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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의 아이콘’ 시벨리우스의 지혜시벨리우스의 <교향곡 5번>
지휘자 사이먼 래틀

교향곡 5번 마지막 악장 ‘백조의 동기’는 2번 교향곡 피날레의 주제들처럼 격동적이고 희망찬 이미지를 선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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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벨리우스(Jean Sibelius)

십여 년 전, 첫 핀란드 출장을 준비하다가 “핀란드인과 비즈니스를 하기 위한 ‘3S’가 있다. 사우나, 시벨리우스, 시수이다”라는 글을 접했다. “사우나라면 세계인이 알지만 작곡가인 시벨리우스가 그렇게 중요한가? 시수는 또 무엇인가?” 의문은 핀란드에서 현지인들과 대화하면서 풀렸다.

핀란드는 13세기에 스웨덴 영토로 편입되었다가 1809년 러시아령이 되었다. 1917년 12월 독립을 맞았을 때, 이 나라가 세계에 자랑할 것은 호수와 숲으로 둘러싸인 신비한 경관, 그리고 막 52회 생일을 앞둔 작곡가 시벨리우스였다. 시벨리우스는 이 나라 정체성(아이덴티티)의 핵심적인 부분이다. 시벨리우스가 세상에 이름을 알린 것도 ‘홀로 우뚝 선 핀란드’를 갈구하는 목소리에 힘입은 바 컸다. 그의 초기 작품들은 핀란드의 설화문학 작품인 ‘칼레발라’에서 소재를 따온 것이 많다. 교향시 ‘쿨레르보’ ‘전설’ ‘투오넬라의 백조’등이 그렇다. 1899년은 만 33세의 작곡가에게 ‘핀란드를 위한 투쟁의 시기’였다. 그는 핀란드 신문인협회로부터 ‘핀란드 역사를 그리는 연극 공연에서 연주할 음악을 써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러시아 당국의 검열에 항거하기 위한 이벤트였다. 이 연극은 ‘깨어나는 핀란드’라는 웅대한 장면과 음악으로 끝을 맺었다. 시벨리우스는 마지막 부분 ‘깨어나는 핀란드’만 떼어 독립된 교향시 ‘핀란디아’로 발표했다. 하지만 검열 당국은 이런 제목을 허락하지 않았고, 이 곡은 한동안 ‘판타지아’(환상)이라는 이름으로 연주되어야만 했다. 이 해 초연된 첫 교향곡도 억압을 뚫는 항거를 그려내듯 열정에 넘친 피날레로 끝을 맺었다.

1902년 3월, 그의 교향곡 2번이 초연되면서 ‘애국의 영웅’으로서 시벨리우스의 인기는 절정에 달했다. 현이 거대하게 출렁거리고 금관이 포효하는 4악장 피날레는 청중들의 마음을 격동시켰다. 지휘자 카야누스는 이 작품을 가리켜 ‘압제에 대한 핀란드의 저항정신과 궁극적인 승리를 나타낸다’고 단언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5년 뒤 3번 교향곡이 발표되었을 때 청중들은 당황했다. 1, 2번 교향곡처럼 애국적이고 열정적인 피날레를 기대했는데 간소하고 ‘명랑한’ 악장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1911년의 제4번 교향곡은 상황이 더 나빴다. 작곡가 자신은 “마지막 악장이 끝났을 때 아무도 박수를 치지 않았고 아무도 감사의 말을 하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음울한 분위기의 이 교향곡은 촛불이 꺼지듯이 끝나버렸다.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3번 교향곡부터 시벨리우스는 자신의 교향곡이 나아갈 길이 확장, 투쟁, 열정이 아니라 간소한 형식, 응축된 구조, 유기적인 집중에 있다고 보았다. 애국적이고 열정적인 작품을 원하는 대중의 요구는 그의 내면과 다른 길을 가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한층 당혹스러운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1915년 12월 8일은 시벨리우스의 탄생 50주년 기념일이었다. 독립 직전의 핀란드 정부도 이 날을 국경절 휴일로 지정하고 이날 열릴 기념 콘서트에서 시벨리우스 자신이 헬싱키 필하모닉을 지휘해 새 교향곡을 발표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 요청은 어려운 시험이었다. 의뢰자들의 머리에는 애국적이고 열정적인 2번 교향곡의 피날레가 떠올랐을 것이다. 그러나 시벨리우스로서는 3, 4번 교향곡의 ‘집약적이고 사색적인’ 노선에서 후퇴할 수 없었다. 어느 날, 망원경으로 새들을 관찰하던 시벨리우스의 눈에 백조 16마리가 자택 ‘아이놀라’로 다가오는 것이 눈에 띄었다. 백조 떼는 집 위를 선회하다가 이윽고 햇살이 비치는 안개 속으로 ‘반짝이는 은(銀) 리본처럼’ 유유히 사라져갔다. 작곡가는 ‘그 모습과 소리는 일생 마주친 가장 감명 깊은 것 중 하나’였다며 그 소리는 금관악기와 흡사했다고 적었다. 얼마 뒤 그는 “굉장한 주제가 머리에 떠올랐다”고 일기에 썼다. 작품은 예정대로 12월 8일, 작곡가 자신이 50회 생일을 맞아 헬싱키 필하모닉을 지휘하는 콘서트에서 초연되었다. 청중들은 큰 갈채를 보냈으며 세 차례나 추가 콘서트가 열렸다. 마지막 악장 ‘백조의 동기’는 2번 교향곡 피날레의 주제들처럼 격동적이고 희망찬 이미지를 선사했다.

시벨리우스는 대중들의 요구에 타협한 것일까? 그렇게 본다면 성급할 것이다. 그는 자신의 작곡가적 본능과 대중의 요구가 모두 충족될 수 있는 길을 지혜롭게 찾아냈다. 그것은 핀란드의 특징을 이루는 3S 중 마지막 ‘시수’(Sisu)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나라 언어로 정확하게 번역할 수 없지만, 시수는 대략 ‘어려움에 부딪쳐 발휘되는, 지혜가 깃들인 용기’로 해석된다.

KBS 교향악단은 9월 28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요엘 레비 지휘로 시벨리우스의 ‘열정적인’교향곡 2번을 연주한다. 사흘 뒤인 10월 1일, 사이먼 래틀이 지휘하는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롯데콘서트홀에서 ‘지혜가 깃들인’ 시벨리우스의 교향곡 5번을 콘서트 마지막 곡으로 선보인다.

 

유윤종 (음악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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