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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슬픔, 고통을 이해하는 방식_전쟁의 슬픔하나의 원작에 대한 두 편의 다문화적 해석

<전쟁의 슬픔> <슬픔과 씨앗 SORROW AND SEEDS>

 

“과거는 최후가 없고, 우정, 형제애, 동지애, 그리고 불멸의 인간성과 더불어 영원히 정절을 유지한다.”

전쟁의 상흔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살육의 현장에서 직접 체험한 사람과는 크게 다를 것이다. 슬픔은 쉽게 잊혀지지 않고 고통은 잊을 수도 없다. 1955년 발발한 베트남전쟁(Vietnam War 1955-1975)은 20여 년에 걸친 베트남의 남-북 내전의 장기전으로 남베트남을 지원한 미국, 한국 등을 포함해 국제전의 양상을 띠며 이념적인 대립의 문제로 장기화됐고, 결국 미국의 패배로 끝난 전쟁이다. 오랜 전쟁은 수많은 살상과 민간인 대량 학살, 고엽제 등으로 참혹하고 처참한 상처와 후유증을 남겼고, 먼 남의 나라일이 아니라 베트남전에 참전한 우리에게도 큰 영향을 끼치며 사회문제로 대두되기도 했다. 베트남 전쟁을 소재로 한 원작을 바탕으로 한 두 편의 연극이 쇼케이스 공연으로 지난 달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에서 영상으로 소개되어 주목 받았다.

10월 30일~31일, 양일간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은 ‘제2회 아시아문학상’(2019)을 수상한 베트남 출신 작가 바오닌의 대표작 <전쟁의 슬픔>을 새로운 문화 콘텐츠로 제작해 ACC 예술극장 극장1에서 쇼케이스 무대를 열었다. ‘2020 제3회 아시아문학페스티벌’의 연계 공연으로 한국의 극단민들레와 덴마크 극단 NTL(Nordisk Teaterlaboratorium -Odin Teatret 북유럽연극실험소)의 두 편의 실험극을 공동 창·제작 시범공연으로 실연 무대에 올릴 예정이었으나, 이 날 코로나의 확산으로 두 극단은 화상회의를 통한 소통방식으로 각각 제작된 연극 무대를 유튜브를 통해 이원 중계했다.

줌 방식으로 오후 7시 공개된 무대는 <전쟁의 슬픔>(극단 민들레 런닝 타임 40분) 중계 후 영상을 통해 객석의 관객과의 대화가 이루어졌고, 이어 <슬픔과 씨앗>(NTL-OT)이 중계되고, 끝난 후 화상 채팅으로 덴마크의 NTL-OT 극단의 스탭들과의 대화가 오갔다. 먼 이국땅에 있는 연출자와 한국 객석의 관객들과의 즉문즉답식 공개적인 화상 대화는 현장의 생동감을 살리는 특별한 시간이 됐다.

 

슬픔은 어떻게 극복될까?

미국의 시인이자 사상가 에머슨은 “모든 벽은 하나의 문이다”라고 말했다. 어떤 시대나 위기가 있고 위험한 불길 앞에 직면할 때가 있고,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 또한 견디기 어려운 불길 앞에 마주하고 있기도 하다. 시련을 견디고 살아남기 위해서 우리는 또 어떤 문을 통과해야 할까?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전쟁을 겪고 살아남은 자에게 남겨진 지울 수 없는 고통과 상처는 어떻게 치유될 것인가. 극단민들레의 <전쟁의 슬픔>은 한국의 굿-망자천도굿을 통해 망자들 '고(苦)의 영혼'을 달래주고자 한다. 무대가 열리며 등장하는 가면 쓴 무리들로 망자들의 유혼은 주인공의 주위를 맴돌며 끈질기게 따라 붙어 차마 떨치지 못한다. 망자나 산 자나 치유하고 극복해야 할 벽 앞에 놓여 있다. 베트남전쟁에 참전해 6년 동안 최전선에서 전쟁을 몸소 체험한 작가 바오닌의 원작에 표현된 전쟁터의 생경한 현장감과 처절함은 극단 민들레 무대에서 잘 훈련된 배우들의 표정과 신체 연기에서 생생하게 드러난다. 청춘의 시기에 전쟁에 내몰려 젊음과 사랑을 상실한 주인공의 방황과 고통은 절절하다.

 

그러나, 전쟁 속에서 삶(생명)은 더욱 피어나고 사랑의 욕망은 더욱 강렬하다. 긴 전쟁에 짧은 사랑은 또한 삶의 의미가 되고 희망의 동아줄이 된다. 전쟁을 겪을수록 파멸의 힘보다 더욱 강한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다고 말하듯, 전쟁이 모든 것을 잿더미로 만드는 힘을 가졌다 해도 모든 것을 파멸시킬 수는 없다는 것을 점점 믿게 되었다고 하지 않는가.

