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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클래식, 한-독 공연 <120년 만의 만남 – Encounter 120> 성황한국 & 독일인 작곡가 에카르트와 운명적 만남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 공연

 

 

120년 전, 한국 최초의 애국가 ‘대한제국애국가’ 알고 있나요?

<120년 만의 만남 – Encounter 120>

 

F. Eckert ‘대한제국애국가 작곡 120주년 기념’을 위한 한-독 오케스트라 공연 성황

한국 최초의 애국가가 120년 전 공식 반포된 것을 알고 있는가? 그 국가를 프란츠 에케르트라는 한 독일인이 작곡한 것을? 에케르트는 한국에 공식적으로 서양악기를 도입했고 서양악기로 연주하는 관현악단을 창립하고 서양음악 작곡을 가르쳤던 최초의 음악가다.

한국문화원은 한국 최초 애국가를 공식적으로 반포한 120주년 기념으로 베를린 캄머심포니와 한국 음악가들과의 협연으로 지난 7월 1일(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과 7월 2일(할레시 헨델 할레) 양일간 베를린과 할레에서 한-독 오케스트라 공연 <Encounter 120>(120년만의 만남)를 개최해 독일 현지에서 큰 호응을 받았다.

독일인 음악가 프란츠 에케르트(Franz Eckert)가 작곡한 우리나라 최초 애국가인 ‘대한제국애국가 공식 제정 120주년’을 기념하는 음악회로, 120년 전에 시작된 한국과 독일의 오랜 문화교류를 독일에 알리고 그에 대한 우리의 감사한 마음을 기억하기 위해 기획됐다.

 

프란츠 에케르트, 그는 누구인가?

에케르트의 ‘대한제국애국가’ 작곡 _서양음악의 도입

1897년 조선은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바꾸고 고종은 황제로 등극해 나라의 체제를 제국의 위상에 걸맞게 개혁하고, 근대국가의 틀에 맞게 제도를 정비했다. 그 일환으로 ‘양악대’가 창설됐다. 1901년 대한제국 고종 황제는 새로 창설된 양악대를 지도하기 위해 당시 프로이센 왕실악장으로 있던 프란츠 에케르트를 1901년에 초청했다. 그는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군악대인 양악대 대원을 지도하고 고종 황제의 명에 따라 국가 작곡에 착수했다. 후에 그가 애국가 악보에 “한국풍 주제에 의한 대한제국애국가”라고 밝혔듯이 한국적 정서를 표현한 곡을 만들려고 했으며, 그 소재를 한국의 전통음악에서 찾으려고 했다. 음악의 소재적인 측면에서는 서양의 음계와 리듬을 사용했지만 악상의 측면에서는 한국적 정서를 표출하려고 노력한 것이다. 곡은 1902년 7월 1일 완료됐고, 곡이 완성되자 명칭을 <대한제국 애국가>로 하였으며, 1902년 8월 15일 대한제국은 이를 정식 국가로 제정 및 공포했다.

프란츠 에케르트는 우리나라의 서양음악의 도입과 발전에 지대한 역할을 했다. 그는 최초로 한국에 공식적으로 서양악기를 도입했고, 처음으로 한국에 서양식 군악대인 양악대를 조직, 단원들에게 작곡, 편곡 등 서양음악을 교육시켰고 군악대는 에케르트의 열정적인 노력으로 불과 4개월 만에 악기를 능숙하게 다룰 수 있었다.

 

 

프란츠 에케르트 조국 독일과 120년만의 만남

이번 공연은 에케르트가 120년 전에 시작한 한독간 문화교류를 통해 양국의 음악교류가 특별하게 시작하였고, 앞으로도 에케르트 가(家)와 같은 기여와 헌신이 양측 모두로부터 나와 한국과 독일의 문화교류가 다양한 분야로 더욱 발전할 것이라는 바람 아래 독일에서 한국문화를 알리고 또 양국의 문화교류에 다리를 놓고 있는 주독일 한국문화원이 4년 전부터 기획하여 준비한 사업이다.

