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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날아온 음악편지③ 가을의 정원에서R. Strauss, Vier Letze Lieder
Am kleinen Wannsee, Berlin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4개의 마지막 노래>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이라는 시절에 유학 첫 학기를 시작했다. 따가운 햇살이 사라진 유럽의 늦여름과 가을 사이는 내게도 가장 풍부하게 느껴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러다가 몇 년 뒤에 IMF가 터져 많은 상황이 변했고 여름방학이 끝날 무렵 스트레스와 무리한 이삿짐 나르기로 맹장염에 걸린 적이 있다. 배가 하도 아파 바로 대학병원 응급실을 찾아갔더니 의사가 동네 주치의 진단서를 받아왔냐고 독일식으로 절차를 따져댔다. 나는 한국 유학생이고 주치의가 뭔지도 모를뿐더러 다만 견딜 수 없이 배가 아파서 병원에 왔을 뿐이라고 끙끙 앓아댔다. 결국은 맹장염이라는 진단이 나왔고 바로 수술을 해야 된다는 것이었다. 홀홀 단신인데 수술을 받아야 된다니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지금처럼 핸디가 있던 시절도 아니어서 누구한테 제대로 알리지도 못하고 혼자서 수술 받고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Max Lieberman Villa, Berlin Wannsee

병상에 누워 일주일에 한번씩 정해진 시간의 한국가족과의 전화통화에서도 아무일도 없는 듯이 오히려 목소리 톤을 밝게 하고 가족의 안부를 물었다. 수술의 경과도 좋지 않아 재수술을 받는 등 2주나 입원해 있었다. 다행히도 그 당시 나보다 10살 어린 바이얼린을 전공하는 아들을 둔 한국인 간호사분 가족과 잘 알고 지냈다. 그 간호사분은 입원해 있는 나를 극진히 보살펴 주셨고, 아들 데이빗은 나를 독일식 발음으로 '히영~(형)'이라고 부르며 서로 친해졌다. 데이빗은 나에게 독일식 표현과 발음을 많이 가르쳐줬고 나와 한국말로 대화할 수 있는 것을 자랑스럽고 뿌듯해했다. 또한 어머니의 화난 모습을 한국말로 흉내내며 '정신차려!', '공부해!', '커서 뭐가 될래?' 등을 반복하며 장난을 치기도 했다. 그 동안 나이를 많이 따지는 한국유학생 사회가 불편했는지 어머니 외에는 거의 한국말을 할 상대가 없어서 답답하고 아쉬웠던 것 같았다.

 

Villa Campanulla, Berlin
Max Liebermann Villa, Am Grossen Wannsee, Berlin

 

음악으로 삶이 표현되어질 수 있다는 것과 삶 속에 음악의 존재를 강하게 인식할수록 우리는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내면의 힘을 키울 수 있게 된다.

                        ”

 

 

 

데이빗은 방과 후에 매일같이 어머니와 함께 병문안을 왔고 심심하지 말라고 나에게 CD몇 장을 챙겨다 주웠다. 그 중에는 내가 헤르만 헷세의 소설을 좋아하는 것을 알고 헷세의 시에 리햐르트 슈트라우스가 작곡한 '네 개의 마지막 노래'도 포함되어 있었다. 아파서 입원해 있는데 이런 음악을 들으면 더 우울해 질 것 같은데도 오히려 마음을 내려놓고 명상을 하는 듯 반복해서 듣게 됐다. 

 

가을에만 있는 꾀꼬리 버섯과 체코식 찐빵

데이빗은 곧 청소년 오케스트라에서 악장으로 이 곡을 연주할 예정이었는데, 세 번째 곡인 'Beim Schlafen gehen 잠자러 갈 때'의 바이올린 솔로 부분을 나한테 들려주고 싶어 했다. 또 두 번째 곡인 'September 9월'은 실제로 리햐르트 슈트라우스가 1948년 9월에 작곡한 마지막 곡이며 후주의 유명한 호른솔로는 호른 연주자였던 아버지 프란츠 슈트라우스를 그리는 부분이라고 설명도 덧붙였다. 비록 병실이긴 했지만 태어나서 처음으로 입원해서 남으로부터 챙김을 받는 2주 동안이 호텔휴가와도 같았다. 퇴원 후에도 우리는 함께 조깅, 수영도 다니면서 서로 체력관리도 해줬다. 또 듀오로 브람스 소나타 등을 짬짬이 맞춰 작은 행사에 나가서 용돈도 벌기도 했다. 데이빗은 화려한 솔로보다는 그의 성격대로 책임감이 있는 악장으로 캐리어를 쌓았다. 현재 그는 바이에른 뮌헨 슈타츠 오퍼 오케스트라의 최연소 악장이 되었다. 그 이후부터 여름이 끝나가는 시기에는 종종 입원해 있던 기억과 리햐르트 슈트라우스의 '네 개의 마지막 노래' 가 생각난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네 개의 마지막 노래'는 독일어권 소프라노들은 누구나 한번쯤 오케스트라와 불러보고 싶어 하고, 지휘자들이 아끼는 명곡이다. 그러나 음역이 너무나 방대하고 3관 편성의 꽉 찬 오케스트라를 뚫고 나올 수 있는 성량을 가진 대형 소프라노만이 이 곡을 소화해 낼 수 있어 선뜻 연주회 프로그램으로 올리지는 못한다. 제목처럼 ‘네 개의 마지막 노래’는 드라마틱하기 보다는 명상적이며 관조적이다.

