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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남수의 무빙액트] 이름을 불러드립니다 <향화>창작가무극 <향화>
  • 진남수 호원대 교수 / 극작가, 배우
  • 승인 2021.02.18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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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가수전. 요사이 화제가 되었던 한 TV프로그램이 내걸었던 부제목이다. 지난겨울 이름 모를 71명의 가수들이 이름표 대신 번호표를 가슴에 달고 나와 노래 경연을 벌였다. 무명의 가수들은 경쟁을 하는 동안에도 상대의 기운을 북돋아주었고, 상대의 아픔을 어루만져주었다. 급기야는 경쟁자의 탈락에 눈물까지 보이며 시청자들에게 뭉클한 감동을 안겨주기도 했다. 그렇게 긴 머리를 휘날리며 로커의 짙은 감성을 풀어내던 29호도 자기만의 몸짓과 표현으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던 30호도 그리고 또 몇 호 몇 호 몇 호들도 각자 자신의 이름을 세상에 널리 알리고는 무대를 내려갔다. 그들을 보면서 많은 이들은 생각했다. 왜 저이들이 지금껏 무명이어야 했을까. 그리고 또 생각했다. 그래 이제 유명해져야지. 그럴 자격이 있으니 유명해야지.

 

유명은 이름이 났다는 뜻이며, 이름을 많은 이들이 부르고 기억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름은 ‘이르다‘ 또는 ‘부르다‘로 부터 비롯된 낱말로 다른 것과 구별하기 위한 호칭의 수단이기도 하지만 존재의 가치나 의의를 뜻하는 말이기도 하다. 아서 밀러의 작품 <시련> 에서 목숨이 달린 서류를 제 손으로 찢어버리던 존 프락터의 절규도 다름 아닌 “내 이름만은 돌려달라“는 것이 아니었던가. 이름은 처음에는 뜻을 담아 짓는 것이고 다음에는 부르는 것이다. 새학기를 맞아 출석부의 이름을 부르거나 새로 모인 공연팀의 이름을 뜯어볼 때면 그 이름들 하나하나가 지닌 뜻이 너무도 아름답고 귀하여 매번 여지없이 감탄을 한다. 생각해보면 그토록 귀한 이름을 가진 사람이란 또한 얼마나 귀한 존재이며, 얼마나 간절한 소원의 집합체인가. 그러니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하나의 주문이요, 기도와 같다. 이름은 부름이요 또한 바람이다. 불러일으키는 바람과 같은 것이다.

 

<향화>라는 이름의 공연이 경기아트센터 무대에 올랐다.

향화는 기생의 이름이다. 그녀의 본명은 김순이, 기생으로 얻은 이름이 김향화다. 김향화는 1919년 3월 수원권번 소속 동료기생 30여명을 이끌고 수원경찰서 앞에서 대한 독립 만세를 불렀고, 그녀들에게 가해진 폭력은 수원지역 대규모 만세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다. 김향화는 서대문형무소 8호 감방에 유관순과 함께 투옥되어 모진 옥고를 치렀고, 이후 행적이 묘연해졌다. 그리고 잊혀졌다. 아니다. 우리는 그 이름을 애초에 알지 못했다. 어쩌면 알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관기이든 궁인이든 예인이든 뭐든 그녀들은 한낱 기생이었으니까.

 

서울예술단은 차별과 억압의 시대를 살았던 김향화를 비롯한 수원의 33인의 기생들을 무대 위로 불러 올려 한사람 한사람의 이름을 불러주었다. <향화>는 그녀들의 뜻을, 그 존재의 고귀함을 불러 세우고 있다. 불러 일으키고 있다. 하지만 공연이 끝나고 자리에서 일어설 때, 우리는 그녀들의 이름을 일일이 외워 기억할 수는 없다. 그녀들은 다시 무명이다. 그러나 무대가 살고 저 노래가 다시 불리는 동안은 그녀들의 이름도 그 존재의 의미도 되살아나 ‘아직 끝나지 않은 그녀의 끝‘을 향해 우리를 걷게 할 것이다.

그러고 보면 노래도 이름도 만세도 부르는 것이다. 먼 것을 불러 오게 하는 것이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가신님들의 그 오랜 바람이 이 봄에도 저리 불고 있다.

 

진남수 호원대 교수 / 극작가, 배우  namsuls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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