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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어디로부터 오나?_안나 카레니나_국립발레단 발레 <안나 카레니나>, 그리고 원작, 영화 속에 나타난 이데아
ⓒ국립발레단_안나_카레니나_(photo_by_BAKi)

“....나에게 일어날 수 있는 그 모든 일에 상관없이. 이제 나의 삶은, 나의 모든 삶은, 삶의 매 순간은 이전처럼 무의미하지 않을 뿐 아니라 선의 명백한 의미를 지니고 있어. 나에게는 그것을 삶의 매 순간 속에 불어넣을 힘이 있어!”

 

톨스토이가 남긴 위대한 명작, 19세기 최고의 사회주의 리얼리즘 소설로 꼽히는 <안나 카레니나>는 흔히 연상되는 사랑에 관한, 불륜의 러브스토리가 아니다. 19C 말 변혁기의 러시아 사회를 관통하는 사회사적 장대한 스토리를 8부로 구성, 1,6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의 장편서사로 담아냈다. 특히, 평생을 구도자적 생으로 삶과 문학을 일치하고자 했던 톨스토이가 중요하게 생각한 인간의 행복과 평화, 삶의 의미에 대한 문제를 이 작품의 등장인물 레빈을 통해 반영하고 있다.

 

국립발레단은 당초 4월 정기공연으로 예정되어 있던 2020시즌 레퍼토리 발레 <안나 카레니나>(크리스티안 슈푹 안무, 2017 초연)를 코로나 19 사태로 취소했다. (온라인 중계로 진행)

 

2017년 초연 당시 이 작품은 문학 작품을 발레화 하는 것에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는 취리히발레단 예술감독 크리스티안 슈푹의 미니멀한 안무로 여주인공 안나의 스스로 선택한 운명적 삶에 대한 해석을 그렸다. 슈푹 감독은  안나가 선택한 사랑의 결과에 행복과 불행의 잣대가 아닌, 그녀의 선택적 삶에 대한 반문을 던지고 있다.

안나는 행복했을까? 

그녀는 온전히 충만한 사랑의 순간에 몸을 던진다. 다가올 모든 것에 대한 불안과 사회의 불편한 시선, 감당해야 할 불편과 소외, 고독감 등을 알면서도 어쩌지 못하는 고뇌를 안고, 그럼에도 용서받을 수 없을 만큼 행복한 자신을 느낀다. 견딜 수 없는 사랑의 상처는 그녀 스스로 선택한 사랑의 행복에 대한 죄값이기도 하다. 안나가 선택한 사랑은 예정된 불행한 결과를 낳는다.

국립발레단의 <안나 카레니나>는 안나의 사랑에 포커스를 맞춘 각색으로 톨스토이의 장편 서사에 있어 장대한 내용의 면에서는 한계를 갖는다.  안무작이 2차 저작물로 각색이 줄거리의 재현이 아닌, 창작자의 미학적 관점을 강조한다 하더라도 아쉬움을 남긴다. 안나의 사랑과 선택, 그리고  죽음은 원작의 방대하고 심오한 주제에 대한 맥락에서 큰 하나의 축을 형성하는데 비해 부분적, 피상적 접근에 그친 해석이었다.

농부들_국립오페라단

특히, 톨스토이가 그토록 강조한 레빈의 시골에서의 삶,  들판에서 농민들과 풀베기 하는 장면 등은 원작의 본질에 해당하는 내용임에 비추어 발레 안무작은 단순히 스쳐 지나가는 장면 묘사로 전체 각색의 줄기에서 오히려 맥락 없는 부분으로 넣지 않음만 못하는 미흡함을 보인다. 명장면의 덧붙임으로 하기에 레빈의 깨달음에 대한 중요한 메시지를 갖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레빈은 그토록 오랜동안 이성적 성찰로 몰두해 온 삶의 의미에 대해 농부들의 자연적인 인식으로 이해하며 깊은 공감을 표현하는 순간의 묘사이기도 하다.

원작의 서두에 나오는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는 유명한 문장은 발레 <안나 카레니나>에 더 다가가는 상징으로 비쳐진다. 사회의 불안을 내재하고 사회를 구성하는 가정의 불행과 각 개인의 행복과 불행, 사랑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되는 장대한 이야기는 인간 개인의 존재론적 삶의 의미와 행복에 대한 질문과 성찰이다.

이러한 이야기의 축에서 안나의 사랑과 행복, 그녀 자신의 선택과 죽음은 레빈의 삶과 대비되며 삶의 방식과 행복에 대한 가치를 다시 새겨보게 한다. 

 

인간은 왜 사는가? 살아야 하는가?

이 질문은 톨스토이의 문학을 통해 평생에 걸쳐 끊임없이 나타난다.

원작 <안나 카레니나>에는 톨스토이 자신의 신념, 종교와 농민 문제 등에 대한 그의 고민이 잘 드러나 있다. 레빈이 키티에게 청혼을 거절당한 후 낙담해 시골로 내려가 지내면서 농민들의 삶에 나타나는 노동의 가치와 소박한 삶에서 평화를 얻는 과정은 톨스토이의 러시아 농민들에 대한 사랑으로 묘사된다.

일상의 삶에 뿌리박힌 선(善)의 의미를 발견하고 힘을 얻게 되는 장면은 밤하늘 별들의 움직임을 바라보는 순간의 성찰로 묘사된다. 고통을 통해 영혼에 자리 잡은 새로운 감정은 불완전한 일상을 반복하게 될지언정 이전과는 달라진 유의미를 갖게 될 것이라는 예감을 갖는 것이다.

이성적인 성찰로 세상의 움직임과 삶의 의미에 대해 탐구하고자 했던 레빈은 이성과 학문이 아닌, 이성적인 깨달음에 앞서 그냥 알게 된다는 농민의 삶에서 선을 인지하고 그 깨달음은 신의 존재로 나아간다. “너는 다만, 살지어다!”라는 계시는 신에게 향한 믿음이다.

그러나 그 깨달음은 영원한 물음에 대한 해결 답안이 아닌, 지속되어질 삶에 대한 새로운 출발로서 이다. 톨스토이의 원작 속에서 이야기는 안나의 비극적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끔이 아니다.

 

안나의 선택으로부터 비켜나 있었던 불가항력적인 선택, 그녀의 아이를 포함한.. 수많은 등장인물들의 소소한 삶과 남겨진 시간들은 계속 이어지고, 다른 장르인 영화 <안나 카레니나>에서 보여 지는 엔딩은 발레와는 또 다른 해석으로 끝없이 펼쳐지는 러시아 평원. 하얀 들꽃이 너울지는 바람 부는 들판에 남겨진 존재들의 모습이다.

꽃밭 속 천진난만한 아이들과 많은 일을 겪으며 지난 세월에 담담해진 책 읽는 노인의 등 뒤로 광활한 들판 너머 해가진다. 평원에는 그저 시간이 머무르다 스쳐갈 뿐이다.

사랑도 죽음도, 행복조차도....  그럼에도 삶은 지속되고, 여전히 사랑은 남는다.

 

임효정 (발행인. 공연칼럼니스트)

 

 

임효정 기자  Press@ithemov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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