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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광준의 필름 모던클래식을 찾아서 ①촘촘한 은유의 미학을 느슨하게 풀어내다, <우작 UZAK>

 

 

 

 

 

 

 

 

 

 

잘 만들어진 상업영화가 끊임없이 재잘거리는 쇼트들덕에 근저의 외로움을 잠시 상실하는 즐거움 내지 쾌감을 누린다면, 소위 비범한 상업영화나 예술영화들 중 잘 만들어진 모던클래식의 지위를 얻게 된 몇몇 것들은 평범한 상업영화에 비해 말수 적은 쇼트 속에서 그간 바쁜 일상 속에 파묻혀있던 내밀한 고독감을 스멀스멀 피어오르게 만드는 매력을 지녔다는 생각이 듭니다.

음악과 문학 등에서 세월을 뛰어넘어 현재까지 향유되고 있는 작품들을 고전이라 부르듯, 영화가 태동된 20세기 초반 전후부터 오늘날까지 두고두고 향유되는 영화들 역시 고전이라 일컫습니다. 필자는 2000년 이후 나온 수작들 중 앞으로 향유될 만한 가치를 지닌 현대적 고전의 지위와 가치를 모색해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소개해보고자 합니다.

5초가 멀다하고 바뀌는 쇼트에 멋진 주인공들과 볼거리를 담아 수다를 떠는 상업영화들과 비교해보면, 누리 빌제 제일란 감독의 2002년 터키 영화 <우작>의 풍경은 분명 고즈넉하다 못해 심심하기까지 합니다. 여기에 수염만 잔뜩 달린 아재배우들만 등장하죠.

 

 

간혹 등장하는 여배우도 수컷들의 성적 판타지를 채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해 보입니다. 설상가상 저예산으로 빈약하게 설계된 조명 탓에 화면마저 시종일관 우울한 회색 톤을 띄고 있지요. 흥행과는 아예 담을 쌓아버린 이 빈약한 재료들을 가지고 누리 빌제 감독은 보편적인 영상언어를 창의적으로 구사하여 자신이 의도한 바를 훌륭하게 표현해냅니다. 이번 달은 2003년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과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우작>을 소개해드립니다.

렌즈의 포커스(초점)는 중요한 영상언어입니다. 등장인물과 풍경을 관객에게 제대로 잘 보여줘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의 오프닝 씬은 렌즈 포커스가 오로지 남자에게만 맞춰져 있어 궁금증을 갖게 만듭니다. 그의 너머로 어느 여자가 옷을 벗고 침대에 눕는 아주 중요한(?) 행동을 벌이지만 안중에도 없는 듯 포커스는 단 한 번도 맞춰지지 않습니다(out focusing, 아웃포커스).

남자가 그녀 곁으로 다가가는 행위가 이어져도 역시 포커스는 미동도 하지 않고 그가 혼자 있었던 빈 공간에만 맞춰져 있을 뿐입니다. 감독은 주인공의 내면이 자기중심적이며 타인에게 무관심한 존재임을 이렇듯 아웃포커스로 은유하고 있습니다. 극이 진행되면서 반려자가 될 뻔했던 여자는 그의 삶에서 주변을 떠도는 희미한 존재가 되어갑니다. 다시 말해 단순한 포커스 기술만으로써 주인공의 내면과 이후 극 흐름을 암시하는 미학적 성취를 이루게 되죠.

이어서 고향에서 올라온 동생이 등장합니다. 그보다 이전의 쇼트들은 별 대사도 없고 오로지 주인공만 쓸쓸히 담아내고 있었습니다. 감독은 이런 식으로 주인공의 외로움 내지 인간적 고립감을 표현하다가 동생을 등장시키면서 이변을 일으킵니다. 적막한 씬들 사이에 갑자기 사람들이 등장하는 활기찬 씬 하나를 연출합니다.

 

 

그들은 주인공의 이웃으로 설정된 단역들로서 약속이나 한 듯이 어디에선가 한꺼번에 나타나 시끌벅적하게 소란을 떠는가 싶더니 어디론가 훌쩍 사라져버린 뒤 영화가 끝날 때까지 단 한 번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감독은 영리하게도 이웃의 등장이란 설정을 가지고 주인공과 대비되는 동생의 인간적 면모를 또한 은유하고 있지요.

잠시 동생의 생김새를 언급하자면, 우락부락하게 생긴 것이 헐리웃 영화였다면 분명 그에게 악역을 시켰을 법한 이미지입니다. 이 점은 헐리웃을 위시한 평범한 상업영화들이 빠지는 전형이자 클리쉐라 할 수 있어요. 그러나 <우작>에 등장한 그는 젊은 청년 구직자이자 일에 서툴지만 따뜻한 인간성을 지닌 시골에서 막 상경한 소시민입니다.

