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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시인 탄생 100년의 해’ 선포하다‘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시인 윤동주

 

"이제 새벽이 오면 나팔소리 들려올 게외다"

- ‘새벽이 올때까지’ 중

 

올해는 윤동주 시인의 탄생 100주년, 순절 72주년이 되는 해다. 일제 강점기 음울하고 가혹한 시대에 맑고 순수한 시심으로 투명한 자기 성찰의 시를 통해 반드시 여명이 오리라 믿었던 민족적 애국시인으로 상징되는 시인 윤동주(尹東柱, 1917~1945). 열렬한 독립투사도 아니었고, 생전 유명 시인도 아니었지만, 29세의 나이에 요절, 짧은 생애 그가 남긴 100여 편의 시는 인간 본성의 참다움을 일깨우는 냉철한 각성으로 감동을 주며 오늘날까지 순수와 맑은 영혼의 상징으로 남아있다.

“죽는날까지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던” 시인은 어둠의 시대 고요한 내면을 응시하며 “시가 이렇게 씌어지는 것”조차 부끄러워 한 순결한 영혼의 소유자였다.

시인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문화계 곳곳에서 그의 시와 생애를 조망하는 기념행사가 치러지는 가운데, 서울시인협회(회장 유자효)는 2017년‘윤동주 100년의 해’를 선포하고 지난 일 프레스센터에서 선포식을 갖고 올해 협회의 활동계획을 발표했다.

우선 총 5회에 걸친 국내외 ‘윤동주 문학여행’으로 추모행사를 열고 제1차로 2월 16일부터 18일까지 윤동주가 다닌 도쿄 릿쿄대학 도시샤대학 등지를 탐방한다. 이후 ‘서울 속의 윤동주 삶의 흔적 찾기’, ‘윤동주가 생체실험으로 죽어간 후쿠오카 감옥 방문’, 중국 용정의 ‘생가에서 묘지까지’,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원고를 보관한 후배 정병욱 생가’ 방문 등이 계획되어 있다.

문학여행 외 윤동주 시의 재발견, 100편의 캘리그래피전, 윤동주 생애 사진전, 여름시인학교 ‘서시 백일장’, 하늘공원에 윤동주 시비공원 조성 제안, 윤동주 문학연구(발간) 등을 개최한다. 유자효 회장은 “서울시인협회가 윤동주 100년의 해를 기리는 뜻은 윤동주를 사랑하고 지키려는 서울시인협회 시인들의 소망이 그만큼 크고 간절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윤동주는 만주 간도의 명동촌에서 아버지 윤영석과 독립 운동가이자 교육가로 이름이 높던 김약연의 누이 김용 사이의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문화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된 전형적인 농촌마을에서 서정적인 자아를 키우며 자라났고, 조용하고 사색적인 성품을 지닌 걸로 알려진다.

일찍이 소학교때부터 후일 일본 유학과 죽음까지 함께한 동무 송몽규와 소년 잡지<새명동>을 펴내며 동시와 동요 등을 싣기도 했다. 명동소학교를 졸업한 후 중국인 마을에 있는 소학교에 편입해 이때의 추억을‘별 헤는 밤’에 담았다. 이듬해 1932년 용정에 있는 기독교계 은진중학교(이후 대성중학교로 이름이 바뀜)에 입학해 교내 잡지를 내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1935년 평양 숭실중학교로 전학 한 후 교내 문예지에 시를 발표하는 등 열렬한 문학 활동에 매진한다.

1936년 신사 참배 거부로 숭실중학이 폐교 당하자 용정으로 돌아와 광명학원 중학부에 편입한다. 이후 22살 되던 1937년 사촌 송몽규와 서울의 연희전문(연세대학교 전신)에 입학한다. 문학 공부에 반대하던 아버지를 설득해 문과반 진학이 이루어지고 문학에 대한 꿈을 키운다.

강의가 없는 날은 주로 산책과 독서를 즐기며 기숙사 생활을 하던 중 1941년 연희전문 졸업을 앞두고 일제의 감시를 받고 있던 김송의 집에서 윤동주는 「무서운 시간」 · 「태초의 아침」 · 「십자가」 · 「또다른 고향」 같은 작품을 완성한다. 졸업을 앞두고 윤동주는 그 동안 쓴 시 19편을 묶어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제목으로 자필 시고집(詩稿集) 세 부를 만든다.

검열과 경제적 이유 등으로 생전 시집 출판은 결국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해방 후 1948년 1월 30일, 어머니가 감춰둔 원고로 드디어 윤동주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세상에 나왔다. ‘서시’를 비롯한 19편의 시가 실렸다. 이후 일본 교토의 도시샤(同志社)대학 영문과에 입학하게 된다. 도시샤대학은 윤동주가 가장 좋아했던 시인 정지용이 다닌 학교이기도 하다.

