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칼럼 윤호근의 독일에서 온 음악편지
[독일에서 날아온 음악편지 ④] 가을밤, 침묵 속에 깊어지는 내면R. Wagner Act.2 "사랑의 이중창"
베를린 그로쎄 반 제의 저녁 풍경

 

바그너, <트리스탄과 이졸데> 2막, ‘사랑의 이중창’

 

독일의 가을밤도 깊어가고 있다. 위도가 한국보다 높아서 가을의 햇살은 나날이 극적으로 짧아지고 저녁 어두움의 농도도 훨씬 짙어진다. 독일 낭만주의에서 밤은 큰 의미를 차지한다. 고단한 낮의 현실을 잊게 해주고 희미해지는 빛과 함께 인간의 마음속 한구석에 환상과 바램이 살아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또한 밤은 모든 고통을 덮어주고 내면의 숨겨진 상처를 감싸주며 꿈으로 이끌어 주기에 니체는 “한밤중에 인간의 욕망은 마음의 고통보다 더 깊어진다.” 라고 했다.

나는 한국에서 사춘기 시절에 우연히 바그너의 악극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접하게 되어 다른 사내아이들과는 조금 다르게 힘든 시기를 보냈다. 그 어느 누구와도 트리스탄에 관해 대화를 할 수 없었다. 혼자 책방에 가서 쇼펜하우어, 니체를 뒤지고는 했다. 물론 한구절도 이해하지 못했지만 귀에서 떠나지 않는 트리스탄 화성 때문에 무언가 홀린 듯이 입 밖에도 내지 못하는 ‘사랑’이라는 주제를 찾아 헤매곤 했다. 그러다가 D.H 로렌스의 유명한 소설도 발견해 한구석에서 읽은 적도 있다. 끝내는 모아둔 용돈으로 그 당시로는 거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총보를 구입하여 음반을 틀어놓고 열심히 함께 읽었다. 너무나 복잡한 스코어여서 놓치기 일쑤였으나, 인간의 머리에서 이러한 거대한 음악이 나올 수 있다는 것에 매료되어 언젠가는 독일에 가서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꼭 공부하리라고 마음먹었다.

 

이태리 코모 호수의 벨라지오섬, 프란츠 리스트와 코지마 바그너가 밀회 장소로 만났던 곳

그 후, 프랑크푸르트 극장에 취직이 되어 '트리스탄과 이졸데' 새 프로덕션에 배정되었다. 4시간이 넘는 음악이지만 이미 어린 시절부터 알고 있던 작품이어서 당시 지휘를 맡았던 이태리 음악감독이 모든 음악적 수정사항을 나에게 맡긴 적이 있다. 공연 중에는 까다로운 2막의 무대 뒤 사냥꾼들의 호른합주 그리고 3막의 목동 잉글리쉬 호른 등의 솔로 등을 지휘해야했다. 지금도 생각나는 것은 3막의 무대 뒤 잉글리쉬 호른주자다. 이미 머리가 희끗희끗하고 정년이 얼마 남지 않은 베테랑 연주자였다. 우연히 집 방향도 같아서 공연 뒤에 자주 함께 같은 전철을 타게 되었다. 그는 게오르그 숄티가 음악감독인 시절부터 프랑크푸르트 오페라극장에서 연주를 시작했으며 숄티 지휘의 트리스탄에서도 잉글리쉬 호른을 불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 이후의 크리스토프 폰 도흐냐니, 미하엘 길렌등의 전설적인 음악감독들의 많은 일화도 내게 이야기해줬다. 그저 신기할 뿐이었다.

또한 트리스탄 잉글리쉬 호른 솔로는 모든 오보이스트들에게 신성한 부분이라고 설명해줬다. '탄호이저' 1막에 참회의 목가를 부는 어린 목동이 나이가 들어 트리스탄 3막에서 죽음의 목가를 연주하는 것이라고 자기는 해석한다고 했다. 순간 소름이 돋아 올랐다. 그리고 '탄호이저' 1막의 잉글리쉬 호른은 ‘욕망의 밤’과 ‘아침’ 사이에서 '트리스탄과 이졸데' 3막은 욕망의 밤과 죽음의 경계에서 울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잉글리쉬 호른은 항상 슬프게 들리는 것이라고....

그 후에 동료로부터 그의 부인이 항암치료를 받다가 포기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결국 마지막 공연 때는 다른 동료가 3막 솔로를 연주한 적이 있었던 일이 생각난다. 젊은 게오르그 숄티가 전쟁 후 뮌헨 국립극장 음악감독이 되어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젊은 혈기에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외워서 지휘할 수 있다고 자랑하자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특유의 무표정으로 3막 마지막 마디에 무슨 악기가 빠져있냐고 숄티에게 물었다. 숄티는 대답을 하지 못했고,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잉글리쉬 호른! 독이 드디어 빠진 걸세!'. 사랑의 마약으로 둔갑한 잉글리쉬 호른의 독약 같은 음색을 말하는 것이었다.

가을밤에 침묵 속에 깊어지는 내면으로 침잠하면 그 안에 음악이 숨 쉬고 있고 생명이 느껴진다. 그리고 꿈이라는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무한한 잠재의 세계 속에 우리는 육체를 벗어난 또 하나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지 않을까?

인간은 또한 낭만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글 윤호근 (conductor)

 

서베를린의 밤거리
포츠담 상수시 궁전의 정원에서
깊어가는 저녁 시간에

 

오, 끝없는 밤

달콤한 밤이여!

영광스럽고 고귀한 사랑의 밤이여!

그대가 포옹하고 미소를 보낸 이들이 그대의 품에서 깨어나야 한다면 

얼마나 실망할 것인가

이제 두려움을 없애라, 

달콤한 죽음이여,

사랑 속에서 죽을 것을 간절히 바라노라!

그대의 품에 그대에게 바칠테니

우리를 감싸 깨어나는 일이 없도록 해다오

 

트리스탄과 이졸데 2막 사랑의 듀엣

https://www.youtube.com/watch?v=OaV1f4lYlJM&feature=share

 

 

트리스탄과 이졸데 2막 사랑의 이중창

https://www.youtube.com/watch?v=7D-MFt7CxE8&feature=share

 

트리스탄과 이졸데 2막 사랑의 듀엣

https://www.youtube.com/watch?v=OaV1f4lYlJM&feature=share

 

트리스탄과 이졸데 2막 사랑의 이중창

https://www.youtube.com/watch?v=7D-MFt7CxE8&feature=share

 

 

THE MOVE  Press@ithemove.com

<저작권자 © 월간 더무브 THE MOVE,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THE MOVE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