 장소로 론다를 찾아 투우장에서의 생생한 경험을 바탕으로 삶과 죽음에 대한 고찰을 한 기록물이다. 

<오후의 죽음>은 투우에 관한 전문적이고 탐구적인 관찰이며 동시에 철학적인 에세이다. 죽음을 넘나드는 희비극과 파생되는 에피소드를 그리고 있다. 헤밍웨이에게 있어 죽음에 대한 의식은 임박한 죽음에 직면할 때일수록 강렬하고 진실해서 그 현장의 사람들, 전쟁터의 군인, 투우사, 중환자들을 통해서 극명한 삶의 진상에 다가갈 수 있었던 것 같다. 론다의 헤밍웨이 산책길을 따라 걸으면 아찔한 절벽 아래 낭떠러지의 위협적인 깊이와 끝없이 펼쳐지는 대자연의 광활한 전망이 보여주는 스펙타클한 넓이가 인간 존재의 삶과 죽음에 대한 경계를 넘어 철학적인 사색을 요구한다.

그것은 또한, 유네스코 풍경문화재로 지정된 론다의 자연적 환경에 더해 도시공학적 설계로 건축된 누에보 다리(Puente Nuevo).에서도 상징적으로 암시된다. 론다의 대표적인 랜드마크로 암벽의 깊은 계곡으로 나누어진 구시가와 신시가지를 잇는 이 다리를 사이에 두고 상반되는 이념들이 공존한다. 치열한 격전지이기도 했던 누에보다리 아래 절벽 끝에 매달린 카페에 앉아 커피 한잔 마주하고 있으면 헤밍웨이가 보았을 그 광경들이 선연히 떠오른다. 절벽 위의 하얀 집들, 협곡과 대지의 전망들, 자연이 내포한 낭만과 고통이 교차하는 역사의 시간들....

 

론다의 신시가지 번화가, 명품 매장을 비롯해 다양한 가게들이 골목사이로 즐비하다.

헤밍웨이는 1953년 아프리카 여행 중 두 번의 비행기 사고로 중상을 입고 1961년 엽총 사고로 죽음을 맞는다. 가혹한 현실에 맞선 인간의 비극적인 모습을 간결하고 힘찬 문체로 묘사한 20세기의 거장 작가는 그렇게 드라마틱하고 비장한 죽음을 맞았다. 론다에서 헤밍웨이를 떠올리는 시간은 고독한 성찰의 순간들이다. 광활한 자연 속에 사투를 벌이는 투우의 현장이 공존하는 곳, 구시가지와 신시가지가 오래된 다리로 연결된 곳, 절벽위에 매달린 하얀 집, 옛것과 현대가 한데 어울리는 곳, 론다의 그 곳은 오늘날도 여전히 유효한 인간 삶의 조건인 현실과 그 너머의 영원한 그 곳을 향한 지점이다. 종이 울린다. 누구를 위해 종이 울리는지 묻지 말라. 종은 그대를 위해 울릴지니.

 

임효정 기자 / Ronda, Spain

 

 

헤밍웨이 조각상

 

 

 

임효정 기자  Press@ithemov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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