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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ch 평균율과 함께 새해를 구상하다Bach

 

콘체르트하우스 베를린

어김없이 시간은 흘러 또 일 년이 지나 언젠가 오겠지 하던 2018년도 1월이 시작되었다.

독일 오페라극장들은 신년 공연 및 음악회가 지나면 객석이 숭숭 비는 시기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연말연시에 소비를 하고, 그다음 첫해 1월에는 문화생활에 돈을 쓸 여유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뭔가 0점에서부터 다시 시작하는 기분이기도 하다.

 

슈타츠오퍼 베를린

 

12개의 음위에 장단조로 풀어낸 평균율은 변화하는 1년, 12달의 의미와도 연결시켜 음악적인 한해를 머리와 가슴에 구상해보기도 한다.

                                 ”

 

나는 보통 새해 벽두 연습이 적을 때, 바흐의 평균율을 혼자 피아노 앞에서 연주해보거나 집에서 CD를 틀어놓고 지내곤 했다. 한국에 있을 때는 바흐에 큰 흥미를 느끼진 못했다. 주입식 교육의 영향으로 바흐는 이래야한다는 도그마에 얽힌 해석이 부담스러운 선배들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유명한 글렌 굴드의 똑똑 끊어지는 바흐 해석이나 감정을 자제해야하는 엄격하고 신성한 음악이라는 주장은 바흐의 곡들을 더 멀리하게 되었다. 하여튼 바흐는 맘대로 연주해서 안 되는 내게는 답답하기 이를 데 없는 음악이었다.

독일로 온 뒤에 입학시험에 어쩔 수 없이 바흐를 연주해야 하는 경우가 생겨 겨우 외운 평균율 몇 곡을 가지고 담당 교수한테 찾아간 적이 있었다. 한국식 절제미(?)를 담은 나의 평균율 연주를 끈기 있게 들어주던 교수는 바흐의 자필악보 사진을 본적이 있냐고 내게 물어봤다. 그렇다고 하니까 그의 필체에서 무엇을 느낄 수가 있냐고 물어보았다. 글쎄 필적까지 생각해 본적이 없어서 아무 대답도 못했다. 교수는 바흐가 아주 유연하고 멋있는 필체를 가졌고, 그는 건반악기를 아주 잘 다뤘다고 하며 그가 당신처럼 경직되게 연주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물론 경직된 연주라는 말을 그때는 못 알아들었지만 말투에서 왠지 자존심이 상했다. 나는 글렌 굴드의 연주를 많이 들었다고 말끝을 흐리며 나름 내해석의 바탕을 얘기하려했으나 교수는 굴드가 그렇게 연주하는 것과 당신과 무슨 상관이냐고 파란눈으로 나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글렌 굴드는 본인이 원하는대로 바흐 연주를 했을 뿐이지, 당신이 쉬프의 음반이든 리히터의 연주를 들었든, 지금 자기 앞에서 연주되는 바흐는 나로부터 나오는 것 아니냐고 똑부러지게 상황정리를 해버렸다. 할 말이 없었다. 물론 독일말도 못했지만... 그러면서 교수는 상대방과 대화를 할 때, 정확한 발음과 억양을 가지고 소통하듯이 바흐연주는 아티큘레이션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내가 느끼고 생각하는 대로 먼저 연주해 보라고 했다. 할 수가 없었다.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생각해본 적이 없고, 이렇게 저렇게 연주해야한다는 정보만 알고 있었을 뿐 나 자신의 해석은 없었기 때문이다.

사무일 파인베르그

그 후로부터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독일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나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어야 독일인들을 상대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대충이라는 개념이 통하지 않는 사회이기에 음악도 마찬가지였다. 바흐의 꽉 짜여진 음악이나 베토벤의 의지로 가득 찬 구조적인 음악, 그리고 바그너의 거대한 예술정신이 표현되는 문화에서는 우연이 아닌 철저하게 인식된 결과물만으로 소통이 가능하다는 것을 체험하게 되었다.

새해에 바흐를 연주하는 것은 나에게 자신을 돌아보는 성찰의 의식과도 같다, 그리고 12개의 음위에 장단조로 풀어낸 평균율은 변화하는 1년, 12달의 의미와도 연결시켜 음악적인 한해를 머리와 가슴에 구상해보기도 한다.

 

윤호근 conductor

윤호근 지휘자

 

베를린 브레히트 하우스

 

 

음원 추천:

 

1.오래된 녹음이지만 가장 아름답게 연주된 평균율이다.

Samuil Feinberg plays Bach Well-Tempered Clavier, Book 1 - LP transfer

https://www.youtube.com/watch?v=94XFV8X77U0&feature=youtu.be

 

2. Proms 2017 - Bach: The Well-Tempered Clavier, Book 1 [András Schiff]

https://www.youtube.com/watch?v=RNCuPAgG9eo

 

3. J.S.Bach - The Well Tempered Clavier: Book I: Prelude and Fugue No.1 in C Major - Sviatoslav Richter

 

https://www.youtube.com/watch?v=ezZdbzreNcs&list=PL4C117DC26E390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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