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신: 페이퍼 샤먼

무속신화는 굿의 한 부분으로 서사성과 함께 제의성도 지닌다. 6월 마지막 주, 국립극장 해오름무대에 오른 국립창극단의 2024년 신작 창극 <만신: 페이퍼 샤먼>(6026-6.30)은 굿과 샤머니즘의 세계를 소재로 '무속을 통한 구원과 치유'라는 목표를 삼았다. 지난해 4월 부임한 국립창극단 유은선 예술감독이 기획한 첫 신작으로 뮤지컬 음악감독박칼린이 연출 · 극본 · 음악감독을 맡았다.

공연을 보고 나면, '예민한 자들'이라 명명하는 것 부터가 일견 치기로 보이기까지 하다.

제의의 형식을 통해 샤먼이 상처 입은 자들을 치유한다는 것은 그 상처에 직면해 위험하고 치명적인 상해를 입을 수도 있는 두렵고 오싹한 일이다. 국립창극단의 신작 <만신: 페이퍼 샤먼>을 본 후, 오히려 영화 <파묘>가 왜 그렇게 호응을 얻고 흥행몰이를 했는지, 어떻게 훌륭한 지를 떠올리게 한다.

치유사, 예민한 자라고 명명되는 이름은 포괄적이고 은유적 표현이기도 하지만, 이를 차용해 부각하는 것은 극의 성격을 부여하는 상징이 되기도 한다. 단지 예민해서 될까? 수 천년 세계사에서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는 전쟁과 평화, 제국주의, 식민주의, 인종차별, 환경문제까지... 오대륙 전 세계의 비극과 고통을 위무하는 굿판이라고?

장황하고 광범위한 서사는 흡인력이 떨어진다.

"들린다! 들린다! 모든 생명의 말이 들린다!"

"천년이 지나 만년이 지나도 우리가 빌어주겠소!"

주인공 실(김우정 분)과 배우들이 혼신으로 20분 동안 계속되는 강신무에서 창극 제작진이 내세운 구음과 무구 등 한국 무속의 차별화는 크게 와닿지 않는다.

한편, 샤먼의 직업이 긍정적이기만 할까? 우리의 전통극, 전통음악에서 대개 '굿'에 대한 긍정적인 마인드는 처음부터 기정사실화로 시작하지만, "음과 양, 과학과 미신 사이" 라는 객관적인 시각은 여전히 존재한다.

시작부터 과욕이 부른 화근은 고통의 근처에도 가보지 못해 공감을 일으키지 못하고 유치한 대사가 남발하며 코믹하기까지 하다. 전승되는 민담이나 설화가 아닌, 창작 이야기에서 서사구조는 공감대 형성의 중요한 요소다.

무대 디자인은 낡은 구시대의 장면인듯 구태하고 어둡고 칙칙하다. 의상과 조명도 촌스럽다. 한지예술의 미적 분위기라기보다는 무대와 의상 표현도 대단히 일차원적이다. 여태껏 쌓아온 국립창극단 레퍼토리의 우수함은 어디로 갔나?..

사극대하드라마에서 보았을법한 특별한 자의 탄생의 과정이 30여분 가량 긴 시간을 할애했음에도 신비롭지도, 앞날의 예감에 대한 상징성도 잘 보이지 않는다.

무엇보다 3시간이나 되는 긴 러닝타임에도 서사의 구조적인 내밀함이 보이지 않아 공감이 어렵다.

이 창극의 목적이 오대륙을 넘나드는 다국적 굿판으로 세계사의 고통을 치유하는 것이라면, 각 나라별 굿판의 차별화와 특색을 더욱 부각하고 강조해 독특함을 강조하는 무대 연출이 필요해 보인다. 나열식 전개만이 아니라 장면별, 샤먼별 구분이 더 두드러져야 하지 않을까.

다국적 굿판과 더불어 한국형 제의의 뿌리 깊은 힘과 함의에 대한 상징성은 어디에 있는가?

대개 극의 초반 장대한 스토리로 위인의 탄생 혹은 특별한 자의 출생의 비밀에 얽힌 서사 내지는 역사적 사건의 시작을 이야기한다면, 굉장한 사실적 묘사 혹은 미래에 대한 상징, 치밀하고 디테일한 낭만적 풍경 등으로 시작하게 마련이다. 같은 배경에서 배우 몇 명이 오가는 나열식 전개가 아니라...

