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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현대무용, 그래도 움직임이 먼저다네덜란드댄스시어터1 내한공연 & 프랑스 국립 크레테유 카피그 무용단 <픽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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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단우의 댄스플로어6

언제부턴가 신작 무용 공연을 보러 가는 것이 그리 설레지 않는 일이 되었다. 현대무용 공연에서 이렇다 할 춤을 보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데다, 장르협업이니 융복합이니 하는 트렌드 덕분에 영상 등 타 매체가 퍼포먼스와 결합되는 공연이 많아지면서 춤은 더욱 쪼그라들고 있다. 점프를 높이 뛰거나 다리를 높이 드는 식의 움직임은 시대착오적이거나 촌스럽다는 평가를 받기 일쑤이고 영상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작품의 메시지 전달은 아예 영상에 맡겨두고 움직임이 공연의 보조적인 역할에 그치는 작품들도 넘쳐나고 있다. 현대의 많은 무용 창작자들은 ‘모든 움직임은 춤이다’라고 강변하지만 무용 공연을 보고 나서 “오늘 정말 멋진 춤을 봤어”라거나 “저 무용수는 정말 춤을 잘 추는구나” 하는 감탄을 하는 일은 별로 없다. 오히려 “춤을 보고 싶어”라는 아쉬움을 토로하며 공연장을 나서는 날들이 많아지는 요즘이다.

NDT

16년 만의 내한, 명불허전 네덜란드댄스시어터

예술의전당 개관 30주년을 맞이해 네덜란드댄스시어터가 16년 만에 한국 무대를 찾았다. 1959년 창단된 네덜란드댄스시어터는 단체를 소개할 때 따라붙는 ‘현대무용의 최전선’, ‘현대무용의 나침반’ 같은 화려한 수식어로 짐작할 수 있듯이 선구적이고 혁신적인 작품을 쉼 없이 발표하며 반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현대무용계에 뚜렷한 족적을 남겨왔다. 네덜란드댄스시어터가 오늘날과 같은 세계 정상의 현대무용단이라는 명성을 얻게 된 것은 1975년부터 25년 동안 예술감독으로 재직하며 단체의 혁신을 이끌어온 이리 킬리언의 이름을 빼놓고는 말할 수 없다. 이리 킬리언 이후 글렌 테틀리와 한스 반 마넨이 단체의 세계적인 위상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으며, 나초 두아토, 크리스탈 파이트, 알렉산더 에크만, 호페쉬 쉑터, 샤론 에얄과 가이 베하르 등 세계가 주목하는 안무가들이 작업한 다수의 레퍼토리들이 단체에 대한 신뢰를 더욱 견고하게 만들고 있다. 2011년부터 예술감독으로 단체를 이끌고 있는 폴 라이트풋은 2002년 내한 이후 한국 관객들과 16년 만의 만남을 앞두고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전통이나 단체 자체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현재에 집중하며 미래로 나아가는 것을 고민한다”고 말했는데, 이번 내한에서 보여준 세 작품은 네덜란드댄스시어터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한눈에 일별하게 해주는 레퍼토리들이었다.

 

첫 번째로 공연된 <Safe as Houses>는 ‘공포나 위험을 예방한다’는 의미로 영국에서 사용되는 이디엄으로, 중국의 유교 경전 중 하나인 역경(易經; ‘周易’의 다른 명칭)에서 모티브를 얻은 작품이다. 폴 라이트풋과 솔 레옹의 공동 안무로 2001년에 초연된 이 작품은 지금까지도 자주 공연되고 있는 인기 레퍼토리인데, 모든 것은 고정불변이 아니라 늘 달라질 수 있다는 철학에서 영감을 받았다. 레옹은 작품에 대해 미학적인 관점에서 현재의 시각으로 바라본다면 다소 올드해 보일 수 있지만 음과 양이라는 보편적인 주제를 다루었기 때문에 유행에 휩쓸리지 않는 보편성에 보다 신경을 썼다고 설명했다.

음과 양이라는 주제에 맞게 블랙과 화이트의 의상을 입은 무용수들은 무대 한가운데에서 천천히 회전하는 벽을 따라 움직이며 그 벽에 맞서기도 하고 벽을 밀어내기도 한다. 벽은 덧없는 시간과 공간의 변화를 암시하듯 일정한 속도로 계속 회전하지만 결코 무용수들의 움직임을 가리거나 방해하지 않는다. 무용수들 역시 움직이는 벽에 의지하지도, 밀리지도 않으며 정교하면서도 미니멀한 움직임을 이어간다. 무대의 중심에는 매체도 메시지도 아닌 움직임이 있으며 작품의 최종적인 아름다움을 완성하는 것 역시 당연하게도 움직임이다.