1943년 7월, 방학을 앞두고 독립운동을 한 사상범으로 검거돼 2년 6개월형을 선고받고 후쿠오카형무소에 수감된다. 1945년 간도 명동촌으로 윤동주의 사망소식이 날아든다. 송몽규에 의해 일제로부터 생체실험을 당했음을 확인한 얼마 후 송몽규도 옥중 사망했다. 윤동주의 묘는 중국 용정 동산의 교회 공동묘지에 있다. 윤동주 사후 반년 뒤 일제는 태평양전쟁에서 패망했다.

 

 

[interview] 세상이 아무리 추워도 꽃처럼 시를 피워내야 한다, 권호성 연출

 

시인 윤동주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서울예술단은 대표적 창작가무극 <윤동주, 달을 쏘다>를 다시 무대에 올린다. (3.21-4.2 예술의전당 토월극장) 윤동주의 삶을 통해 일제 강점기, 비극의 역사 속에서 자유와 독립을 꿈꾸었던 순수한 청년들의 이야기를 담아낸 이 작품은 그의 대표적인 시 8편이 고뇌하는 윤동주의 독백 속에, 시대의 아픔을 노래하는 대사 속에 녹아들어 긴 여운을 남긴다. 올해로 4번째 공연을 맞는 무대의 연출을 맡은 권호성 연출을 통해 윤동주 이야기를 들어본다.

 

 

Q. 올해 윤동주 시인 탄생 100주년을 맞아 <윤동주, 달을 쏘다>가 다시 무대에 오르게 되어 감회가 남다를 것 같기도 합니다.

5년 전 이 작품이 오페라 극장에서 올려 질 때만 해도 초연에다 제작 시간도 모자라는 등 워낙 경황이 없어서 시인 탄생 백주년에 이 작품이 올라갈 거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초연 이후 다행히 많은 분들이 사랑해주고 관심을 가져준 덕분에 이런 뜻 깊은 해에 뜻 깊은 공연을 올리게 되어 개인적으로 매우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Q. 얼마 전 윤동주 시인이 다닌 일본 릿쿄 대학에도 직접 다녀오신 걸로 압니다. 직접 가보신 소감은 어떠했나요? 흔적이 남아있었는지요?

시인의 행적과 에피소드에 연관된 흔적은 거의 찾기가 힘들고요, 남아 있는 건물과 고풍스런 벽돌 건물 사이에 몸을 담그고 당시 시인의 생각과 심정을 헤아리려 노력했다고나 할까요, 1942년 4월 2일 문학부 영문과에 입학한 시인이 느꼈을 낯설음과 외로움이 이 교정 어딘가에 남아 있지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대학 이곳저곳을 기웃거렸습니다.

그러다 1월 한겨울인데 교정 한 구석에 있는 나무에 꽃이 피어 있는 걸 보았습니다. 하나는 동백꽃이었고 또 한 그루는 벚꽃이라 생각했는데 나중에 사진을 보더니 아는 후배가 매화꽃이라 하더군요. 모든 나무가 옷을 벗고 겨울 아래 자신의 본성을 꼭꼭 숨기고 있는 이 한 겨울에 마주친 그 광경은 매우 경이로웠습니다. 시인이 나에게 던지는 무언의 의미를 전달받는 느낌이었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추워도 꽃처럼 시를 피워내야 한다는!

 

 

윤동주가 동경 릿쿄대학에 입학하기 전 시인은 당숙인 윤영춘이 머물고 있던 YMCA에서 함께 지냈는데요, 물론 그 건물터에는 예전 건물은 없고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 있습니다.

그곳을 방문했을 때는 사실 별다른 감흥이 없었는데요, 그 건물 주변을 돌아보다 매우 오래된 성당을 발견했습니다. 성 프란치스코 카톨릭 성당이라고 하는데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백년도 넘었다고 하더라고요.

