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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효정의 무대위의인문학] 오리지널리티가 전하는 실존적 질문은 무엇인가?- 신(新)고전 <춘향>은 재해석 되었나?

“사건의 해결은 플롯(plot) 그 자체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 는 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 나오는 말이다. 사건의 해결이 플롯의 결과로 나타나야 한다는 것은 행위의 결과라는 관점에서 인간사에 대한 내재적 관점이기도 하다.

익히 알려진 <춘향전>의 이야기가 갖는 내재적 가치는 무엇일까?

오늘의 ‘춘향’은? 고전은 항상 오리지널리티와 전통의 재해석 사이에서 고민이 많다.

전통의 재해석은 늘 논란거리를 낳는데, 이번 춘향 무대는 논란도 화제도 없었다. 코로나로 닫혔던 극장이 재개되어 반가움이 앞선 탓인지 언론의 호평이 이어졌지만 화제가 되지는 못했다.

리모델링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인 장충동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국립창극단이 지난 달 ‘국립극장 개관 70주년 기념작’으로 ‘신(新)고전’ 이라 이름붙인 신작 창극 <춘향>(유수정 국립창극단 예술감독, 김명곤 연출)을 무대에 올렸다. (5.14-5.24 국립극장 달오름)

무대 위 한 켠에 크게 매달아놓은 그네 타는 봄날의 ‘화사한 춘향’(?)은 연분홍저고리, 빨간 치마를 휘날리며 사랑 놀음에 즐겁다. 마당놀이를 도입한 고전적 무대는 흥겹지만 특별함은 없다. 다만, 마을 아낙네들의 중창이 코러스로 활용된 점은 이전 <트로이의 여인들>에서 차용했음에도 눈길을 끈다.

엔딩의 춘향이 절규하며 노래하는 장면에서는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의 에스메랄다의 엔딩 넘버송 부를 때처럼 높은 단을 만들어 점점 다가오는 효과를 덧붙이는 등 새로운 연출 기법도 보이지 않는다.

소리의 본질을 살리겠다는 기본 컨셉은 서양악기의 선율에 묻혀 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을 때, 전통 판소리의 맛깔 나는 무대라고 보기에도 미흡하다. 잡다한 여러 요소들이 뒤섞여 이도저도 아닌 혼합의 양상이다.

다시 불려온 김명곤 연출은 온전한 전통의 가치를 전하기에 자신이 없었던 것은 아닐까. 결혼서약서 찢는 당돌한 춘향이 현대적인가? 현대 여성의 당당함은 무례함에서 나오는 것인가.

 

동시대적 통찰이 없는 허약한 고전은 ‘신(新)고전’이라 이름 붙인 채 70주년 기념작이라고 하기에는 가볍기 그지없다. 70년사를 회고하는 기념작으로 오리지널리티를 살린다면, 오히려 1902년 고종 즉위 40년을 축하하기 위해 협률사에서 시도한 첫 창극 , 여성국극단의 <춘향가> 의 복원 무대라 오히려 궁금해진다. 

국립창극단은 최근 몇 년 동안, 고전을 재해석한 현대적 연출로 컨템포러리 창극 개발을 통해 관객들의 호응을 이끌어왔는데, 이번 신작 <춘향>을 통해 오히려 과거로 회귀한 듯하다.

개막 전 프레스 리허설 기자간담회를 통해 국립창극단 유수정 예술감독은 “판소리 본래의 소리에 집중한 창극 작품에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고, 실제 이번 개막작에 김명곤(69세) 연출을 불러 전통의 재현에서 한 발 나아가지 못할 뿐 아니라 내면적, 시대적 통찰에 대한 깊은 고민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 피상적 단면의 변형일 뿐이었다.

고전레퍼토리의 현대화와 관련해, 컨템포러리 발레의 대표적 주자인 스웨덴 안무가 마츠 에크( )는 고전을 오늘날의 시각으로 파헤치고, 되살려 그 안에서 현대인이 공감할 수 있는 캐릭터를 창조하는 풍자극의 선구자로 알려져 있는데, 스토리 전달에 중점을 두고 내면세계에 몰두하는 그는 고정관념을 깨고 강한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움직임 하나하나는 그 의미를 구체적으로 보여주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신창극 <춘향>은 움직임, 소리 하나하나가 그 의미를 보여줬는가?