무용수들이 크고 시원스러운 움직임을 절도 있게 수행하는 <Safe as Houses>와 달리, 두 번째 작품인 마르코 괴케 안무의 신작 <Walk the Demon>은 인간 내면의 좀 더 깊은 곳을 들여다보며 빠른 스텝과 신체 부위를 제각각 따로 움직이는 동작들을 통해 분절적인 움직임을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반복되는 속삭임과 으르렁거리는 듯한 울부짖음, 욕설처럼 들리는 괴성 등 무용수들의 육성을 사용해 움직임을 더욱 기괴하게 보이게 한다.

세 번째로 공연된 2014년작 <Stop-Motion>은 세 작품 가운데 가장 정서적인 호소력을 갖는 작품이다. 공동 안무자인 폴 라이트풋과 생 레옹의 딸이 영상 속에 등장해 눈빛과 표정 변화, 절제된 움직임으로 감정을 고조시키고 무대 위의 무용수들은 막스 리히터의 감상적인 슬픈 음악에 맞춰 이별과 변화의 순간들을 움직임으로 펼쳐낸다. 무대 위에서 무용수들의 몸과 만나 흩어지는 흰색 가루는 무용수들을 살아 있는 사람이라기보다 기억이 육화된 존재, 혹은 이별의 순간이 지나고 나서도 그 자리를 떠도는 유령처럼 보이게 만들며 움직임은 무용수의 기량을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느리고 섬세한 감정을 담아내는 안무로 짜여 있다. 네덜란드댄스시어터는 단체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아우르는 전혀 다른 색깔의 세 작품을 무대에 올리면서, 아무리 다양한 매체와 결합되고 어떠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해도 무용작품의 핵심이 움직임이라는 단순한 진리를, 선언이 아닌 움직임으로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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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프 화제작, 프랑스 국립 크레테유 카피그 무용단 <픽셀>

2018 서울국제공연예술제 무대에서 해외초청작의 하나로 한국 관객들과 만난 프랑스 국립 크레테유 카피그 무용단의 <픽셀>은 네덜란드댄스시어터와는 다른 방식으로 움직임의 중요성을 보여주었다. 힙합댄스에 서커스, 마샬 아트, 시각예술, 영상, 라이브 음악 등을 접목시키는 작업을 주로 해온 안무가 무라드 메르주키는 1996년 카피그 무용단을 창단하며 거리의 춤이라는 인식이 강했던 힙합을 무대 위의 공연예술로 성공적으로 안착시켰다. 카피그 무용단의 활동은 유럽에 힙합 붐을 일으켰고 메르주키는 2009년 프랑스 국립 크레테유 안무센터의 예술감독으로 임명되어 프랑스의 차세대 안무가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메르주키는 2013년부터 칼립소페스티벌을 개최하며 힙합댄스의 최신 흐름을 파리에 소개하고 있는데, <픽셀>은 2014년 이 페스티벌에서 초연된 작품이다. 메르주키가 안무를 맡고 아드리앙 몽도와 클레어 바르다인이 조명 프로젝션을 디자인해 무용과 미디어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침 없이 조화롭게 결합된 새로운 무대를 보여준다. 메르주키는 언제 어디를 가든 디지털 미디어에 끊임없이 노출된 채 살아가는 현대인의 일상, 이미지의 홍수 속에서 현실과 가상세계의 구분을 잃어가는 모습을 무대 위에 올리고자 했다. 무수한 점과 빗살로 표현된 몽도와 바르다인의 영상은 무용수들의 움직임과 어우러져 무용수들이 움직이는 대로 흩어지거나 이동하며, 또는 영상의 움직임에 따라 무용수들의 움직임 변화를 이끌어낸다. 아르망 아마르의 미니멀한 음악은 영상과 무용의 결합에 긴장감을 불어넣거나 틈새를 메운다.

현대무용 공연에서 영상과 무용의 결합은 특히 선호되는 방식이다. 하지만 영상은 영상대로, 움직임은 움직임대로 병렬적으로 무대 위에 펼쳐지기 일쑤이며, 그렇지 않으면 영상에 메시지를 맡긴 채 움직임이 보조가 되거나 영상에서 구현된 움직임을 무용수들의 몸으로 무대 위에 다시 재현하는 식으로 움직임이 영상의 부속물이 되는 경우가 많다. 카피그 무용단의 <픽셀>은 무용과 영상이 대화를 주고받는 듯이 긴밀하게 커뮤니케이션함으로써 미디어와 인간의 인터랙티브가 어디까지 도달할 수 있는지, 매우 흥미로운 실험을 성공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움직임을 양보하거나 훼손하지 않고도 미디어를 작품 안에 끌어들일 수 있다는 것이 확인된 이상, 장르결합이니 융복합이니 하는 흔해진 실험들 역시 더욱 정교해져야 할 것이다.

 

글 윤단우(무용칼럼니스트) 사진제공 예술의전당,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사무국

THE MOVE  Press@ithemov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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