시인은 릿교대학에 입학할 무렵 윤영춘의 숙소에서 2주정도 있었다고 하는데 기독교 신자인 시인이 이곳에 오지 않았을 이유가 없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더욱이 YMCA에서 1, 2분만 걸으면 닿을 수 있는 곳이니까요. (지금은 건물에 가려져 길을 건너 골목으로 들어가야 만날 수 있어서 잘 보이지 않습니다.) 성당 이곳저곳을 보며 저는 더욱 이런 제 생각에 확신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이곳 성당에서 기도하는 시인을 묵상하는 윤동주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작년 겨울 용정에 갔을 때 저는 시인이 다니던 명동소학교 교실에서 땅거미 지는 운동장 모습을 보고 있었습니다. 잠시 후 어둠이 완전히 천지를 삼키고 이윽고 펼쳐진 밤하늘을 수놓던 별들의 찬연함을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별을 노래하는 시인 윤동주’라는 수식어와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결코 그냥 나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습니다. 경건함, 내면에 대한 성찰, 별 빛과도 같은 투명함 그리고 그로인한 부끄러움, 이 모두 시인이 성장하며 갖게 된 시인에게는 너무도 자연스러운 공기와 같은 것들이라는 생각도요.

Q. 가무극 <윤동주, 달을 쏘다>는 2012년 초연 이래 관객들의 사랑을 받아왔는데, 연출로서 특별히 신경 쓴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올해 4번째 무대에서 혹 달라진 점이 있는지?

5년 전 처음 대본을 받았을 때 느낀 첫 생각은 무대가 시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시인의 시가 이 작품의 주요 모티브가 되기에 사실적인 세트로서는 표현의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초연무대에서 디자이너와 협력하여 제 의도에 매우 접근한, 시인의 시적 판타지를 잘 표현할 수 있는 무대를 디자인하여 오페라 극장에서 보여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처음부터 이 작품을 본 많은 분들 또한 지금까지 오페라 극장 초연 무대에 대해 많은 애정을 보여 주시고 계시니까요.

이후 토월극장으로 무대가 옮겨지면서 무대 콘셉트가 사실적인 세트로 바뀌었는데 장점도 있었지만 무대가 너무 구체적이다 보니 여러모로 상상력을 제한하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특히 윤동주 시인의 시와 무대 세트가 만날 때 시적 환타지를 구현하기는 연출적으로 매우 어려웠습니다.

이번 시인 탄생 백주년 기념공연 때 시적 판타지를 구현하는, 보다 시적인 무대로 관객들에게 다시 서고 싶었지만 예산상의 문제로 부분 보완에 그치게 된 것이 가장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지난 5년간 공연 하면서 부족했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골고루 손을 보며 세밀한 보완을 하고 있기에 그 어느 때 보다 시인의 호흡을 더욱 가까이 느낄 수 있는 무대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Q. 무대 속에는 윤동주의 시 8편이 나오는데 가장 좋아하는 시가 있다면? 이유는?

‘서시’입니다. 서시는 우리 국민 거의 누구나 암송하는 국민 시입니다. 저 또한 예외가 아닙니다. 서시의 내용과 투명함 그리고 그 초연한 의지가 맘에 들어 어릴 적 일기장 맨 앞장에 적어 보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습니다.

이러한 서시가 무대 위에서 윤동주 역을 맡은 배우의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거대한 침묵으로 일렁이는 합창이 됩니다. 관객 모두 입 밖으로 소리 낼 수 없는 순간이지만 관객들 한 명 한 명이 각자 모두의 마음속으로 그 시를 함께 낭송하고 있는 것이죠. 유명 가수의 콘서트에서 자연스레 그 가수의 노래를 따라하고 함께 합창하는 것처럼 소리 없는 합창이라고 할까요, 비록 배우 외에 그 누구도 입 밖으로 소리 내지는 않지만 거센 파도와 같은 심장보다 더 뜨거운 모두의 외침을 들을 수 있습니다.

 

 

Q. <윤동주, 달을 쏘다>의 가장 아름다운 장면으로 명장면, 베스트 넘버를 꼽는다면?

극중에서 윤동주 시인이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외치는 장면입니다.‘시를 외치다’라고 표현을 한 것은 사실 그 장면에서 실제로 외치기 때문인데요, 사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매우 서정성이 짙은 윤동주 시인의 대표적인 시로 널리 알려져 있지 않습니까!

그 시가 나오는 장면을 처음 연습할 때 고민이 매우 많았습니다. 극은 엔딩을 향해 치닫고 있었고 반면에 시는 매우 서정적이고 또 길어서 일반적인 시낭송의 느낌으로는 자칫 극의 흐름을 느슨하게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죠. 한동안 그 장면이 풀리지 않아 반복에 반복을 거듭해서 연습하고 있던 어느 날, 당시 윤동주 역할을 맡은 박영수 배우에게 시를 낭송하지 말고 분노를 가지고 세상을 향해 고발하듯이 소리 질러 달라고 주문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엄청난 힘이 되어 돌아오더군요. 그렇게 하니 그 시대를 온 몸으로 뚫고 시를 써내려간 시인의 절규와 분노가 생생하게 느껴졌습니다. 온 몸에 소름이 돋더라고요. 듣고 있던 나도 배우도 모두가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장면부터 마지막 달을 쏘다 합창에 이르기까지가 가장 명장면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Q. 그동안 <들풀> <블루 사이공> <당신의 아름다운 시절> <윤동주, 달을 쏘다> 등 인물과 시대극을 많이 한 편인데, 한 시대를 풍미한 인물이나 역사적 흐름을 담을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무엇인가요?