연주회에서 두 번째로 불리는 곡인 ‘September 9월’은 특히 늦여름의 풍경을 피곤하게 떠나는 인생에 비쳐 표현했다. 자연의 현상을 객관적으로 표현한 ‘알프스 교향곡’과는 달리 비 오는 가을의 정원에서 쓸쓸히 미소 짓는 작곡가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September 9월’은 네 개의 마지막 노래 중에서 가장 투명한 관현악법을 사용해 듣는 사람에게 떨어지는 아카시아 잎들, 시들어가는 장미와 같은 섬세한 표현이 전달되어 진다. 음악으로 삶이 표현되어질 수 있다는 것과 삶 속에 음악의 존재를 강하게 인식할수록 우리는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내면의 힘을 키울 수 있게 된다.

글 윤호근 (conductor)

 

 

 

 

September

 

Der Garten trauert,

kühl sinkt in die Blumen der Regen.

Der Sommer schauert

still seinem Ende entgegen.

Golden tropft Blatt um Blatt

nieder vom hohen Akazienbaum.

Sommer lächelt erstaunt und matt

in den sterbenden Gartentraum.

Lange noch bei den Rosen

bleibt er stehen, sehnt sich nach Ruh.

Langsam tut er die großen

müdgewordnen Augen zu.

 

- Herman Hesse

 

9월

 

정원이 슬퍼하며

차가운 비가 꽃 속으로 파고든다.

끝자락에 다가선 여름이

조용히 몸을 떤다.

금빛 잎사귀가 하나씩

높게 자란 아카시아 나무에서 떨어진다.

여름은 사라져가는 정원의 꿈속에서

놀라며 엷은 미소를 짓는다.

 

아직도 오랫동안 장미 곁에

그 여름은 멈춰서서 안식을 그리워한다.

여름은 조용히

그의 피곤한 눈을 감는다.

 

- 헤르만 헷세

 

Am Kleinen Wannsee, Berlin

 

 

1. 초연 실황

키르스텐 플라그슈타트 & 푸르트벵글러의 1950년 실황녹음(Testament)

작곡가의 죽음을 향한 아름다운 표현과 독일 낭만주의의 아련한 분위기에 대한 이해로 음질의 열악함에도 불구하고, 다른 여타 연주에서는 결코 경험할 수없는 감동을 준다.

https://www.youtube.com/watch?v=5uqYW1JH7Qk

 

2. 엘리자베스 슈바르츠코프와 조지 셸의 연주(EMI)

정확한 딕션과 정교한 표현력으로 헤세와 아이헨도르프의 시어가 생생하고 선명하다

 

 

3. 리자 델라 카제 & 칼 뵘 연주(DECCA)

두 슈트라우스 전문가의 만남이 아름답고 영롱한 시적 황홀경을 선사하는 명반

 

4. 군들라 야노비트 &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연주(DG)

탐미적인 음향과 고조된 고양감이 색다른 빛을 발하는 명반

5. Renee Fleming - Strauss' 4 Last Songs - September

Renee Fleming sings the 2nd of Strauss' vier letzte lieder. Proms, 2001.

youtube.com

https://www.youtube.com/watch?v=LIlPm-myghQ&feature=share

 

2 September Anja Harteros - YouTube

Richard Strauss 4 letzte Lieder Anja Harteros, Sopran 2 - September Sinfonieorchester des Bayerischen Rundfunks Mariss Jansons Aus der Philharmonie im Gastei...

https://www.youtube.com/watch?v=cFzclMsNK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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