 

* 에케르트 가(家)의 끝없는 한국 사랑: 에케르트 가문은 3대에 걸쳐 한국을 위해 봉사하였고 3대가 한국에 몸을 묻었다. 1901년 한국에 입국한 에케르트는 1916년 사망할 때까지 한국에 살면서 한국에 서양음악의 기초를 마련하였고 현재 양화진 외국인 묘소에 잠들어 있다. 프란츠 에케르트의 큰 딸 사위로 어학당에서 프랑스어를 가리키던 마르텔은 1949년 한국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에케르트의 손녀는 원산에서 수녀로 봉사하다 6.25전쟁 때 북한에 포로로 잡혀 고생하였고 납북된 어머니와 함께 풀려난 후 유럽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한국 대구의 베네딕트계 수도원에서 1988년 사망할 때까지 봉사하였고 역시 한국에 묻혔다.

 

120년 만의 만남을 위해 문화원은 먼저 베를린에서 활동하는 캄머심포니 베를린 지휘자 및 대표와 이번 공연을 공동으로 개최하기로 뜻을 같이했고, 한독오케스트라 조직을 위하여 독일에서 활동 중인 한국인 연주자들을 섭외하고, 이들은 모두 한마음으로 120년이라는 오랜 한국과 독일의 음악교류를 축하하는데 참여하기로 했다.

 

한예종과 함부르크대학 협약

또한, 한국의 창작음악을 전 세계에 알리고 있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과도 이번 공연의 의미에 맞는 K-클래식(한국 현대음악)을 창작곡으로 만들기로 했다.

또한, 문화원은 우리에게 음악의 어머니 헨델이 출생한 도시로 알려진 음악의 도시 할레시에 이번 공연의 의미 등을 설명하였고, 이에 할레시는 공연을 공동 개최하기로 하였으며, 할레시 시장 및 시 주요 인사들이 할레 공연에 참석했다.

 

이번 공연의 하이라이트 중의 하나인 애국가 제창은 현지 합창단이 한국어로 ‘대한제국 애국가’를 불렀다. 베를린 공연에서는 방한 공연을 가진 바 있는 ‘베를리너 징아카데미’ 합창단 60여 명이 참가했다. 할레 공연에는 할레시 소년 합창단 ‘슈타트 징에코어’가 참여했다. 독일의 대표적인 소년합창단인 ‘슈타트 징에코어’는 1116년에 창단되어 906년의 역사를 자랑하며, 베를린 공연과는 또 다른 감동을 선사했다.

 

 

공연은 대금 협주곡인 한국의 창작음악으로 서막을 열고,

슈만과 베토벤이라는 서양음악의 정수로 연결되고,

그리고 대한제국애국가로 막을 내렸다

 

‘대한제국애국가’가 독일(유럽)에서 처음으로 연주되는 역사적인 이번 공연을 위해 문화원은 작곡가 임준희에게 작품을 위촉했다. 임준희는 작품 속에서 한국과 독일의 분단 이후 공유하는 시련과 고통의 경험을 표현하고자 하였고, 이는 또한 분단의 아픔을 함께 겪은 나라이면서 한국인이 염원하는 평화통일을 이룩한 나라로서 독일과 한국의 관계를 표현하고 있기도 하다. 이번 공연이 120년 전의 한국과 독일인 작곡가 에카르트와의 운명적인 만남을 주제로 하기에 작품 제목을 <혼불 (Spiritual Fire) – 조우(Encounter)> 라고 하였고, 부제를 ‘쪼개진 대나무 (The Split Bamboo)’라고 하여 쪼개진 대나무가 합쳐져야 비로소 온전한 아름다운 악기의 소리가 될 수 있고, 이 소리로 나라가 평안해졌다는 신라 시대 만파식적의 설화 (대금의 기원)처럼 우리의 통일 염원을 작품에 표현했다. 대금 협주곡 ‘Encounter’ 작품의 대금연주는 이아람 서울예술대학교 교수가 연주했다. 그는 여우락페스티발 음악감독, 궁중음악축전 음악감독, 대한민국 무형문화제대전 예술감독 등 여러 중요 문화제의 음악감독을 역임하고 대금 연주자로 가장 활발히 활동하는 한국의 대표적인 젊은 연주자이다.