판소리 춘향가의 모태가 되는 <춘향전>은 최고의 로맨스 소설이자 한국 서민문학의 대명사로 불리는 한국 대표 고전이자 현대에까지 다양한 버전으로 성장하는 콘텐츠다.

작자, 연대 미상의 설화를 바탕으로 한 한국 서민문학의 대표작이다. 시대적 배경은 조선 후기, 영·정조 시대로부터 개화기를 거쳐 현재에까지 전승되는 이야기다. 70~120여종에 달하는 이본이 전해지는데, 숙종 말~ 영조 초에 광대의 판소리에서 비롯된 이후 판소리뿐 아니라 소설, 희곡, 오페라, 영화 등 다양한 양식으로 현대적 변모를 거듭하며 지금껏 활용되고 있다.

 

판소리 <춘향가>는 2003년 유네스코에 등재된 ‘판소리’의 다섯 바탕 중 하나로 사설이 높고 아름답기로 정평이 나 다양한 버전으로 불리는 중이다. 판소리 특유의 해학과 익살(유머), 그리고 판소리 장단과 소리꾼의 기량에 따라 다양한 소리를 구성해 고전 가락의 재미를 주기 때문에 판소리꾼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사랑가’ ‘사철가’ 한 대목은 불러 제낄 수도 있다. 가히 국민 콘텐츠라 할 수 있는 데, 소리 본연의 아름다움과 더불어 동시대적 감각과 메시지에 대한 고전의 재해석은 새로운 과제이다.

 

신(新)고전 <춘향>은 재해석 되었나?

지나간 사건을 언어(소리)로 재구성하는 영혼의 현재성! 존재한다는 것은 언제나 현재진행형인 사건이다. 그것이 사랑이든, 전쟁이든, 평화이든 간에.

그런 점에서 지난 랜선 공연으로 잉글리쉬 내셔널 발레단(ENB)의 제1차 세계대전 100주년을 기념해 만든 작품 <Lest We forget(잊지 않기 위해서)> 중 한 부분이었던 <Dust(먼지)> (안무 아크람 칸)를 보면 전쟁의 상흔이 인간에 가져다 준 슬픔 속에서 묵직한 질문들을 던지고 있는데, 이런 실존적인 주제가 입체적이고 구조적인 무대 위에서 전개될 때, 압도하는 경이로움과 신선한 충격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국립극장 70주년을 기념하는 우리 전통예술의 백미로 꼽히는 신작 창극 <춘향>을 보면서 우리 앞에 놓인 과제에 앞서 흩날리는 봄날의 꽃잎처럼 아쉬움이 남는다.

 

임효정 (발행인 문화칼럼니스트)

 

 

* 이번 국립창극단의 <신 춘향>에서 김소희․안숙선․유수정․박애리 등 당대 최고의 여성 소리꾼들이 거쳐 간 ‘춘향’ 역에는 국립창극단 이소연과 객원배우 김우정이 더블 캐스팅됐다. 맑은 성음과 연기력 풍부한 이소연은 창극 ‘춘향 2010’(2010)과 ‘안드레이 서반의 다른 춘향’(2014)에 이어 이번에도 춘향으로 낙점됐다. 더블캐스트인 김우정은 공개 오디션을 통해 발탁되었는데, TV 프로그램 ‘너의 목소리가 보여’ 출연으로 화제를 모은 젊은 소리꾼으로 이번 <춘향>에서 ‘발칙한 춘향’의 요즘 젊은 감성을 맡았다. 극본과 연출은 김명곤이 맡았고, 작창은 유수정 예술감독이 했다. 김명곤 연출은 “근래 창극을 보면 연극인지, 창극인지 구분이 안 되는 경우를 봤다. 판소리에 집중했고, 결혼서약서를 찢는 과감하고 당돌한 춘향의 모습으로 현재 여성의 사랑관을 보여주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사랑’ 이라는 보편적 가치의 소중함을 전하겠다고 말했다.

 

임효정 기자  Press@ithemov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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