파괴되고 상실되는 슬픔과 변화를 겪었을지언정 누구나 여전히 과거 속의 자기 자신이 남아 있고, 그 내면에는 여전히 많은 추억, 자신의 삶을 온전히 지켜왔던 수많은 추억이 남아 있어 삶을 유지하게 하는 힘이 된다. 그 수많은 추억 속에 첫사랑이 부르는 소리, 놓쳐 버리고, 놓아버린 것이었지만 절대로 잃을 수 없고 영원히 간직하고 있으면 과거의 길에서 그를 기다리던 행복한 삶과 밝은 미래를 마음에 다시 그려보게 하는 희망의 끈이 되는 것이 아닌가. 다음 무대에서는 전쟁의 서사 위에 순정하고 아픈 사랑의 서사가 더 낭만적인 순열함으로 더해지기를 기대해본다. 극단민들레의 송인현 예술감독은 "치유 이후에 여전히 남겨진 몫은 우리의 과제 입니다" 라고 말하며, 전쟁의 상흔을 쉽게 풀지 않는다. 천도굿을 통해 풀어가는 망자에 대한 위로, 풀리지 못한 고의 몫은 작가에게 맡김으로서 남겨진 산자의 삶에 대한 희망의 끈을 작가의 해야 할 일로 책임 지우고 있다.

 

원초적 생명(seeds)이 무엇인가

덴마크 극단 NTL(Nordisk Teaterlaboratorium -Odin Teatret 북유럽연극실험소)의 <슬픔과 씨앗SORROW AND SEEDS > 은 전쟁 속에서 피어나는 생명에 대한 메시지를 전한다.

공동연출 카이 브레홀트는 <슬픔과 씨앗>의 제작과정에 대해 말하며, 궁극적으로 생명을 강조했다. "원초적 생명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살펴볼 때, 다시 생명과 일상을 회복하는 것! 이었습니다. 각자의 삶에서 시작해 아시아의 항쟁과 역사를 만나는 것. 지난하고 경이로운 과정이었습니다. 문화상호적 입장에서 융·복합으로 시도해봤습니다."

전쟁과 폭력을 이야기할 때,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 '희망'이라는 단어를 생각했고, 그게 바로 '씨앗' 이었다고 말한다.

오딘 극단은 특유의 메소드 연기를 펼치며 다양한 안무와 무대 연출로 이색적인 시선을 끌었다. 다국적 단원들로 구성된 단체로서 배우들의 이국적인 모습과 각각의 움직임에 대한 통찰이 묘하게 이끌렸다. 그러나 한국과의 공동제작인 점이 반영되어서인지 작위적일 정도로 지나치게 많은 한국(전통)적 요소들이 군데군데 끼어 있는 점은 오히려 집중을 방해하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한국(전통)적인 요소들이 소재로 활용되어 웃음을 자아냈지만 표피적인 소재를 넘어 오딘이 바라보는 시각에서의 그들의 독자적인 전쟁과 슬픔에 대한 미학적 깊이가 더욱 승화되어 표현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공동 연출을 맡은 이동일 연출은 소리(음악뿐 아니라 템포, 음량, 호흡 등)에 주력했고, 오딘 극단의 시크릿 룸 기법을 이용해 배우의 영감과 시적인 텍스트를 끌어냈다고 말했다.

전쟁에 관한 두 편의 연극을 접하며 쇼케이스 공연이 펼쳐진 장소가 ‘광주 ACC’ 인 점을 감안할 때, 올해가 특히 5.18 민주화운동 40주년이 되는 해여서 광주에서 일어났던 역사적 그 날의 상처와 고통이 상기되었다. 금남로에서의 시민들의 항쟁, ‘오늘, 우리는 패배할 것이다. 그러나 내일의 역사는 우리를 승자로 만들 것이다’ 라는 자유와 투쟁의 ‘님을 위한 행진곡’ 노랫소리가 <슬픔의 씨앗>에 이어 다시 들려오는 듯했다.

역사의 상흔 앞에 마주할 때, 알베르 까뮈가 작가의 시대적 사명에 대해 말하듯, “세상의 저쪽 끝에서 온갖 수모를 겪고 있는 이름 모를 한 수인의 침묵은 넉넉히 작가를 유적에서 벗어나게 해줍니다. 자유의 혜택 속에서 이 침묵을 망각하지 않음으로써 예술의 여러 가지 수단을 통해서 그 침묵을 메아리치게 할 수 있게 되는 때에 그러할 것입니다.”라고 설파했듯이, 작가에게 남겨진 그 몫이 지금도 우리에게 다시금 상기되어 온다.

고통과 아름다움 사이에서 역사의 파괴적인 움직임 속에서 두 극단들이 또 다시 새로운, 실험적인 예술무대를 통해 그 진실에 다가가는 노력을 하고 있음을 본다.

 

임효정 기자  사진제공 극단민들레 / 광주 ACC

 

 

임효정 기자  Press@ithemov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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