또한 슈만 첼로 협주곡을 협연할 이상 엔더스는 오르가니스트 독일인 아버지와 작곡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출생한 연주자로 20세 나이에 세계적인 오케스트라인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에서 10년간 공석이었던 첼로 수석이 되어 많은 사람을 놀라게 하였다. 이후 오케스트라 수석자리를 내려놓고 솔로 연주자로 세계 유명 무대에서 활발히 활동 중인 첼리스트 중 하나이다. 그의 이번 연주 출연으로 공연의 품격과 행사의 의미가 더욱 높아졌다.

 

 

 

 

 

에필로그

에케르트와 독일의 만남, 120년의 시간이....

현재 독일에 소재한 많은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에는 한국인 연주자와 성악가들이 활동하고 있으며, 세계적인 음악 콩쿠르에서 거듭되는 한국 음악인 수상과 현재 독일에도 점차 알려지고 있는 K-클래식은 120년전 프란츠 에케르트에 의한 한국과 독일의 음악적 교류를 통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문화원은 이번 공연을 통해 거의 모든 독일인이 모르고 있고, 우리 한국인조차 잊어버리고 대다수가 모르고 있는 중요한 역사적 사실을 통해 양국의 문화 교류관계를 재조명하고, 문화교류의 중요성을 알리고자 했다. 이를 위하여 문화원은 60페이지 분량의 특별히 제작된 프로그램 책자를 제작, 배포했다. 무엇보다도 이번 연주회를 통하여 우리 한국인들이 프란츠 에케르트라는 독일인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을 독일에 알리는 것은 물론 그가 우리에게 선사해준 ‘서양 음악’이라는 선물에 감사를 표했고, 공연 후 현지에서의 반응은 뜨거웠다. 그럼에도 한편으로 아쉬운 마음을 떨칠 수 없는 것은 에케르트와 그의 조국 독일이 만나는 것에 120년이라는 긴 세월이 흘렀다는 것이다.

 

 

최초의 애국가 ‘대한제국애국가’는 125년 전, 대한제국 시절 고종황제 칙령 제59호로 단기 4234년(1901)에 창단된 황실양악대(Korean Imperial Brass Orchestra)가 9월 7일(음력) 경운궁(덕수궁)에서 첫 연주를 열면서 공식 반포됐다. 당시 11개국 수교국 외교관, 선교사, 언론인들의 찬사를 받았다. ‘대한제국애국가’는 서양음악을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도입한 명실상부한 황실양악대의 창설과 더불어 양악 지도자로 초빙된 독일인 프란츠 에케르트(Franz Eckert, 1852-1916) 선생이 작곡했다. 노랫말은 민영환 선생이 지었다. 51인조 2개 군악중대 102인의 규모로 조직된 황실양악대는 오전에 이론, 오후에는 실기를 가르쳤다.

황실양악대는 양악대 연주를 위해 탑골공원 내에 팔모정이 완공되자 매주 정기연주회를 열었고 오늘날 ‘열린음악회’의 시초가 됐다. 이후 일제 강점기인 1929년 4월 25일 공연을 마지막으로 양악대는 해체되고, 소속 단원들은 음악 활동과 후진을 양성하는 데 힘썼다. 해방 후 서울시립교향악단, 서울시립관악단의 모태가 됐다.

 

 

한편, 에케르트의 ‘대한제국애국가’ 국내 연주와 관련해 황실양악대의 의미를 살리는 연주회가 2018년부터 한국의 한 민간오케스트라인 (사)뉴코리아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 의해 진행돼왔다. 뉴코리아필하모닉 오케스트라(단장 송제룡)는 군악대 창설 118년이 지난 2018년, 서울특별시의 후원으로 ‘탑골공원 대음악축제’ 첫회를 성황리에 개최한 후 2019년에도 이어졌다. 2021년 복원된 당시 제복을 착용하고 연주해 대한제국양악대의 위용을 되살렸다. 뉴코리아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대한제국 황실양악대가 매주 연주회를 연 것처럼 ‘탑골공원연주회’를 정기적으로 개최하여 시민들은 물론 서울에 거주하는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웅장하고 아름다운 선율을 선보여 대한민국 음악의 위상을 높일 것이라고 밝혔다.

향후 에케르트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덕수궁 수문장 행렬처럼 ‘황실양악대’의 연주가 지속될 수 있는 행사로 자리매김한다면 의미를 더할 것이다.

 

 

강영우 기자  press@ithemov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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