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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안무자 성장을 말하다_선은지의 춤Ⅱ<춤 벗들과 함께하는 선은지의 춤Ⅱ>
선은지의 춤2(01)_ⓒ김두호 Dancers’ Domain

무대조명 켜지면 둥근 원안에 무용수 한 명이 앉은 채 두 팔을 대칭형으로 벌리고 있다. 기원의 숨소리를 들려주는 듯 하다. ‘누군가를 마주하고자 하는 걸까?’, ‘누구를 기다리는 걸까?’ 간절히 생각하고 기다리는 마음을 담은 첫 번째 작품, <터>의 울림은 이렇게 시작된다.

‘처음’은 시작하는 문(門)이자 끝을 향해 걸어가는 구도자 발걸음의 숨소리다. 그 걸음은 설렘, 기대, 기쁨, 때론 낯섬, 두려움 등 다양한 색깔로 자신의 머리와 가슴을 채운다. 선은지 솔로 춤에서 보여준 첫 걸음은 ‘안식(安息)’이었다. 단순한 편함을 넘어선 안식. 젊은 춤꾼이 가지기 쉽지않은 춤력이 첫 장면부터 눈길을 사로잡는다. 전체 무대 중 둥근 원은 그녀의 우주다. 작품 제목처럼 ‘터’가 된다. 독백(獨白)의 춤이 기품있게 이어진다. 독무지만 마음의 터, 삶의 터, 자신의 터를 대화식으로 보여준다. 응시와 성찰의 교감이 밀도를 높인다. 여백이 채워질 때마다 그녀의 터는 살포시 웃음짓는다. 조우(遭遇)다. 기다림을 작별하는 만남이다.

선은지의 춤2(02)_ⓒ김두호 Dancers’ Domain

무대 하수에서 마치 노를 젓듯 세 명의 무용수가 천천히 움직인다. 황서영, 강민지, 성주현은 한몸 되어 출항을 시작한다. 두 번째 작품 <조우>는 온 마음을 다하여 맞이하는 기다린 자의 심정이 몸짓되어 하나의 꽃을 피운다. 비움의 꽃이다. 그 꽃을 향해 날아가는 각자 막대기에 달린 나비 형상 모양이 예사롭지 않다. 인과(因果)를 염두해 둔 듯하다. 인연(因緣)을 위한 장치까지 생각을 치닫게한다. 세 명이 풀어내는 조우의 형상은 터가 주는 담백함을 조금씩 채색해나가고 있었다. 비로소 마주한 순간, 그 순간은 예(禮)의 장으로 바뀐다.

마지막 무대는 이번 작품 하이라이트이자 앞선 두 작품을 엄마 품처럼 감싸안은 <례(禮)>다. 이 작품은 2019년 4월, 제33회 한국무용제전 소극장 부문 우수안무가상 수상작이다. 4월 13일(토)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무대에서다. 이번 무대는 당시 현장에서 본 필자 입장에서 볼 때, 한층 성숙한 움직임과 정제된 안무 포맷을 보여주었다. 신소연, 황서영, 강민지, 성주현, 선은지 등 총 다섯 명의 무용수가 그려낸 <례(禮)>는 터에 집을 짓고, 조우된 인연이 영원한 시간을 함께하고자 하는 언약식 같았다. 그 언약의 반지가 빛난 무대다.

선은지의 춤2(03)_ⓒ김두호 Dancers’ Domain

용인문화재단 전문예술활동지원 선정작인 이번 공연의 안무자 선은지는 최근 활발한 활동으로 주목할 만한 젊은 무용수이자 안무가다. 한국춤 메소드를 기반으로 일상의 경험을 예술이 되는 소재로 다룬다. 공감각적인 무브먼트 파노라마를 구현하는 장기를 가지고 있다.

안무자 선은지

 주요 안무작으로는 2016년 ‘차세대안무가 페스티벌’ <백조인생>, 2017년 ‘신진국악실험무대 청춘대로 덩더쿵!’ <환영의 방>, 2019년 ‘젊은 안무자 창작공연’ <염원>, 2019년 ‘한국무용제전’ 소극장 부문 우수안무가상 수상작 <례(禮)> 등을 들 수 있다. 특히 선은지는 2019년 (재)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문화공간 활용 전통공연사업, ‘The Art Spot Series’ 무용부문 최종 1인으로 선정되었다. 올 11월에 영은미술관에서 ‘빛의 화가’ 방혜자 선생과 함께 무용과 전시의 컬래버레이션 무대를 가질 예정이다.

무용을 포함한 예술 전공자들이 예술 작업을 본격적으로 함에 있어서 정부, 문화재단, 협회, 극장, 기업 등 다양한 기관, 기구에서의 지원을 필요로 한다. 공모 형식이든 초청 또는 기획 형식이든 예술가들이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져야 한다. 무용 작품이 좋은 콘텐츠로 자리 잡기 위해선 다양한 주체들의 역할과 노력들이 요구된다. 지원기관은 기관의 소명을 다하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여러 유형의 주최 기관들은 참여자이자 수요자인 예술가를 고려한 기획이 우선되어야 한다. 예술가 또한 자신의 작품 세계 구축과 발전을 위해 적극적인 움직임과 노력이 수반되어야된다. 말그대로 동반성장이다. 그런 면에서 이번 공연은 여러 프로젝트를 통해 작품 탄생의 빛을 본 후, 재단 지원, 무엇보다 예술가의 작품에 대한 신념과 철학, 의지가 배태한 의미있는 산물이다. 젊은 안무자 선은지의 안무 스타일을 재확인 무대, <춤 벗들과 함께하는 선은지의 춤Ⅱ>. ‘례(禮)’로 귀결된 ‘터’에서의 ‘조우’. 오래 기억될 무대다.

 

 

이주영(공연칼럼니스트)

고려대 문학박사, 시인, 대본작가, 공연칼럼니스트

前) (사)조승미발레단 기획홍보실장, (재)세종문화회관 기획, 국립극장 기획위원, (재)인천문화재단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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