15개의 창으로 연결된 총 2막의 창극<페이퍼 샤먼>에서 1막 앞부분부터 대부분을 차지하는 북유럽 숲속의 '실'의 탄생과정과 강신무로 샤먼의 길에 나서기전 까지의 과정에 대한 묘사가 지나치게 길어 지루하다.

영화와 달리 무대(창극 혹은 연극)에서 시청각적 체험이 주는 놀라움의 효과는 30분이나 지속되지 않는다. 사실적 영상미가 압도하는 영화조차도 이야기와 효과적으로 맞물리지 않는다면 금새 지루해지고 일종의 기술적 장면으로 전락할 수 밖에 없기 마련이다.

굿판에 많이 쓰이는 종이를 활용한 의상과 소품에 한지를 사용한 무대의 독특함은 부분적 장면에서 간혹 컬러풀한 미장센을 발견하게 된다.

극의 타이틀 명인 <페이퍼 샤먼>은 종이에 글을 쓰면 책이 되지만 종이를 물에 담그면 녹아 사라지는 음양의 이치를 보여주는 것이 샤먼의 성정과 통하는 데서 붙였다고 하는데, 무대의 활용면이 아닌, 극의 서사에서 '페이퍼(샤먼)'에 대한 구체적인 의미와 상징을 담아야 하지 않을까.

박칼린 연출. 음악감독

<넥스트 투 노멀> < 미스터 쇼 > 등 박칼린 연출의 뮤지컬 역량과 재기발랄한 아이디어, 또 그가 판소리를 전수 받은 국악 공부 등에 대한 기대는 그의 오랜 경험에도 불구하고 전통 무속과 한국 굿의 전통에 대해 미약해 보인다. 연출, 음악감독, 극본까지 맡아서 하기에는 무리가 아니었을까.

국립창극단은 1962년 창단 이래 전통적 스타일의 창극을 넘어 2012년 국립극장 레퍼토리시즌 도입부터 현대적 감각으로 재무장한 여러 작품을 통해 젊은층에까지 인기를 끌어왔다. 

12년 동안 원작에 기반한 현대화 창극이었다면, 이번 국립창극단 유은선 예술감독 부임 후 첫 신작인 <만신: 페이퍼 샤먼>의 의미는 원작이 없는 "순수창극"이라는 점에서 도전과 시도를 높이 살만하다.

또한, 창극의 소재면에서 '굿'과 '샤머니즘'이라는 기존 장르의 소재를 벗어난 유니크함은 신선하고 계속 도전해볼 K-콘텐츠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창극의 매력적인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해학'이 부족한 점은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무속신화를 담는 그릇이라고 할 수 있는 서사무가는 노래인데, 이야기로 구전되는 민담과 달리 구성진 가락과 율격, 유장한 묘사 같은 독특한 문체를 갖는 판소리 창극에서 해학은 중요한 요소이자 특징이고 매력이다.  

DMZ 씬에서의잠깐 보였던 해학적 요소 등을 더욱 강조할 필요가 있다. 향후 러닝 타임의 시간을 줄임과 더불어 더욱 고려해야 할 점이라고 본다. 

처음부터 'K-컬처' 해외진출을 목표로 한 바, 38쪽짜리 작은 프로그램북에 인사말과 줄거리 소개를 국문과 함께 영문도 실었다. 초연인만큼 대본을 함께 실었다면 좋지 않았을까?

국립극장은 언젠가부터, 특히 지난해 <세종의 노래>에 이어 지나치게 무대의 규모화, 확장성에 주력하는 게 아닌까 싶기도 하다. 객석을 오가며 마당극을 도입한 관객과의 체험형 방식도 인과관계에 맞춰 공감형 연출이 필요하다. 북 치고 장구 두드린다고 관객과 공감대가 형성되는 것은 아니다. 웅장하고 거창하게 펼쳐내는 스펙터클(Spectacle)한 무대의 입이 쩍 벌어지게 하는 놀라움과 쾌감과 더불어 이에 앞서, 시대를 반영한 대의의 디테일이 보다 섬세하고 세련된 미학으로 드러나길 기대한다.

사진제공_국립극장

임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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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효정 기자  Press@ithemov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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