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침바다 갈매기는>

영화 <아침바다 갈매기는>

한 감독의 진심, 두 배우의 열연, 모든 캐릭터의 사실성

2024년 도착한 사회파 감독의 슬프고 아름다운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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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주상과 양희경

영국이 윤주상배우가 아니었다면? 판례가 양희경배우가 아니었다면? <아침바다 갈매기는>는 두 배우의 케미가 확실하다. “갔냐?” “갔지 그럼!” “됐네 그럼!” 마지막의 명대사가 생생하게 살아난 건 두 배우의 딕션의 힘이다.

한국고전영화 <마부>(1961년)에서 김승호 배우의 마부 역이 한국영화사에서 높이 평가되듯, <아침바다 갈매기는> (이하 ‘아침바다’)에선 선장 역의 윤주상이 훗날에 그럴 것 같다. 영화 <미나리>에서 윤여정 배우를 대체할 수 없듯이, <아침바다>에선 양희경을 대체할 배우가 떠오르지 않는다.

이유와 사정, 그 간극

난, 말하는 직업이다. 이를 최대한 정확히 하려 힘쓴다. <아침바다>를 보면서 반성하게 된다.과연 말을 정확하게 한다는 게 늘 정답이 될 수 있을까? '정확하다'는 건 매몰차다는 것이고, '선(善)'과는 점점 더 멀어지게 된다. 공공기관의 직원이 하는 '말'은 자신의 업무상 방어 기재란 걸 확실히 확인하게 된다.

해양경찰의 형사(여성)도, 출입국관리소 직원도, 주민센터 직원이 다 그렇다. 영화에서 내가 가장 지나치게 되지 않는 대사가 있다. 아들을 잃고 실의에 빠진 판례(양희경)가 자신을 ‘임순경’이라고 불렀을 때, 자신은 임경장(나종민)이고 ‘경장 단 게 언제인데’ 라고 받는 대사다.

영화 속의 많은 말(대사)은 상처가 된다. ‘이유’와 ‘사정’을 이렇게 구별하게 만든 영화가 있을까. 영국(윤주상)이 분명하게 짚어준다. 증거와 근거가 있어야만 이유(理由)가 된다. 저마다의 사정(事情)엔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다. 출입국 관리소가 보는 영란(카작)은 얼마 전 아이를 유산한 이주여성이 아니라, 지금 아이가 없는 이주여성일뿐이다. 이유(理由)가 ‘다스릴 理’이고, 사정(事情)이 ‘뜻 정(情)’이란 걸 이토록 차갑게 분리해서 생각한 적은 없었다. <아침바다>에서 말이란 게 ‘저마다의 뜻을 표하는 수단’이 아니라, ‘상대의 얘기를 통제하는 수단’이라고 한다면 내가 너무 과민반응을 한 것일까. 법률적 절차로서 인정(認定)하는 과정에서, 사정(事情)을 들으려는 인정(人情)은 눈곱만치도 없다.

박이웅, 사회파감독

21세기 한국영화에서 한 지역에 존재하는 사람을 모두 촘촘히 엮어낸 시나리오가 있었을까. 박이웅은 사회파감독이다. 난, 그를 작가로서 더 인정한다. ‘사회파감독’하면 정지영을 떠올리겠지만, 결이 확실히 다르다. 정지영은 정치적 테두리에서 접근하고, 박이웅은 밖의 시각이 아닌 안의 시각으로 접근한다.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 영화사를 보면 사회파 감독이 있었다. 따져보면 나운규도 그렇다. 1980년대의 이장호의 <어둠의 자식들>, 배창호의 <꼬방동네 사람들>이 그렇다. 꼭 빼놓으면 안 될 감독이 있다. 홍기선 감독의 <가슴에 돋는 칼로 슬픔을 자르고>(1992)는 ‘절망의 바다’가 무대라는 점에서 <아침바다>와 통한다.