인물의 허구와 드라마의 허구가 역사적인 의의나 사실 그리고 주요 인물의 본성이나 업적을 훼손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능한 사실에 입각하고 자료에 의거해서 드라마의 빈틈을 메워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드라마의 재미와 반전을 위해 억지로 무리한 추측이나 설정은 피하자는 것이죠. 더욱이 아픈 역사를 다룰 때는 의롭게 살다 가신 분들에게 누가 되지 않으려 합니다. 예술을 방패삼아 관객의 재미와 흥미를 끌어내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지요. 시인의 행적을 찾아 돌아다는 것도 바로 그러한 이유의 연장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Q. 올해는 국내 뮤지컬계에서 중‧소극장 창작 뮤지컬이 유독 많았는데, 다소 주춤한 뮤지컬 시장에 새로운 활로가 될 수 있을까요? 올해 국내 뮤지컬계의 흐름에 대한 전망은 어떠한가요?

점점 다양화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창작 뮤지컬이든 대형 수입 뮤지컬이든 소재나 형태뿐만 아니라 관객들 취향 까지도 점점 다양하게 발전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여러 가지 형태로 뮤지컬 지원사업이 활성화되면서 시간을 충분히 갖고 무리하지 않고 단계별 발전을 이루어가도록 하는 점은 매우 고무적입니다. 특히 뮤지컬에 관심이 많은 능력 있는 젊은 인력들의 약진은 한국 뮤지컬의 앞날을 매우 밝게 해주는 긍정적인 측면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직도 한탕주의식의 무리한 투자와 제작 형태로 인해 많은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피해를 본다거나 흥행에 도움이 되는 지명도 높은 배우 위주로 스타 캐스팅을 하는 작품들만이 전면에 부각되면서 오히려 소재와 형태의 다양성을 해친다는 점은 부정적인 측면이라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분간 이러한 흐름은 계속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Q. 다년간의 해외 투어와 국제적 페스티벌 경험에서 가장 좋았던 뮤지컬 무대는 어떤 것이었나요? 꼭 해보고 싶은 작품이 있다면?

나만의 작품을 하고 싶습니다. 남을 흉내 내는 작품이 아닌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작품을 하려 합니다. 남북 관계의 정상화를 위한 문화교류로 평양에서 동학농민혁명을 다룬 뮤지컬 <들풀>을 공연하고 싶다는 생각, 베트남 전쟁으로 인한 피해자와 아직도 고통 받고 있는 현지 유가족들에 대한 책임에서 절대로 자유로울 수 없는 한국의 진정한 참회를 위한 <블루 사이공>이 다시 올려 지기를 바랍니다.

새로운 작품을 하는 설렘도 중요하지만 지금껏 열정을 불살랐던 작품 중에 관객과 다시 만나게 해주고 싶은 작품을 선별, 다시 다듬고 보듬어서 좋은 작품으로 거듭 태어나게 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아울러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는 뮤지컬도 기획 중에 있습니다.

Q. 개인적으로 올해 목표가 있다면?

특별한 것은 없습니다. 지금까지 결심한대로 된 적이 거의 없어서요. 그냥 틈나는 대로 그동안 소홀히 지냈던 친한 지인들과 최대한 많이 만나고 얘기 나누고자 합니다. 어느 순간 내 주위에 소중한 사람들이 참 많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좋은 사람들과 좋은 이야기로 좋은 기운을 함께 나누려 합니다. 계획을 잘 세워서 잘 놀아야겠다는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습니다.

Q. 계획하고 있는 2017년 작품 활동은?

일단 확정된 것은 두 가지가 있는데요, 첫 번째는 올 해 상반기 중에 소설 ‘서편제’를 연극으로 만드는 일입니다. ‘소리 극’이라는 콘셉트로 2년 전부터 여러모로 많은 공력을 기울인 작품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제 데뷔작이자 10년 전 한국과 해외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던 ‘반쪽이전’을 다시 올리는 일입니다. 두 작품 모두 전통을 기반으로 하는 작품입니다. 올 하반기에도 전통을 소재로 한 작품이 예정되어 있어 올해는 여러모로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아름다움에 푹 빠져서 지낼 것 같습니다.

 

임효정 기자

THE MOVE  press@ithemov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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