고향의 경기불황으로 인해 실직했기 때문에 형이 있는 이스탄불에 일자리를 구하러 온 것이죠. 진부한 전형에 갇히지 않은 현실적인 인물 설정은 인간과 삶을 진지하게 대하려는 비범한 상업영화 혹은 예술영화의 미덕이기도 합니다.

한편 주인공이 살고 있는 아파트에는 그가 정성껏 장만해 놓은 살림살이 사이를 제멋대로 헤집고 다니는 쥐 한마리가 얹혀살고 있습니다. 그 쥐를 잡지 못해 못마땅하던 차에 설상가상 쥐보다 더 위협적인-소중한 살림살이를 더 헤집고 다닐 수 있는- 동생마저 얹혀살게 된 것이죠. 그는 동생이 온 첫날에 자신의 집에서 지켜야할 사항을 훈시하는데, 이건 뭐 군대에서 조교들이 훈련병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그만큼 주인공의 인간적 면모가 상실되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또한 주인공은 현관에 벗어져있는 동생의 신발 냄새를 구태여 맡고는 냄새제거제를 신경질적으로 뿌린 뒤 신발장에 휙 던져버리곤 아연한 표정을 짓기까지 합니다. 상상해보세요. 어려운 형편으로 잠시 몸을 의탁했는데 제아무리 피를 나눴더라도 이런 사람과 함께 살 수 있을까요?

특히 부엌에서만 담배를 피우도록-자신은 아무데서나 피워도 되고- 명령받자, 동생은 그간 쌓여온 억압을 한꺼번에 폭발시키듯 형의 부재를 틈타 거실에서 마음껏 음주흡연을 하며 필시 냄새가 지독했을 신발에서 방금 꺼냈을 발을 소파 위에 쭉 뻗고는 느긋하게 TV도 즐깁니다. 마치 쥐처럼요.

그리고 이 사실을 꿈에도 모른 채 밖에서 들어온 주인공이 술캔과 담뱃재, 그리고 연기냄새를 발견하곤 동생을 향해 분노를 발산하며 '쥐’새끼 같은 놈이라는 둥 동생을 힐문합니다. 사사건건 지적 내지 모욕을 감수해온 동생 역시 많이 변해버린 형에게 자신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다고 발끈하죠.

눈치를 채셨겠지만 쥐와 담배는 이 영화에서 중요한 영화적 장치 즉, 미장센으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동생이 처음 온 날 주인공은 쥐 잡이 끈끈이를 동생이 밟는 일이 없도록 주의를 시키죠. 동생과 쥐는 끈끈이를 밟아서는 안 되는 처지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후 쥐가 끈끈이에 잡히자 살아있는 채 버리라고 하는 형의 말을 무시하고 쓰레기더미로 다시 찾아가, 신음하는 쥐를 향해 슬금슬금 다가오는 도둑고양이들을 쫓아버리고는, 쥐를 기절시키거나 혹은 죽임으로써 고양이들에게 산채로 먹히지 않게끔 끈끈이 위에서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쥐에게 일종의 존엄사를 선사합니다. 이렇게 눈엣가시거리였던 쥐가 죽은 이후에 주인공으로부터 애인도 떠나가고 동생마저 떠나가는 사건이 연이어 벌어집니다.

특히 동생은 영화 속 또 하나의 중요한 미장센인 담배를 남겨두고 떠나죠. 주인공은 동생이 피우던 담뱃갑을 챙겨선 바람이 몰아치는 이스탄불의 어느 부둣가 벤치 위에서 동생이 남기고간 그 '담배'를 꺼내 물고 초라하게 앉아있습니다. 주인공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궁금해 하는 동안, 영화의 엔드크레딧이 무심하게 올라가버리죠.

쥐는 노골적으로 동생의 처지를, 그리고 담배는 주인공이 잃어버리고만 진정한 관계를 맺기 위한 인간성 내지 그것을 향한 아련함-연기가 되어 사라짐-을 은유하는 장치일지도 모릅니다. 또한 주인공 뒷모습 너머로 분주히 오가는 대형선박들 사이로 위태롭게 출렁이며 역주행하고 있는 작은 배는 다시 혼자가 되어버린 주인공의 처지를 시각화해낸 인상적인 엔딩씬이기도 합니다.

모던클래식 필름이란 클리쉐를 배제한-굳이 대사로 설명하거나 눈물을 보여주지 않더라도-주인공의 심리부터 영화의 주제에 이르기까지 보편적인 영상언어를 독창적인 미장센들로 적재적소 고안해냄으로써 동시대의 비평가들, 영화인들, 그리고 관객들에게 그 예술적 지위와 성취를 인정받는 2000년대 이후의 걸작 영화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전광준

(前 한국영화아카데미 영화인교육센터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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