어촌사람의 이중성

이미 한국영화에서 선악의 구별이 모호해진지 오래지만, 이 영화는 또 다른 측면으로 어촌사람을 바라보고 있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배역이 묘한 이중성을 지니고 있다. 영국이 그렇고, 판례가 그렇고, 영란 또한 그러하다. 캐릭터에서 나타나는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모두 그렇다. 

그런데, 이렇게 이중적 모습이 드러날 수 밖에 없는 건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의 문제라는 점이다. 영화 속 인물의 이중성은 철저하게 ‘사회적 관계’ 속에서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된다는 것을 이 영화는 너무도 잘 그려내고 있다. 버거운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천성(天性)적 성품이란 건 애당초 버려야 한다는 현실이 너무도 안타깝고 슬프다.

영화음악과 기타

영화음악(연리목)도 좋다. 기타 연주가 영화를 살린다. 잔잔히 다독이기도 하고, 사람의 마음을 툭 건드린다. <브로크백 마운틴(Brokeback Mountain)>(2005)이 스틸 기타로 영화음악을 일관했는데, 그 만치는 아닐지라도 <아침바다>도 꽤 괜찮다. <아침바다>에서 영화음악은 내게 계속 이렇게 말을 걸어왔다. 

“희망이 없다고 해서, 그게 절망은 아니다”

영화의 마지막은 아침에 작은 배를 몰고 바다로 향하는 어부(선장) 영국의 모습이다. 그 바다는 정말 동요처럼 금빛으로 빛난다. 영화 엔딩 크렛딧에서 영화제목이 된 동요(아침바다)를 기대한 사람도 많았던 것 같다. 혹자는 <행복의 나라로>라고 얘기하기도 했었다. 이 둘이 아니어서 다행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리얼리즘 속 판타지’라고 해야 맞을까.

영화의 마지막에는 3박자의 곡조가 흐른다. 동요 ‘바다’도 3박자이긴 하다. 한국인의 심성과 배의 이미지와 연관된 이 삼박자의 곡조는 슬프지도 않고, 기쁘지도 않다. 내 청각엔, ‘희망이 없다고 해서 그게 절망이 아니다’란 영화적 메시지와 딱 부합한다.

많은 미덕을 가지고 있는 이 영화를 어떻게 기억해야 할까? 좋은 장면, 좋은 대사, 행간의 의미가 참 많은 영화지만, 판례(양희경)와 영란(카작)을 중심으로 한 ‘네 컷’으로 마음에 새긴다.

첫째 컷. 판례에게 영란은 질문한다. 용수(박용환)가 죽으면 자신은 여길 떠나야 하는가? 그 말에 판례는 영란의 등짝을 세게 갈기고 이내 며느리의 손을 꼭 잡는다.

둘째 컷, 유산을 한 영란을 위해 전기장판의 온도를 높이고, 누운 며느리의 어깨에 담요를 꾹 눌러서 감싸는 판례의 손길.

셋째 컷. 사망 보험금에 싸인하고 돌아온 며느리 영란을 향해 시어머니 판례가 빰을 아주 세게 갈린다.

넷째 컷. 며느리 앞에 엎드리며 사정한다. 판례는 머리를 바닥에 찧으면서 울부짖는다. 며느리의 발을 붙잡고 사정한다.

이렇게 지금 내게 각인 된 네 컷이다. 영란의 등, 손, 어깨, 얼굴, 발,,, 거기에 판례의 손이 간다. 모두 ‘다른’ 손이나, 모두 ‘같은’ 손이다. 영화를 계속 보려는 사람이 는다고 한다. 내가 이 영화를 다시 본다면 이제 또 다른 어떤 ‘네 컷’을 만나게 될까.

윤중강 (공연) 평론가

참고 자료

https://www.biff.kr/kor/html/program/prog_view.asp?idx=75885&c_idx=402&sp_idx=&QueryStep=2

윤중강 공연 평론가  themove99@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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