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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달릴 자동차가 없다면 길이 어떻게 유지될 수 있을까인큐베이팅 시스템의 부재와 축제 하드웨어의 충돌, ‘제8회 대한민국발레축제’
김용걸댄스시어터 , <The type B>, Hanfilm-9255

윤단우의 댄스플로어 ④

대한민국발레축제가 지난 5월 31일, CJ토월극장에서 올려진 두 편의 기획공연을 시작으로 6월 24일 국립발레단의 <안나 카레니나> 공연 종료와 함께 여덟 번째 축제의 막을 내렸다. 발레축제는 2011년 국립발레단과 대한민국발레축제 조직위원회가 공동으로 축제의 첫 삽을 뜬 뒤 2013년 예술의전당으로 이관되어 예술의전당과 대한민국발레축제 조직위원회가 주최가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민간발레단체와 안무가를 지원하기 위한 축제의 취지에 따라 올해도 두 편의 기획공연과 여섯 편의 공모공연, 두 편의 초청공연이 축제 관객들 앞에 선을 보였다.

현재의 ‘대한민국발레축제’는 아직 실제 도로에서 달릴 수 있는 자동차 생산 시스템이 갖춰지지도 않은 채 8차선 고속도로가 만들어진 것이나 다름없다. 지금이 안무가를 어떻게 길러내고 작품을 어떻게 만들어낼지 고민을 시작해야 할 때이며, 이 세계의 구성원 모두의 몫이다.

                                                    ”

 

안무가들의 개성이 경합하는 다채로운 축제의 성찬

1회부터 줄곧 축제와 함께하며 어느덧 축제의 터줏대감이 된 김용걸댄스시어터와 지난해 이 축제를 통해 인상적인 데뷔작을 신고한 김세연서울메이트가 기획공연의 주인공으로 축제 관객들을 만났고, 서울발레시어터와 정형일발레크리에이티브, 김지안발레단, 프로젝트 클라우드나인, 임혜경르발레, 윤전일댄스이모션이 공모공연 출품작으로 각기 다른 무대를 꾸몄다. 국립발레단과 유니버설발레단은 각각 자체 정기공연인 <안나 카레니나>와 <춘향>으로 축제에 초청됐다. 김용걸댄스시어터는 <The type B>로 2014년작 <빛, 침묵 그리고…>에서부터 2016년작 <수치심에 대한 기억들>에 이어지는 사회에 대한 고민들을 움직임으로 풀어놓은 일련의 작업을 다시 무대에 올렸고, 데뷔작 <죽음의 여인>에서 서양예술의 총화인 발레와 한국적 요소들의 결합에 중점을 두었던 김세연서울메이트는 두 번째 작품 <트리플 바흐>에서 더하기보다 빼기에 집중하며 발레가 아닌 요소들은 모두 제거해 오직 발레 그 자체인 무대를 선보였다. 서울발레시어터는 현대무용가 차진엽을 안무가로 초청한 <빨간 구두-영원의 춤>을 프라임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의 협연으로 올려 주로 MR 반주에 의존하는 민간발레단의 공연에서 ‘듣는 즐거움’이라는 한 겹의 즐거움을 더해주었고, 같은 날 올려진 정형일발레크리에이티브의 <더 세븐스 포지션>은 다섯 개의 기본 포지션으로 구성된 발레의 움직임을 그 이상으로 확장해 발레가 신체와 움직임의 아름다움을 극단으로 밀어붙이는 예술이라는 점을 다시금 확인시켜주었다.

자유소극장에서 올려진 네 편의 공연들 역시 저마다 다른 안무가들의 개성을 확인할 수 있는 무대였다. 김지안발레단은 음악가의 삶과 예술에 관심을 보여온 안무가의 취향이 반영된 <윤이상의 귀향>을, 프로젝트 클라우드나인은 창단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젊은 단체지만 다크서클즈컨템포러리댄스에서 신선한 무대를 만들어온 안무가 김성민의 경험이 우러나온, 공간과 무대와 음악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바탕이 된 <콤비네이션 2>를 선보였다. <이야기가 있는 발레>로 해설을 곁들여 관객들의 작품 이해를 높이고 안무가의 생각을 공유하는 무대를 만들어낸 바 있는 임혜경르발레는 그 두 번째 이야기로 다시한번 관객들과 소통하는 무대를 가졌고, 발레축제와 처음 인연을 맺은 윤전일댄스이모션은 발레리노 윤전일의 안무작 <사랑에 미치다>에 한국무용가 정지만을 조안무로 참여시키고 발레무용수 외에도 현대무용수와 한국무용수가 한 자리에서 호흡을 맞추어 다른 움직임들의 결합을 시도했다. 개별 작품에 대한 평가는 작품마다 엇갈리겠지만 작품과 축제의 어울림으로 본다면 어느 작품 하나 축제와 어울리지 않는 작품이 없고 축제의 이상을 담지 않은 작품이 없다고 말할 수 있다. 김용걸댄스시어터의 <The type B>는 발레로도 현실의 문제를 짚어낼 수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준 작품이며, 김세연서울메이트의 <트리플 바흐>나 정형일발레크리에이티브의 <더 세븐스 포지션>은 발레 움직임의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준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임혜경르발레의 <이야기가 있는 발레 2>는 보다 쉽고 친근한 방식으로 발레와 관객들 간의 접점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프로젝트 클라우드나인의 <콤비네이션 2>나 윤전일댄스이모션의 <사랑에 미치다>는 젊은 안무가들이 생각하는 컨템포러리발레의 현재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충분한 의의를 갖는다.

