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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관의 내 마음의 국악명반 ⑤ 반드시 찾아와야 할 우리의 문화유산‘1896년 7월 24일, 한민족 최초의 음원’_6개의 에디슨 원통음반
2007년 표지

 

2009년 녹음

- 수록곡: 소개곡 단가 외 10곡

- 소리 : 이희철. 안정식. Son Rong

- 녹음 : 1896년 7월 24일 미국 워싱톤 - 출반사 : 정창관 CKJCD-010

- 출반년도 : 2007년. 2009년

 

한민족으로 처음 녹음한 사람은 누구일까? 

2003년에 한국대중예술문화원에 간행된 ‘한국대중가요사’에 따르면 1893년에 미국 시카고박람회에서 박춘재 명창의 취입이 이루어졌다고 서술하고 있으나 이는 잘못된 정보이다. 1893년 박람회에 참가한 10명의 장악원 악사명단에 박춘재의 이름은 보이지 않으며, 당시에 악사들이 에디슨원통음반에 녹음했을 수도 있지만, 개막식인 5월 1일 이후 5월 3일에 귀국 길에 올랐으니 시간상으로 녹음했을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1998년 4월 25일 한국국악학회 개최의 학술대회에서 프로바인 교수(전 메릴랜드대학 교수)는 1896년 7월 24일에 미국의 여성 인류학자인 엘리스 플래처 여사(1838-1923)가 워싱톤에서 3인의 조선인의 소리를 6개의 에디슨 원통음반에 담았다고 소개하고, 카세트테입으로 그 음악을 들려주었다. 프로바인 교수는 미의회도서관의 목록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이 음원을 발견하고, 미의회도서관으로부터 음원을 DAT테이프로 받았다고 하였다. 이것이 우리민족의 최초의 음원이지만,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다, 필자가 2006년경에 이 사실을 알고 프로바인 교수와 접촉했지만, 프로바인 교수는 한국에서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아 발표사실을 잊어버렸으며 미의회도서관으로부터 받은 DAT테이프의 소재도 모른다고 했다. 이에 필자는 미의회도서관과 직접 접촉하여 음원을 CD로 받아, 녹음된 지 111년 되는 2007년 7월 24일에 ‘1896년 7월 24일 한민족 최초의 음원’이라는 이름으로 비매품음반 3,000매를 출반하였다.

녹음은 1896년 7월 24일, 앨리스 플레처 여사에 의해 워싱톤에 있는 플레처 여사의 집에서 이뤄졌으며, 여사는 인류학적인 관점에서 조선인의 음악을 녹음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6개의 원통음반은 후손에 의해 1930년대에 미의회도선관에 기증되었으며, 1개는 기증 전에 파손되었으며, 1개는 기증 후에 파손된 상태이다. 이 음반들은 1980년에 미의회도서관의 ‘Federal Cylinder Project'에 의거 음반에 대한 구두설명과 함께 디지털음원으로 전환되어 있다.

음반에는 미의회도서관에서 온 설명이 담긴 원본음원 등과 10여분의 11곡을 2가지로 마스터링하여 담았다. 내용은 소개곡-단가(0:50), 매화타령(0:27), 애국가 1(0:56), 애국가 2(1:02), 간주-손장단(0:34), 사랑노래-아라랑 1(1:32), 사랑노래-아라랑 2(0:08), 사랑노래-아라랑 3(1:25), 설화노래-제비잡는데(1:44), 동요-달아 달아(0:55), 마일맨의 노래(0:43)이다. 이 음반은 처음 음원을 소개한 프로바인 교수에게 전달되었고, 교수는 다시 연구를 거듭하여 2008년 2월 14일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개최된 세미나에서 소리꾼의 3사람 중 2사람이 당시 워싱톤의 하워드대학의 한인학생들이라는 사실을 발표하였다. 이에 필자는 2009년 확인된 사진으로 표지를 바꾸어 음반을 1,000매 재출반하였다.

미의회도서관에 있는 6개의 원통음반은 분명히 미국 것이지만, 이는 우리로서는 후손에게 물려주어야할 문화유산이기도하다. 미의회도서관의 한국인 사서는 ‘플래처 여사의 후손이 이 음반을 미의회도서관에 기증한 것이기 때문에 이 음반을 한국에 기증한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합니다.’라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미국과 한국의 우호관계를 고려하여, 국가차원에서 영구임대 등의 형식으로 국내에 들어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미국으로 보아서는 수천 개 중의 6개의 원통음반이지만, 우리민족으로서는 최초의 음원이 담긴 원통음반이다. 필자는 이 원통음반을 국내로 가져오기 위해 외로이 노력하고 있으며, 현재 국립중앙도서관을 통해서 길을 모색하고 있다. 노래한 2사람은 1896년 일본 게이요대학에 유학한 학생으로 아관파천 당시 신변의 위협을 느껴 미국으로 도망간 학생들이다. ‘산도 설고 물도 설네 무얼 바라고 여기 왔나...’라고 시작되는 ‘사랑노래 – 아라랑’의 첫마디는 우리 역사의 한 단면을 말해주고 있다.

 

정창관(한국고음반연구회 부회장)

● ‘정창관의 국악CD음반세계’(www.gugakc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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