축제의 이상과 현실의 그늘, 그 좁혀지지 않는 거리

대한민국이라는 축제의 거대한 타이틀과 예술의전당이라는 번듯한 공연장의 존재는 민간발레단체와 안무가를 지원한다는 축제의 취지와는 거리가 있다. 발레계에서 대한민국이라는 대표성과 예술의전당이라는 국내 최고 수준의 공연장이라는 두 가지 조건을 충족할 수 있는 공연 역량을 갖추고 있는 곳은 국립발레단과 유니버설발레단 두 곳뿐이다. 관객들의 눈높이는 두 단체의 공연 수준에 맞춰져 있으며 매년 두 단체의 공연 라인업이 발표되길 기다리는 관객들이 발레축제에 대해 주로 보이는 관심사는 그 두 단체가 어떤 작품으로 참여하는가다. 관객들은 축제가 어떤 단체와 안무가를 지원하는지, 그러한 단체와 안무가가 축제의 지원을 통해 어떻게 성장해가는지를 지켜볼 의무를 질 필요가 없는 이들이다. 대한민국발레축제는 무용을 떠나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수많은 축제 플랫폼 중에서 가히 최고의 하드웨어를 갖춘 축제라 할 수 있다. 예술의전당이라는 최고의 시설을 자랑하는 공연장이 있고 공연을 지원하는 홍보와 마케팅 역량 역시 업계 최고 수준이다. 축제의 방향을 결정하는 예술감독의 존재 없이도, 축제에 올릴 공모작들의 빈약함 속에서도 8회째의 축제를 성공적으로 치러낸 것은 오로지 그 하드웨어의 힘이다.

무용계에는 수많은 축제가 존재하지만 발레 안무가가 선뜻 도전할 수 있는 플랫폼은 대한민국발레축제 외에는 신인 안무가와 중견 안무가에게 따로 무대를 마련해주고 있는 케이발레월드 정도로, 발레 쪽을 살펴보면 민간단체나 개인 안무가가 작품을 생산할 수 있는 인큐베이팅 시스템은 전무한 수준이다. 안무가나 단체가 이렇다 할 작품을 만들 여건이 형성되어 있지 않은 채 기획자들이나 평론가들은 볼 만한 작품이나 믿을 만한 안무가가 없다고 말하고 애써 내놓은 신작은 혹평 속에 사장되기 일쑤다. 그러나 볼 만한 작품이 없고 믿을 만한 안무가가 없는 것은 안무가가 작품을 만드는 역량이 부족한 탓만은 아니다.

 필자가 입버릇처럼 자주 하는 말이지만 한 명의 아이를 길러내는 데에는 하나의 마을이 필요한 것처럼 한 명의 안무가, 또는 한 편의 작품이 탄생하기까지는 하나의 세계가 필요하다. 하나의 세계란 무릇 안무가를 교육시키는 커리큘럼, 안무에 대한 실험을 할 수 있도록 무용수와 연습공간의 안정적인 지원, 실험을 통해 만들어진 작품을 올릴 수 있는 공연장, 공연장으로 관객들을 유인하는 홍보와 마케팅 시스템, 그리고 이러한 창작 과정과 결과에 대해 바르게 피드백해줌으로써 작품의 품질을 끌어올리고 재공연에 이를 수 있는 비평의 선순환구조 모두를 포함한다. 

비유하자면 현재의 대한민국발레축제는 아직 실제 도로에서 달릴 수 있는 자동차 생산 시스템이 갖춰지지도 않은 채 8차선 고속도로가 만들어진 것이나 다름없다. 물론 마을 또는 도시 공동체를 꾸리는 과정에서 길을 닦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인간은 길을 통해 문물을 교류하고 소통하지만 길은 인간의 삶에서 최우선 조건은 아니다. 인간의 삶에 필요한 것은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는 집과 이웃의 존재이며 길은 마을이 형성되고 나서 통행의 편의를 위해 나중에야 닦인다. 매년 축제에 올릴 작품을 선정해야 하는 조직위원회의 고충은 작지 않다.

 어느덧 무용계의 대표 축제의 하나로 자리잡은 발레축제에 대한 기대 또한 작지 않다. 커져가는 기대와 빈약한 안무가풀 사이에서 곡예운전을 하듯 위태롭게, 없는 살림을 감추려 근근히 축제 무대를 마련해온 조직위원회의 노력은 안무가와 작품을 길러낼 수 있는 세계의 존재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곧 힘을 잃을 것이다. 축제를 또 한번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지금이 안무가를 어떻게 길러내고 작품을 어떻게 만들어낼지 고민을 시작해야 할 때이며, 이 고민은 축제 조직위원회가 아닌 이 세계의 구성원 모두의 몫이다. 길 위를 달릴 자동차가 없다면 길이 존재해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글 윤단우 무용칼럼니스트 사진제공 대한민국발레축제

THE MOVE  Press@ithemov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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